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한반도] 동독 대사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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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독일에서는 꼭 20년 전 11월 9일에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지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게 바로 그때입니다. 오늘은 동서독의 통일이 한반도 통일을 위한 노력에 시사하는 바를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께서 자리를 함께하고 계십니다.

박성우:

연구위원님, 지난 한 주 잘 보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20년 전에 연구위원께서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

고영환:

89년 11월 9일에 저는 자이르 공화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현직 외교관으로 있었지요.

박성우:

독일 통일을 지켜보시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고영환:

(자이르의) 동독 대사관이 북한 대사관에서 걸어서 약 5분, 차로 약 1분 거리에 있었어요. 당시 TV를 보고 놀랐던 것보다도, 그때 동독 외교관들이 가까이 있었고, 그래서 가서 직접 봤거든요. 다 울더라고요. 그걸 보고 가슴 아팠던 생각, 그리고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닥칠 수 있다’는 위기감, 이런 걸 느꼈는데요. 결국은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면 ‘경제가 강하고 주민 생활이 풍요로운 나라가 결국은 통일을 이루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박성우:

당시 평양에 있는 외교부와 자이르에 있는 북한 대사관 사이에 전문이 오갔을 것 아닙니까. 당시 상황을 반영하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신지요?

고영환:

그때 현지에 있는 동독 대사관을 서독 대사관이 어떻게 접수하는지, 재산이나 일체의 문건을 어떻게 접수하고, 동독 대사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이런 걸 지켜봤습니다). 지금도 (외교) 전문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는데요. 좋은 보고만 (평양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떠나는 동독 대사를 위해서 (북한 대사관이) 연회를 차려주라고 그랬거든요. 동독 대사가 북한 대사관에 와서 울었어요. 울면서, ‘당신네는 제발 우리처럼 되지 마라, 우리는 그냥 손 놓고 당했다, 당신네는 우리에게서 교훈을 찾아서 당신네가 이기는 통일을 해라’고 말했다는 걸, 이건 (평양의) 상부에서도 보면 기분 좋아할 보고서이니까, 그런 보고서를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박성우:

알겠습니다. 당시 북한의 외교부도 정신없이 바빴을 것 같은데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요?


고영환:

85년 고르바초프 전 공산당 총비서가 올라가서 페레스트로이카, 그러니까 개혁노선을 내놓고, 그다음 헝가리가 한국과 수교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다음에 동서독이 통일하고, 다음에 체코에서 벨벳 혁명, 그러니까 무혈혁명이 일어나서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졌죠. 그러니까 80년대 말, 89년 그때의 북한 외교부의 상황은 한마디로 패닉이라고 그러지요. 공황. ‘이거 큰일 났다’는 거죠. 우리 외교부는 그런 사태들을 다 평양에 보고했고,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걸 우리는 다 접했었죠. 아마 (89년 당시) 외교부의 창문에는 다 불이 켜져서 밤 1~2시까지 잠을 못 자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고,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냐’… 그리고 외교부뿐만 아니라 당중앙위원회, 뭐 선전선동부나 조직지도부나, 더 윗선에서도 한마디로 그저 공황 상태죠. ‘사회주의는 이제 끝장이 났구나’라는 거죠. 70년대에는 북부 베트남이 남부 베트남을 통일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가졌는데, 90년대는 반대로 ‘자본주의적인 서독이 사회주의적인 동독을 먹었다’는 걸로 인해서, 정말 충격 그 자체죠. 그래서 정말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박성우:

연관된 질문입니다. ‘동독이 없어졌다’ 이게 당시 북한 외교에 의미한 바는 무엇이었습니까?

고영환:

북한이 보기에 동부 독일은 어떤 이상향이었거든요. 훨씬 잘 살았고, 북한 주민들이 맥주도 못 먹고, 버터라는 걸 구경도 못하고, 우유라는 걸 먹지도 못할 때, 그런 걸 다 먹던 (동독이라는) 나라가 무너졌으니까, 우리는 뭐 더 한심하게 사는 나라니까, 결국 사회주의는 끝장이 났다는 생각을 했고요. 또 한가지는, 잘못하면 북한 자체도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 특히 북한 외교도, 북한 외교부도, 해외 공관도 없어질 수 있다는, 그런 위기감을 느꼈죠.

박성우:

알겠습니다.


고영환:

좀 더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박성우:

네.


고영환:

(독일의 통일을 보면서) 북한은 반대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은) 통일을 하려면 우리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복지사회를 건설해서, 그걸로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생각을 했고, 정말 (독일의 통일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는데, 반대로 북한은 ‘지도자와 간부들은 같은 배를 탄 운명이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통일이 자본주의식으로 되면 우리는 길바닥에 나앉는 거지가 된다’는 운명공동체론으로 해서 ‘북한이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지도자를 더 잘 지키자’는 결론을 낸 겁니다. 그러니까 남북이 서로 다른 결론을 냈어요. 우리는 (한국은) 통일 쪽으로 결론을 냈고, 북한은 자기네 것을 지켜야 된다는, 그리고 지키려면 지도자와 핵심계층인 당-정-군이 하나로 뭉치고, 한배를 탔다는 공동운명체론을 냈고, 이게 또 먹혀들었습니다.


박성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여쭤보겠습니다. 동독에 살던 사람들을 상대로 최근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동독 공산당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사람이 10%였다고 합니다. 또 서독에 살던 사람들의 25%는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지 설명을 좀 부탁드리고요. 남북한이 통일되더라도,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고영환:

10%의 동독 지역 사람들은 아마 당과 보위-안전 세력, 그리고 정부와 군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 그러니까 새 체제와 맞을 수 없는 사람들일 겁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나이가 많아서 새로운 체제에 적응할 시간을 못 가진 사람들을 합치면 10%는 될 겁니다. 그렇지만 90%는 동의한다는 말 아닙니까. 그리고 서독 지역의 25%의 사람들이 베를린 장벽을 다시 세워야 된다고 이야기했다는데요. 이게 무슨 생각이냐면, ‘동독 지역 사람들은 그냥 퍼다줘도 감사할 줄 모르고, 자기 갈 길을 모른다, 그러니까 정말 손해만 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25%입니다. 그렇지만 75%는 ‘잘 된 거다’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동독과 서독 주민의 절대다수는 통일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결론적으로 우리가 뭘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독일 사람들이 20년 동안 한 걸 우리는 10년 안에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 사람들은 정말 어렵게 살아본 경험이 있고, 근면하고, 교육열이 높고, 또 ‘양은냄비 기질’이라고 하잖아요, 뭔가 결심만 하면 달라붙어서 하는 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서독보다 좀 더 빨리 남북 화합을 이룰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박성우:

초등학생들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요. 어찌 보면 동독과 서독의 통일은 부러운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님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연구위원님,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