MC: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업이 있습니다. 2008년 7월에 중단된 금강산 관광 사업이 그렇지요.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잘 지냈습니다.
박성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게 1998년 11월이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7월에 한국인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측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관광이 중단됐습니다. 요즘 들어서 북한은 금강산에 있는 남측 부동산을 압류, 몰수하는 강경 조치를 취했는데요. 오늘은 좀 근본적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을 한 번 짚어봤으면 합니다. 위원님, 먼저 북측이 애초에 금강산 관광을 시작하는 데 동의한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되나요?
고영환: 북측이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게 1998년 11월인데요. 이때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던 때이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증언에 의하면, 이 시기에 약 200만 명 이상의 주민이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경제가 거의 다 붕괴되고, 외화도 거의 고갈되고, 그래서 북한의 지도부는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던 게 사실이고요. 외화는 체제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거든요. 외화가 있어야 외국에서 무기도 사오고, 물자도 사 올 수 있고, 고위 간부에게 선물도 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건데요. 이렇기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이 결단을 내려서 외화를 벌기 위해 금강산 관광을 허용했고, 그래서 매해 3천만 달러 이상의 외화가 지난 (정부) 10년 동안 들어간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외화 획득이 목적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박성우: 남측에서 버스를 타고 금강산으로 가다 보면, 주변에 북한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남한의 1960-70년대 풍경이거든요. 이런 모습을 남측 관광객에게 공개한다는 게 북측 지도부로서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자존심도 좀 상하고 말이죠. 그런데도 북측 지도부는 관광 사업에 합의했습니다. 이걸 두고 노동당이나 군대의 간부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고영환: 제 주변에도 친구들을 포함해서 금강산에 다녀온 (남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북한 사람들의 얼굴 표정, 달구지, 옷차림, 이런 걸 보면 정말 1960년대 한국의 모습하고 같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고 다들 그러더라고요. 북한 지도부로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죠. 그런데 역시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그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체제 유지이고, 이를 위해서는 외화가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관광을 시작한 것인데요. 당과 정부, 군대의 고위급 간부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합니다. 첫 번째가 ‘우리 인민들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아름다운 금강산을 남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비참한 생각이고요. 두 번째는 ‘저 사람들은 무슨 돈이 저렇게 많아서, 무슨 시간이 저렇게 많아서 관광을 다니나’ 이런 동경의 마음도 있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요. ‘남한 사람들의 돈을 빨아내서 우리 체제를 지키면 되지’ 이런 안도의 마음, 이렇게 크게 세 가지 생각이라고 합니다.
박성우: 위원님은 북한에 계실 때 금강산에 가 보셨나요?
고영환: 저는 (북에 있을 때) 외교부에서 일했거든요. 그래서 외국 대표단을 데리고 금강산에 몇 번 갔었습니다. 잠깐 제가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릴게요. 제가 외교부에 있을 때 우리 국장이 ‘이번에 외국 대표단이 하나 왔는데, 안내 통역 그루빠에 자리가 하나 있으니 (직원 중) 한 사람을 구경시켜줄 수 있다, 금강산에 구경을 못 가본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절반 이상이 손을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저렇게 많은가’ 싶어서 제가 놀랐는데요. 그런데 우리 과에 있던 한 지도원이 ‘금강산에 꼭 가고 싶다, 꼭 넣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아마 여자가 한 명이 가게 될 것 같다, 여자들은 거의 기회가 없으니 남자들은 양보하는 게 어떠냐, 금강산에 가봐야 이상하게 생긴 바위, 나무, 물뿐이다’라고 말했거든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그건 배부른 사람이 하는 말이지, 가 본 사람이 하는 말이지, 나는 죽기 전에 금강산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 당신 지금 무슨 말이냐’라고 말해서 제가 아주 혼쭐이 난 적이 있어요. 이렇게 금강산은 아무나 못 가거든요. 북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죽기 전에 한번 가고 싶은, 꼭 보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지요. 정말 특수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 말고는 가 보기가 정말 어렵지요.
박성우: 그렇군요. 북한 사람들도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금강산이라는 말씀인데요. 그런데 현재 북한 사람들은 말씀하신 데로 금강산의 근처에도 못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 정권은 현재 금강산을 이용해서 돈도 못 벌고 있습니다. 설명이 좀 필요한데요. 왜 이렇게 된 겁니까?
고영환: 아까 서두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2008년 7월에 박왕자라는 이름을 가진 남한의 한 평범한 가정주부가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금지 구역을 조금 벗어났어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이 벗어났는데요. 그런데 북측의 군인이 총을 쏴서 그 자리에서 즉사했거든요. 이것 때문에 중단됐는데요. 한국 정부로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나라 국민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사망 사고가 발생한 다음에 북한에 ‘공동으로 사건을 조사하자, 동일한 사건이 또 생길 수 있으니 당신들이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그리고 멀쩡하던 사람이 죽었으니 사과하라’고 이야기했는데, 이게 다 정당한 요구이거든요. 그런데 북한이 한마디로 거절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는데요. 북한으로서는 마음이 아프겠지요. 현금이 매달 또박또박 들어오던 중요한 달러 원천이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자기네가 일단 못 하겠다고 했던 걸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북측은 최근에 남한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굉장히 많이 노력했어요. ‘몰수하겠다, 동결하겠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 금강산 지구 내에 있는 남측의 부동산을 몰수하는 강경한 조치를 취했거든요. 그런데 이건 사건을 더 악화할 뿐입니다. 생각을 해 보세요. 그 어떤 외국 기업이나 외국이 자기네 사람이 관광을 하다가 죽었는데, 그걸 조사를 하자니 조사도 못 하게 하고, 설명을 해 달라고 하는데 설명도 안 해 주고, 사과를 하라는데 사과도 안 하고, 이렇게 하면 그 누가 이런 나라에 들어가서 관광 사업을 하겠습니까. 북한이 자꾸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건데요. 북한이 이렇게 악화시키는 조치를 왜 하는지를 북한에 살다 온 저로서도 참 이해하기 힘듭니다.
박성우: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의 재개 문제와 관련해서 원칙을 꺾지 않고 있는데요.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요인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고영환: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이건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정부가 하는 건데요. 한국의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의 대다수가 정부가 요구하는 것처럼, (박왕자 씨 사망 사건에 대해 북한이) 사과하고 조사하고, 그런 걸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국민들이 이렇게 요구하니까 정부로서도 이걸 따라 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까 정부로서도 힘이 있게 원칙대로 하자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는 거지요.
박성우: 위원님, 한국에 오신 다음에는 금강산에 가 보셨는지요?
고영환: 저는 못 가봤어요. 금강산에 가 본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은데요. 북한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데요. ‘금강산에 오는 사람들은 다 부르주아다’라고요. 부르주아가 아니거든요. 평범한 사람들이 금강산에 가는 거예요. 또 금강산만 가는 게 아니라, 많은 남한 사람들이 파리도 가고 로마도 가고 하는데, 북한 사람들이 이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박성우: 금강산, 참 아름다운 산이지요. 그 좋은 경치를 한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북한 사람들도 자유롭게 가서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시사진단 한반도>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위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