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이 44년 만에 ‘노동당 대표자회’를 9월에 개최할 예정입니다. 왜 9월일까요?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잘 지냈습니다.
박성우: 조선중앙통신이 ‘9월 상순에 노동당 대표자회를 소집한다’고 6월26일 보도했습니다. ‘9월 상순’이라고만 말하고 정확한 날짜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요. 위원님께서는 대략 언제 대표자회가 열릴 걸로 예상하십니까?
고영환: 6월23일 당 정치국 결정서에서 ‘9월 상순’이라고 발표했어요. 9월 상순은 1일부터 15일 사이인데요. 아마 공화국 창건 기념일인 9월9일을 전후해서 당 대표자회를 하려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성우: 북한이 숫자를 좀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잖아요. 북한은 왜 숫자에 의미를 두는 겁니까?
고영환: 북한은 특히 정주년에 의미를 굉장히 많이 둡니다. 정주년은 남한에서는 ‘꺾어지는 해’라고 부르지요. 5돌, 10돌, 50돌, 100돌. 그러니까 2012년 김일성 주석 생일 100돌을 맞아서 강성대국을 하겠다고 말하는 식인데요. 이렇게 정주년을 강조하는 건 이런 명절을 통해 분위기를 띄워서 당원과 근로자를 하나로 묶는 계기로 삼으려는 거지요. 그래서 북한은 숫자, 날짜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죠.
박성우: 사실 한국도 숫자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 듯합니다. 예를 들면, 광복 60주년 행사를 크게 하는 식이지요. 위원님께서는 북한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셨는데요. 그래서 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북한이 숫자를 중시하는 관행과 관련해서 일화가 있으시면 소개를 하나 해 주시죠.
고영환: 제가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김정일 위원장의 생일이 원래 1941년 2월16일입니다. 제가 왜 이걸 잘 아느냐면요. 제가 자이르 대사관에 3등 서기관으로 나가 있을 때, 1981년 2월에 김정일 지도자 동지의 탄생 40돌 기념행사를 하라는 전보 지시를 받았고, 그 전보 지시를 따라서 40돌 행사를 했어요. 사진 전시회도 하고, 대사관 뷸레틴도 발간하고, 연회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해인 1982년 2월에 또 전문이 왔는데, 또 40돌이더라고요. 지난해에 40돌 행사를 했는데 또 40돌이니까 이상해서 평양에 전보를 보내 문의했습니다. ‘뭔가 숫자가 잘못된 게 아니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랬더니 평양에서 전보가 왔는데, ‘올해도 40돌이 맞다, 그러니 40돌 기념행사를 그대로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40돌 행사를 대사관에서 두 번 했어요. 나중에 알아보니까, 김일성 주석의 생일과 김정일의 생일이 30년 간격이 되도록 연도를 맞춘 것이더라고요. 그런 의미가 있다고 당 선전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직접 들은 기억이 납니다.
박성우: 남한과 북한이 ‘꺾어지는 숫자’를 좋아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북한은 좀 유별난 구석이 있군요. 위원님, 같은 맥락에서 질문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북한이 이번에 하겠다는 노동당 대표자회. 이걸 왜 하필 9월에 하는 걸까요? 노동당 창건 기념일 65주년이 10월10일이고, 숫자에 의미를 두는 북한의 관행대로라면 큰 행사는 10월에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고영환: 저도 박성우 기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도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꺾어지는 해, 그러니까 당 창건 65돌이 되는 날이 바로 10월10일입니다. 당 대표자회나 당 대회는 대체로 10월에 진행했습니다. 2차 당 대표자회도 1966년 10월에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왜 9월 상순에 하는가, 이걸 제가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했는데요. 아마도 북한 지도부에 ‘무슨 말 못할 내부 사정이 있지 않느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재까지의 정황을 보면, 그 말 못할 내부 사정이라는 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이 있고, 더 나아가서 후계체제의 조기 구축과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박성우: 북한에서 오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젊은 북한 사람들은 노동당 대표자회가 뭘 하는 건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하던데요. 위원님, 설명을 좀 해 주시죠. 노동당 대표자회는 어떤 기구입니까?
고영환: 노동당 대표자회는 당 대회 밑에 있는 기구입니다. 노동당에서 최고 기구는 당 대회입니다. 당 규약에 따르면, 노동당 대회에서 당의 최고 기관들, 그러니까 정치국, 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위 부장들을 구성하고, 당 중앙위원회가 다음 당 대회까지 일하도록 돼 있습니다. 원래대로 하면, 당 대표자회도 10월에 해야 합니다. 이번 당 정치국 결정서의 내용을 보면 ‘당의 최고 기관들을 선출한다’라고 돼 있는데요. 그런데 원래대로 하면, 이것도 당 대회를 열어서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당 대표자회를 9월에 하는 것도 이상하고, 여기서 당 최고 기관을 선출하는 것도 이상한 거지요. 당 대표자회는 지금까지 두 번 열렸습니다. 1950년대에 처음 열렸을 때는 정세가 긴박한 상황에서 전체 당원들에게 보내는 비밀 편지를 발표했고요. 2차 당 대표자회는 1966년 10월에 했는데, 그때도 당 기관을 선출한 게 아니라 특별한 안건을 다뤘습니다. 그러니까 당 대표자회는 당 대회와 당 대회 사이에 특별한 정세가 조성되거나 특별한 안건이 생길 때 여는 겁니다.
박성우: 그러니까 굉장히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당 대표자회를 소집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고영환: 그렇지요. 아주 중요한 안건이 있거나 새로운 정세가 조성될 때 당 대표자회를 하는데요. 제가 지난 당 대표자회를 잠깐 설명해 드릴게요. 1966년 10월에 제2차 당 대표자회가 진행됐는데, 이때 북한이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이것이 결국은 북한을 오늘의 파국으로 이끈 원인 중 하나가 됐는데요. 당시 당 대표자회가 ‘경제 국방 병진노선’을 채택했습니다. 그러니까 경제에 모든 걸 투자하는 게 아니고, 경제에 국가 재산의 절반을, 그리고 국방에 국가 재산의 절반을 투자해서 경제와 국방을 똑같이 발전시킨다는 노선을 내놓은 거지요. 이 노선에 근거해서 ‘4대 군사노선’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전국의 요새화’, ‘전군의 현대화’ 그리고 ‘전민의 무장화’ 이런 것이었지요. 이때부터 북한은 전인민을 무장시켰고, 전국을 요새화한다고 그러면서 땅굴을 파기 시작한 겁니다. 국방 건설에 너무 막대한 투자를 했고, 이것이 결국은 북한 경제에 엄청난 짐으로 작용했고, 북한 경제를 오늘의 나락으로 이끈 원인 중 하나가 된 겁니다.
박성우: 알겠습니다. 남한에 있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들어보면, 북한이 이번 당 대표자회를 소집하는 건 후계체제와 관련이 있다는 말을 하거든요. 위원님께서는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고영환: 저도 그런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런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김정일 위원장도 바로 그런 절차를 거쳐서 후계자로 정식 임명됐고, 대외적으로 그 사실이 발표됐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당 대표자회에서 ‘당의 최고 기관을 선출한다’는 건 김정은이 당 정치국 위원, 정치국 후보 위원, 또는 당 중앙위원회 위원 등이 된다는 걸 의미하고, 후계체제를 공식화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성우: 그럼 김정은이라는 이름이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거명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저는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박성우: 알겠습니다. 오는 9월에 열릴 예정인 당 대표자회에서 북한이 어떤 결정을 내놓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시사진단 한반도>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 말씀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