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한반도] 북 비상훈련 체계는 내부 결속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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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박성우 기자를 대신해 이 시간의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불굴의 의지'라고 이름이 붙여진 한미 연합 훈련이 28일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오중석: 위원님, 요즘 많이 더우시지요?

고영환: 네, 많이 덥습니다.

오중석: 지난 25일부터 나흘간 한미 연합 훈련이 동해에서 진행됐습니다. 이걸 두고 북한은 ‘북침 훈련’이라고 규정하면서 전군이 비상훈련 체계로 들어갔다고 하는데요. 위원님, 이번 한미 연합 훈련의 성격에 대해서 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고영환: 천안함 사건 이후에 한미 양국이 ‘어떤 의지를 보여줘야겠다’ 그래서 시작한 훈련이 '불굴의 의지' 훈련이고, 25일부터 28일까지 동해에서 진행됐는데요. 순전히 이것은 방어적 성격이고, 북한에게 ‘다시는 도발을 하지 말아라’는 경고를 하는 성격의 훈련이었는데요. 북한에서는 지금 ‘남한이 정말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 이런 식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저는 오늘도 버스를 타고 서울 거리를 지나다녔는데요. 서울은 지금 휴가로 차량들이 빠져나간 좀 한산한 분위기이고, 그 어떤 사람도 전쟁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동해와 서해, 남해에는 휴가를 온 사람들로 가득한데요. 전쟁이 끝난 지 60년 동안 한국이 10위권의 경제적 부를 이뤘고 자가용차를 타고 잘살고 있는데, 왜 다 죽을 전쟁을 하겠습니까?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북한 당국의 체재 결속을 위한 선전일 따름이라고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오중석: 알겠습니다. 위원님, 이번 주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또 하나 있습니다. 날짜와 관련된 일인데요. 북한은 7월27일을 ‘전승 기념일’이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이걸 1953년에 휴전협정이 맺어진 날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휴전일’을 ‘전승 기념일’이라고 부르고 있는 건데요. 이렇게 함으로써 북측 정권이 의도한 바는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고영환: 7월27일은 말 그대로 보면 하나도 기쁠 게 없는 날입니다. 이날은 전쟁이 잠시 중단된 정전 기념일이거든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과 주민들을 위한 애도의 분위기와 비슷한 것이 나오는데, 북한은 전쟁에서 크게 이긴 것처럼 ‘전승 기념일’이라고 하거든요. 북한 측 논리대로라면 6.25 전쟁은 미국과 남한이 일으켰고, 영웅적인 조선인민군이 김일성 최고 사령관의 현명한 영도를 받아서 38선 이북으로 넘어오는 걸 막았으니 ‘전승 기념일’이라고 하는데요. 이것을 역사적으로 보면, 소련 문건이나 중국에서 나온 비밀문서를 보면, 분명히 그것은 북에 의한 남침이었고요. 전쟁 3년 동안 많은 사람이 희생됐고, 전쟁의 장기화를 싫어한 미국과 중국이 서로 협정을 맺어서 전쟁을 중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세계 최강인 미국을 조선인민군이 격퇴했고, 그 선두에는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있었다는, 그러니까 김일성 가계를 우상화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건 말이 맞지 않는 소리입니다.

오중석: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0년이 됐고, 휴전협정이 맺어진 지 57년이 됐는데요. 그 사이 남북한에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위원님께서는 가장 큰 변화로 뭘 꼽으시겠습니까?

고영환: 아무래도 경제적 발전이겠지요. 전쟁이 끝났을 때 1인당 국민 소득은 한국이 67달러입니다. 현재의 화폐 가치로 계산하면 1천 달러 정도죠. 북한은 좀 나았다고 하지만 도토리 키재기였거든요. 그런데 전쟁이 끝난 지 60년 지난 지금 보면, 북한의 국민 소득은 1천 불 수준입니다. 이건 아프리카의 르완다나 아시아의 방글라데시 수준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데 한국의 국민 소득은 2008년에 1만 9천3백 달러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은 정말 비약적인 발전을 했고, 북한은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결국은 자본주의 체제를 채택한 한국은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고,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한 북한은 정말 아프리카의 르완다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이게 가장 큰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중석: 1960년대에는 북한의 경제적 사정이 남한보다 더 좋았던 게 사실인데요. 그런데 지금처럼 완전히 반대가 돼서 남북한 경제력이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고영환: 그 차이는 정말 엄청납니다. 제가 1960년대 북한에서 살 때 환경을 보면, 아이들이 사탕 과자를 사 먹고, 어른들은 맥주를 마실 수 있었고, 닭고기를 사 먹을 수 있었고, 그래서 한국에 비해서 훨씬 나았는데요.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전반에 들어가면서 남과 북의 상황이 역전됩니다. 한국은 개방 경제와 수출 주도의 경제를 통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는데, 북한은 1966년 2차 당 대표자회의 때 군사, 국방, 경제 병진 노선이라는 걸 하면서, 경제보다 군사 부분에 더 많은 투자를 했고, 또 남북 간의 외교전과 김부자 우상화를 하는 데 돈을 많이 썼죠.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율과 경쟁의 자본주의 체제를 택한 남한은 획기적인 발전을 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사회주의 경제 체제와 군사 국방 체제를 선택한 북한은 하락해서 정말 아프리카의 수준밖에 안 되는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로 변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중석: 마지막으로 이 질문도 드리고 싶습니다. 북한은 남한의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빈부 격차가 심하다’거나 ‘외국 자본으로 잠식됐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좀 객관적으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직접 남한에서 살아보니까 어떻습니까?

고영환: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게 사실 북한이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가장 자주 사용하는 용어인데요. 사실 사회주의 나라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있거든요. 제가 소련을 여러 번 갔는데요. 소련 시절에 정치국 위원들은 좋은 곳에서 캐비어를 먹으면서 차도 좋은 걸 탔는데, 일반 근로자들이 볼가 승용차를 하나 사려면 15년, 20년을 기다려야 했거든요. 지금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에는 ‘부익부 빈익빈’이 없다고 말하지만, 최근 북한에서 들어오는 소식에 의하면, 당 간부들에게 명태나 청어를 주면 냄새난다고 쓰레기장에 버린다고 해요. 그럼 사람들이 주워가는데요. 이걸 주워가지 못하게 하려고 쓰레기장에 보안원을 세워 놓고 지킨다고 하거든요. ‘부익부 빈익빈’이 없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 산 지 20년이 되어 가는데, 한국 사회를 보면 자기 집과 자가용 승용차를 가진 중산층이 전체 주민의 60-70%를 넘거든요. 북한이 말하는 극빈층이 한국 전체에 수만 명밖에 안 되는 거고요. 그렇지만 북한은 수백만 명이 배를 곯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의 주장은 정말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요.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라고 자꾸 말하는데, 지금 한국의 가전제품, 승용차, LCD 텔레비전, 휴대폰 같은 게 미국으로 막 들어가서 ‘미국이 한국의 식민지가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북한이 논리에 맞지 않는 선전은 그만두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오중석: 정전 기념일을 전승 기념일이라고 선전하는 북한 체재의 속내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시사진단한반도’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위원님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