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정은 제1비서가 신년사를 직접 발표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새해 축하드립니다.
고영환: 새해 축하드립니다.
박성우: 실장님 보시기에 이번 신년사에서 뭐가 제일 눈에 띄던가요?
고영환: 김정은 제1비서가 1월 1일에 신년사를 했는데요. 역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김정은이 직접 육성으로 신년사를 읽었다는 점입니다. 김일성 주석 사망 후 2012년까지 무려 18년 동안 북한은 신년 공동사설이라는 간접적인 신년사 형식을 취해 왔지요. 이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공개 석상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인민 앞에서 직접 말하는 것을 싫어해서 나왔던 조치였습니다.
김정은은 조부 김일성의 모습을 따라하면서 김정일과 다른 길을 걸으려 하는데요. 이번에도 그게 나타난 것이죠. 다시 말해 김정은은 올해 첫날을 김일성 따라하기로 시작한 셈입니다. 김정은은 양복도 김 주석처럼 입고, 머리칼 모양도 김 주석처럼 하고, 목소리도 김 주석처럼 내고, 연설도 김 주석처럼 하는 데요. 신년사를 직접 읽는 것도 김 주석을 따라한 것이라는 뜻이죠.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김정은이 김 주석을 정말로 닮았고 김일성이 김정은으로 환생한 것 같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선전선동의 결과로 봐야겠지요.
그런데 신년사에서 이상한 점도 있습니다. 간부들과 외국 손님 등 관중의 모습이 안 보이고, 박수 소리도 화면과 잘 맞지 않았습니다. 이번 신년사는 사전에 녹화한 것 같고, 또 뭔가 김정일 시대와 달리 잘 짜이지 않았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박성우: 김정은이 직접 신년사를 읽은 게 형식적 측면에서 볼 때 가장 눈에 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 제일 주목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고영환: 기본적으로 이번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기존의 북한 정책을 답습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김일성 주의’, ‘김정일 애국주의’, ‘선군’, ‘사회주의 고수’라는 북한의 기본원칙에 충실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김정은 제1비서가 새로운 노선, 즉 중국식 개혁이나 개방 등으로 경제의 기본노선을 바꾸기보다는 일단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사회주의와 자립적 민족경제, 국방 건설 등 기존의 노선을 견지하는 것이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입니다.
물론 이번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 등을 구호로 내걸었지만, 구체적인 실현 방도에 들어가 보면 역시 농업과 경공업의 우선 발전, 석탄, 금속, 철도 부문의 선행 등 북한이 수십 년 전부터 해오던 소리를 이번 신년사에서도 반복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김정은 제1비서가 경제 건설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취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과 수령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자’, ‘당을 강화하자’, ‘군인들을 일당백의 싸움꾼으로 키우고 첨단 무장장비들을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이자’ 이런 구호들은 김정일 시대와 다를 바가 없어 변화를 기대하였던 북한 주민들이 실망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용어가 김정일 시대보다 조금 많아진 것은 약간은 기대해 볼만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박성우: 이번 신년사에 기반해서 볼 때,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고영환: 김정은 제1비서는 신년사에서 “북남 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자”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북한은 한국 정부를 “준엄한 심판대상”이라면서 비판하였는데, 올해 김정은의 첫 신년사에서는 한국 정부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중지하고 남북관계에 관한 공동선언들을 이행하자고 함으로써 일단은 대화의 제스처를 취했다고 봅니다. 신년사 전체 맥락을 보면 북한은 기존의 원칙들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남북관계를 지켜보겠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아시다시피 지난해 12월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이 선거에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고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선출됐지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의 현대화를 이룬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면서 한국의 여당인 새누리당을 수년간 이끈 정치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 공약에서 남북 사이에 신뢰를 쌓아 나갈 것이며 남북 사이에 신뢰와 믿음이 생긴다면 무엇이라도 가능하다는 ‘신뢰의 대북 정책’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남북합의 정신을 존중하고 대화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북한으로서는 박근혜 당선인이 2월 25일 집권한 후 어떠한 대북정책을 펴나가겠는지 살펴보겠다는 의중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올해 초반 남북 사이에는 서로의 의중을 살펴보는 탐색전이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적으로 남북 사이에는 풀어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습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문제가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되어 있고, 제재가 결정되면 남북관계는 냉랭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당선인이 대화를 하겠다고 하였고 북한이 이를 지켜본다는 입장을 표명한 만큼 북한이 더 이상 도발을 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통상적인 규범을 지키는 모습을 보인다면 남북관계는 개선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박성우: 앞으로 대외관계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고영환: 김정은의 이번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와 마찬가지로 주목되는 점은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직접적인 비난을 하지 않은 점입니다. 북한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항상 해오던 소리들인 ‘미제국주의자’, ‘전쟁도발 책동’,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에로의 전환’, ‘주한미군 철수’, ‘핵무기 보유’ 등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비록 오바마 대통령이 재집권하였지만, 어떻게 보면 새로운 정부가 구성되는 셈이고, 북한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공화당 정부보다는 민주당 정부를 선호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은 오바마 2기 행정부 초기부터 미국을 비난하여 대외적으로 불리한 정세를 먼저 조성하지는 않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도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북한의 지난해 12월 12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문제가 아직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되어 있고, 곧이어 제재 조치도 결의될 것이 확실시되며, 제재 수위가 낮게 결정될 경우 미국 단독으로도 강한 제재조치를 내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북한은 반발할 것이고, 반발의 형태가 3차 핵실험으로 나타날 경우에는 미북관계와 대외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한편, 북한이 신년사에서 “온갖 형태의 지배와 예속을 반대한다”고 표현한 것도 주목할만 합니다. 북한은 중국을 나쁘게 표현할 때 흔히 “지배” 혹은 “지배주의”라고 말하는데요. 신년사에서 이를 언급한 것은 중국과 친선관계는 유지하겠지만, 개혁개방 등에 대한 간섭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이 성사는 되겠지만 개혁개방에 대한 압력은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로도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박성우: 미국이나 한국도 대통령이 연두교서나 신년사를 발표하는데요. 북한의 신년사와는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우리 청취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좀 해 주시지요.
고영환: 신년사의 공통점은 새해 벽두에 한다는 점, 그리고 각 나라의 수반이 한다는 점이죠. 차이점은 우선은 북한의 신년사나 공동사설의 경우 내용이 무척 길다는 점입니다. 어떤 때는 한 번 쭉 읽어보는 데 40분씩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해에 인민들이 해야 할 과업을 부문별로 자세히 나열하지요.
이에 반하여 한국이나 미국의 연두교서나 신년사는 내용이 우선 짧고, 그해에 추진해야 할 기본적인 내용들을 담기 때문에 몇 분 안에 끝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 대통령들의 신년사는 인민들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인민들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또한 역시 가장 큰 차이점은 북한의 신년사는 사람들이 모두 공부하고 암기해야 하는데,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신년사를 하나보다’ 하면서 암기는커녕 공부도 하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웃음)
박성우: 그렇군요. 북한에서도 신년사를 통해 정부가 인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이야기할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