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가능성 어느해보다 크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새해를 맞아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한 1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은 이날 남북 고위급 접촉을 재개할 수 있으며 분위기가 마련되면 남북 정상회담도 개최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새해를 맞아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한 1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은 이날 남북 고위급 접촉을 재개할 수 있으며 분위기가 마련되면 남북 정상회담도 개최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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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정은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언급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새해 축하드립니다.

고영환: 새해 축하드립니다.

박성우: 북한의 신년사가 올해는 좀 색다르죠. 남북 정상회담을 언급했습니다. 먼저, 의도 분석부터 해 주시죠.

고영환: 김정은의 올해 신년사에서 특징적인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다는 점입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중단된 남북 고위급 접촉도 할 수 있고, 부문별 회담도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남북 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이 새해 벽두에 직접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북한은 지지난해도 그랬고 지난해에도 그랬고, 항상 무슨 꼬투리를 잡으며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남북관계 부문에 많은 시간을 들인 것은 물론이고 남북 최고위급 회담, 즉 남북 정상회담까지 직접 강조한 것은 다른 해와 비교할 때 분명히 다른 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언급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의도들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내부적인 요인인데요. 체제가 일정 부분 내부적으로 안정되었다고 판단하는 자신감이 김정은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김정은은 집권 이후 북한의 내부결속을 위하여 한국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긴장시킴으로써 재미를 본 것 같습니다. 김정은 체제를 세우는데 있어서 외부로부터의 ‘침략’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 일단 외부 사정을 잘 모르는 북한 주민들은 단결하게 되어 있는 것이죠. 김정은은 남한과의 관계를 최대로 긴장시켜 체제를 부분적으로 안정시킨 것입니다.

두 번째는 외부적인 요인입니다. 김정은 체제는 출범 직후부터 중국과의 관계를 냉각시켜 왔습니다. 집권 3년 동안 중국을 한반도 가보지 못하고 중국 고위간부들도 북한을 방문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됐습니다. 이를 뚫기 위해 김정은은 지난해 일본과 납치자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면서 관계 개선을 도모했죠. 그러나 납치자 문제에서 진전을 보기 어려웠고, 따라서 일북관계는 개선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김정은은 러시아로 향했죠. 최룡해를 모스크바에 보내 북러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는 형편이 좋지 않죠. 러시아 산업의 가장 많은 부문을 차지하는 석유값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고,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 문제 등으로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세계의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가 북한에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외관계에서 돌파구 마련이 필요했던 김정은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정세를 유리하게 전환시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정상회담보다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죠.

박성우: 그런데 조건이 붙어 있잖아요. 정상회담,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조건을 안 붙이면 북한이 아니죠. 물론 조건들이 붙어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군사훈련을 중지하라, 비방중상을 중단하라, 체제를 인정하라는 등의 대화 조건들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은 북한이 대화를 제기할 때마다 붙여온 조건들입니다.

북한이 가장 큰 조건으로 걸고 있는 문제를 좀 짚어 보죠. 북한은 지금 동계훈련 중입니다. 그리고 핵 개발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개발과 군사훈련을 해도 되고, 한국은 군사훈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비방중상 문제도, 체제 인정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정부나 지도부는 한국의 정부와 대통령을 맹비난하면서 한국의 개인단체들이나 일반인들이 전단을 날리는 것은 그만두라고 하고 있고, 체제를 인정하라고 하면서 한국의 종북분자들을 선동하고 끊임없이 간첩들을 내보내면서 한국 국민들에게는 정부를 뒤집으라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대화에 조건들을 달아 놓으면 관계 개선이 되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조건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고위급 접촉을 하고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에 의지가 있다면 조건들을 말하지 말고 회담이나 접촉에 응해야 할 것입니다.

정상회담 가능성을 지금 말하는 것은 좀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조건들이 많이 붙어 있고, 북한이 연초에는 관계 개선을 말하다가 2월에 들어가서는 극렬한 대남 도발들을 해 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보건대 김정은이 직접 정상회담을 언급하였고 대외적 환경도 그렇고 해서 다른 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좀 더 크다고 판단합니다.

박성우: 미국을 포함해서 주변국을 상대로 하는 김정은의 발언도 짧지만 몇가지가 나왔습니다. 또 핵과 관련한 언급도 좀 있었습니다. 어떻게 분석하셨습니까?

고영환: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미국과 추종세력들이... 자위적인 핵 억제력을 파괴하고... 비열한 인권소동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난하였고,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할 것”이라는 점을 대외관계에서 강조했습니다. ‘미 제국주의’이니 ‘미제의 침략소동’이나 하는 말들을 해오던 북한이 미국을 그저 미국이라고 부른 것은 일단 진일보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핵경제 병진노선과 선군을 중시하는 입장을 변함없이 견지하겠다고 밝혀 북핵문제 해결은 올해 역시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도 성과가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한 대외관계를 언급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나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언급하는 부분이 빠져있어 올해 북한이 대외관계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외 부문만 보더라도, 역시 북한은 선민이나 선경 대신 선군을 따라갈 것이고, ‘비핵선경’ 보다는 역시 ‘핵경제 병진’이라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나 북한 지도부를 위해서나 좋지 않은 길들을 가겠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박성우: 위원님은 북한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실 때부터 신년사나 신년사설을 꾸준히 보셨는데요. 올해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특이한 점은 또 어떤 게 있었나요?

고영환: 김정은이 신년사를 하면서 몇가지 정치적 언어들을 사용한 게 눈에 띕니다. 특히 ‘백두의 칼바람 정신’, ‘멸사복무’ 같은 단어들이 생소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백두의 고귀한 혁명 정신’ 같은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나 구호를 사용하였는데, 김정은은 ‘칼바람 정신’ 같은 부정적인 의미의 구호를 제시하였습니다. 여기에 ‘멸사복무’라는 단어도 나왔는데, 북한은 남한을 주제로 한 영화들을 제작할 때 한국 군인들이 쓰는 ‘멸사봉공’이라는 말들을 부정적으로 화면에 많이 썼어요. 이런 말들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생소한데, 왜 이런 표현들을 쓰는지 참으로 이채롭습니다.

한 가지를 더 언급한다면, 김정은은 축산, 수산, 농산을 3대 과업으로 정하면서 이를 관철하라고 독려하였는데, 사실 이 말은 김정은이 만든 정책이 아니고 김일성이 내놓은 정책들입니다. 김일성은 생전에 인민들이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생선을 먹게 해주겠다고 말해왔습니다. 할아버지의 정책을 손자가 농산, 축산, 수산 3대 과업으로 다시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핵이니 군사강국이니 하는 말들을 하지 말고, 농산, 축산, 수산을 정말로 발전시키고 많은 투자를 이 분야에 함으로써 인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박성우: 남한의 박근혜 대통령도 신년사를 했습니다. 12월 31일에 했죠. 상대적으로 좀 짧죠. 2분 45초 분량이었습니다. 위원님께서는 두 신년사를 다 들어보셨을텐데요.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좀 해 주시죠.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고영환: 김정은 제1비서는 30분 가까이 신년사를 하였고, 박근혜 대통령은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2분 45초 동안의 짧은 신년사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시간 차이가 나는 것은 남과 북의 정치체제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1인 지배체제 국가입니다. 이 말은 간부들의 지시가 밑으로 잘 내려먹히질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김정은은 정치부터 군사까지, 경제부터 문화까지, 모든 분야의 과업들을 다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해당 부문 간부들과 주민들이 그 과업들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1인 지배체제가 아니라, 법에 의해, 시스템에 의하여 굴러가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부분의 과제들을 다 밝힐 필요가 없는 것이죠. 박 대통령이 올해 기본 정책기조를 밝히면 장관이나 정부부처에서 그 방향대로 가는 것입니다.

한국에 와서 살면서 보니 여기에서는 대통령이 신년사를 해도 보통 주민들은 ‘대통령이 신년사를 하는가 보다’ 그런 사람들도 있고,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올해 정부가 중점적으로 뭘 하려 하지’ 이런 정도의 반응을 보입니다. 북한에서는 신년사가 나오면 주민들, 당원들, 군인들이 그것을 연구하고 암송하고, 그래서 신년사가 나오면 좀 긴장이 많이 됩니다. 두 체제 하에서 살아 보니 역시 편안한 게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박성우: 올해는 새해 벽두부터 남과 북이 모두 대화를 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대화 분위기가 잘 조성돼서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한 해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