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양건의 후임은 김영철 정찰총국장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부원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지난달 사망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후임으로 천안함 폭침을 지휘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임명된 것 같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부원장님, 먼저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영환: 천안호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의 배후 핵심으로 알려진 북한의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남북 관계를 총괄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복수의 한국 정부 소식통이 지난 18일 밝혔습니다. 대북 소식통은 "지난달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후임으로 김영철이 내정됐다는 정보가 있다. 상당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통전부장과 함께 노동당 정치국의 비서직까지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영철이 지난 1일 새해 첫 공식 일정인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때는 군복을 입고 참석한 것으로 볼 때 통전부장에 임명됐다면 아주 최근의 일일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습니다.
북한 군부의 대표적인 대남 강경파인 김영철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 와 벼락출세를 한 인물로 김정은의 측근 인물입니다. 김영철은 1946년 양강도 출신으로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후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에서 근무하다가 2009년 2월에는 정찰총국장에 올랐습니다. 바로 그가 천안호 폭침과 연평도 포격, 미국 소니사 해킹 사건, 비무장지대 지뢰 도발 등 크고 작은 대남 도발과 위협을 사실상 기획하고 집행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 출신이 당 비서로 임명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됩니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대남 공작 전문가인 김영철이 대남 총책임자가 되면 합리주의자였던 김양건 전 대남비서 때보다 북한의 대남정책을 가늠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도 공작과 도발 전문가인 김영철이 대남비서가 되는 경우 남북관계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박성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군부 강경파가 통전부장이 됐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게 남북관계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고영환: 한국의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김영철을 남북 대화의 창구 역할을 해온 노동당 통전부의 책임자로 임명했다면 당분간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군부 강경파의 대표적 인물인 김영철을 통전부장에 배치했다면 남북관계는 당분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거든요. 지난 시기 북한의 대남 도발 역사를 보면 1967년 허봉학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대남 총국장(대남 비서)에 임명된 직후인 1968년 1월에 북한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들에 의한 청와대 습격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저도 합리적이고 온건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으며 북한의 대표적인 외교관이었던 김양건 전 대남비서에 비해 중국에서 태어났다는 태성적 이유로 북한 내부에서도 초좌경분자로 평가받고 있고 대남 군사도발의 기본 원천지인 정찰총국의 수장으로 있던 김영철이 통전부장으로 임명된 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적어도 당분간은 대화쪽 보다는 공작이나 도발 쪽에 무게를 둘 것으로 전망합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앞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미국 소니사 해킹사건, 비무장지대 지뢰도발의 배후로 알려진 군부의 핵심 인물입니다. 그는 2009년에는 공작원을 한국에 보내 고(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2013년 3월 5일 조선중앙TV에 출연해 인민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명의로 '정전협정 백지화'를 발표하면서 "미제에 대해 다종화된 우리식의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맞받아치게 될 것"이라면서 "퍼부으면 불바다로 타번지게 돼 있다"고 위협을 하기도한 인물입니다. 그가 공작 전문가, 군사도발 전문가인 점을 고려할 때 남북관계는 당분간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다른 소식도 좀 살펴보겠습니다. 최룡해는 이제 공식 업무를 본격적으로 재개한 듯 합니다. 그런데 최룡해의 오른쪽 다리가 주목의 대상이 됐는데요. 이유를 좀 설명해주시죠.
고영환: 북한의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후 석 달 만에 최룡해 당 비서가 활동을 재개하면서 다시 나타났습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1월 24일 최 비서가 11월 초 지방의 한 협동농장으로 추방돼 혁명화 교육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역시 최룡해는 오뚜기 같은 사람입니다. 1998년 사로청 황색사건 때 그의 수족들은 모두 총살이 되었는데 그만이 살아났거든요.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도 총정치국장이 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하였습니다. 그러다 지난 해 11월 또다시 혁명화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의 건강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조선중앙TV가 청년동맹 창립 공연을 방송했는데 관람객으로 참석한 최룡해의 모습을 보면 오른쪽 다리가 유난히 홀쭉한 것이 포착됐습니다. 바지에 가려있긴 하지만 뼈만 앙상하게 남은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의 다리가 가늘어진 것은 1998년 사로청 황색사건 이후 당뇨병 합병증이 생긴 게 그 원인입니다. 힘든 혁명화를 거치면서 당뇨가 심해졌고, 그래서 그 합병증으로 다리가 가늘어진 것입니다. 이번에 혁명화를 하였으니 더 가늘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문제는 그의 다리가 가는가 아닌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최룡해가 김정은 체제에서 어떠한 역할을 놀 것인지에 있습니다. 저는 그가 중국과의 관계를 볼 수도 있고 근로단체 비서보다는 좀 더 중요한 위치로 옮겨갈 수 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김정은이라고 하여도 빨치산 출신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을 쉽게 내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박성우: 북한의 고위층 1%는 일본산 참치회를 사먹는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부위원장님께서 평양에 계실 때도 그랬는지 궁금한데요. 어떻습니까?
고영환: 자유아시아방송은 지난 16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평양 고위 간부사회에서는 참치회를 대접받지 못하면 상위 1%에 들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참치 요리가 인기"라고 보도했습니다. 평양을 다녀온 중국의 한 사업가는 "평양의 고위 계층만 이용할 수 있는 고급식당인 해당화 식당이나 고려호텔 식당에 가야 참치회를 내 놓는다"며 "4명이 술을 곁들여 참치회를 먹었는데 300달러 정도 지불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일본은 북한과의 교역을 금지하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수입한 것인지 궁금했다"며 "북한 고위층들은 참치회를 수시로 맛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제가 평양에서 외교관을 지낼 때는 김정일이 일본에서 참치를 들여 와 참치회나 참치초밥을 먹는다는 소리는 들었으나 간부들이 먹는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최근 유행을 타고 있는 모양입니다. 일반 주민들은 따뜻한 이밥 한 그릇 먹기가 힘든데 간부들은 일본에서 수입한 참치를 한 끼에 300달러나 내고 먹는다고 하니 참 마음이 아픕니다.
박성우: 김정은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이건 어떤 맥락에서 봐야할까요?
고영환: 김정은이 직접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노동신문이 지난 15일 보도했습니다. 노동신문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원수님이 잠시 휴식하면서 일꾼들에게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친히 기타를 들고 자신은 동지애의 노래를 제일 사랑한다고 하며 기타 선율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고 전했습니다. 신문은 김정은이 기타를 친 시간과 장소, 사진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이 뜬금없이 기타를 치며 동지애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노동신문이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김정은이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전세계에 확산된 자신의 공포정치와 폭군 영상을 희석하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모부 장성택과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등 고급 간부들을 사형대에 세워놓고 고사기관총으로 총살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간부들이 느꼈을 공포와 전율이 상상이 갑니다. 지금 21세기 대명천지에 이런 폭군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서글픕니다.
박성우: 기타 치는 김정은, 그 모습도 궁금합니다만,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대외관계가 개선돼서 경제가 살아나도록 지도부가 좀 더 노력해 주길 더 바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