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의 경제개혁에 앞장서다 해임됐던 박봉주 전 내각 총리가 복권됐습니다. 장성택의 위세가 점차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잘 지냈습니다.
박성우: 총리였던 박봉주가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의 지배인으로 좌천된 게 2007년 4월이었지요. 그런데 3년 4개월 만에 복권됐습니다. 이 소식은 지난달 21일 조선중앙방송의 보도로 확인됐는데요. 좀 지난 일이긴 합니다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짚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위원님, 박봉주의 복권은 어떤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까요?
고영환: 박봉주라는 인물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릴게요. 박봉주 전 총리는 1983년에서 1993년 사이 ‘남흥청년화학’이라는 북한에서 아주 유명한 회사에서 책임비서를 하다가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승진했고, 2002년 7월1일 경제개선 조치를 막후에서 지휘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이듬해에 총리가 돼 북한의 시장경제를 쭉 이끌어온 사람입니다.
박봉주 전 총리가 당 중앙위원회의 제1부부장으로 다시 왔고, 아마 경제 부서로 복권된 것 같은데요. 분명한 것은 박봉주가 장성택의 사람이라는 겁니다. 장성택이 박봉주를 제1부부장으로 복권시켰다는 건 장성택의 권한이 날로 강화되고 있고, 그와 비례 해서 김정일 위원장의 권력은 약화되고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왜 이런 분석을 하느냐면, 김정일 위원장이 중병으로 아픈 상황에서 믿을 사람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은 아직 나이가 어리고, 자신의 누이인 김경희 부장도 좀 아프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은 장성택뿐이죠. 장성택 부위원장은 후계체제의 구축을 책임지겠다고 이야기한 것 같고, (김 위원장은 장성택을) 신임한 것 같고, 그래서 장성택 부위원장의 권한이 굉장히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고요. 이런 배경하에서 예전에 자리를 떠났던 장성택의 사람들이 거의 모두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건 장성택이 북한에서 명실상부한 제2인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성우: ‘박봉주의 복귀는 박남기가 총살된 것과 관련해 주목할 부분이 있다’는 분석이 있었거든요. 어떤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건가요?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고영환: 박봉주는 박남기 전 계획재정부장과 대척점에 있던 사람입니다. 박남기는 사회주의 경제원칙을 고수하던 사람이고, 박봉주는 시장경제를 약간 가미해서 사람들의 생활이 좀 나아지게 하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요.
박봉주가 잘나갈 때, 박남기는 국가계획위원장에서 해임됩니다. 그런데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농민시장이 종합시장으로 되면서 활기를 띠고, 남한 DVD가 유통되고, 남한 물품이 최고로 인정받는 상황이 오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아마 ‘너무 활성화됐다, 약간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당에 계획재정부를 만들고 초대 부장으로 박남기를 임명합니다. 당시 박남기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사회주의 경제 원칙을 회복하겠다, 황색 물결을 다 몰아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박봉주 총리는 힘을 잃기 시작하고, 박남기 시대가 오게 된 거죠.
그런데 지난해 북한 지도부가 최대 악수를 둡니다.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시장을 폐쇄한 거죠. 북한 사람들이 흥분하고 불만이 극도에 달하니까, 사상 유례없는 사건이 터집니다. 김영일 총리가 인민문화궁전에서 평양 시민들에게 사과하는, 북한 정권으로서는 최초의 일이 벌어지고, 이어서 3월에는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이 모든 잘못을 뒤집어 쓰고 총살됩니다. 그런데 사실 알만한 사람은 화폐개혁을 박남기 부장이 혼자 했다고 믿지 않거든요. 그렇게 중요한 일을 최고 지도부가 모를 수가 없어요. 그런데 결국은 박남기는 내려가고, 박봉주는 다시 올라온 거죠. 이게 참 미묘한 문제인데요. 이것은 북한이 시장 경제의 필수성을 인정한 측면이 있지 않겠느냐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박성우: 박봉주와 박남기는 모두 장마당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인데요. 요즘 북한에선 장마당이 다시 활성화됐고, ‘북한 당국이 시장과의 전쟁에서 무릎을 꿇은 것 같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뭐라고 이해하면 됩니까?
고영환: 얼마 전 한국의 조선일보가 북한의 신의주에 있는 채하시장에 들어가서 동영상을 찍어왔습니다. 이게 남한의 모든 텔레비전에 방영됐는데요. 저도 그 화면을 봤고요. 이걸 본 남한 사람들은 ‘한국의 1970년대 시장의 모습 같다’고 말합니다. 아주 활기차고, 중국산이 많은 게 가슴이 아프긴 합니다만, 상품도 많았습니다. 화폐개혁 이전보다 더 활기찬 것 같더라고요. 지난해 화폐개혁으로 모든 게 다 정지된 상태였고, 주민들이 화가 치밀어서 불만을 표출하니까, 북한의 최고 지도부가 ‘체제가 위협받는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시장의 기능을 다시 복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평양에 있을 땐 ‘농민시장’밖에 없었는데, 이게 종합시장으로 발전했다가 화폐개혁으로 폐지되더니, 이제 다시 복구돼서 활성화되고 있는 거죠. 다시 말해서 이건 북한 지도부가 무릎을 꿇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워낙 불만이 팽배하고,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이르겠다는 판단이 나오니까 슬그머니 제 위치로 돌려놓은 것이죠. 이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성우: 오늘은 경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요. 지난달 24일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18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한중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경제 관계지요?
고영환: 그렇죠.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했습니다. 6.25때 총부리를 마주 대고 싸웠던 남한과 중국이 손을 잡은 건데요. 수교 당시 북한이 굉장히 반발했어요. ‘반역자’ ‘수정주의자’ ‘배신자’라고 중국을 비난했는데요. 어쩔 수 없지요.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법이거든요.
제가 자료를 몇 가지 인용하겠습니다. 1992년 한중 무역 규모는 63억 달러에 불과했는데, 지난해에는 1,409억 달러로 22배가 늘어났습니다. 삼성, 현대, 기아, LG, SK 등을 포함해서 4만여 개의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공장을 돌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의 수가 320만여 명입니다. 하나 더 말씀드릴게요. 지금까지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투자한 금액이 449억 달러입니다. 굉장히 엄청난 돈을 중국에 투자한 것이죠. 결국은 한중 경제관계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한 것이고, 이런 공고한 경제관계의 발전을 토대로 정치 발전과 외교 발전, 그리고 더 나아가서 군사 부분의 발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성우: 중국과 한국의 관계는 사실 경제로 출발해서 지금은 외연을 확대하고 있지요. 국가 안에서 시장이 활성화되면 물건을 더 많이 팔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되지요. 중국이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와의 교역을 늘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시사진단 한반도’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 말씀 감사하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