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정일의 첫째 아들 김정남과 일본의 언론인이 교환한 전자우편이 추가로 공개됐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김정남이 보낸 전자우편에는 표현의 수위가 아슬아슬한 게 많다면서요?
고영환: 그렇습니다. 아슬아슬한 게 많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맏아들인 김정남이 일본 도쿄신문의 편집위원 고미유지 기자와 주고 받은 최신 이메일, 그러니까 전자우편 내용을 도쿄신문이 공개했는데요. 이전 방송에서 요지 기자가 김정남과 주고받은 전자우편 150통의 내용을 책으로 냈다고 방송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공개된 건 김정일 사망을 전후로 가장 최근에 둘이서 주고받은 전자우편들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게 많습니다.
김정남은 김정일 위원장이 죽기 얼마 전인 지난해 12월13일 일본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화폐개혁 후유증으로 북한 지도부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붕괴되었다. 북한이 화폐개혁의 책임을 물어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을 처형했지만, 화폐개혁 같은 일을 일개 간부가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도 너무 잘 알고 있다’며 북한 지도부를 비판했습니다. 저도 지난 방송에서 화폐개혁 같은 일은 박남기 부장 같은 일개 간부가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김정일과 김정은이 직접 지휘한 일이라는 점을 수 차례 강조한 바 있습니다. 김정남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지요.
현재 마카오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정남은 ‘북한에서 돈 버는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고위 간부에게 상납하는 뇌물 금액이 올라가고 있다. 이처럼 부패한 시스템은 반드시 붕괴한다. 지금 북한은 소련이 붕괴하기 직전을 연상시킨다’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더 나아가 김정남은 ‘북한이 현재 한류, 그러니까 한국유행에 이미 젖어 있으며, 구부러지지 않는 철은 부러질 수 있다. 너무 강하면 갑자기 부러진다. 북한의 철권통치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철권통치” 같은 말은 북한에서는 절대 쓰지 못하는데요. 이런 말을 쓴 것도 굉장히 놀랍지요.
김정남은 아버지도 비판하고, 김정은과 장성택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연평도 사건은 북한 군대가 자신들의 존재이유와 핵 보유의 정당성을 표면화하기 위해 범한 도발이다. 아버지는 너무 늙고, 후계자는 너무 어리고, 삼촌인 장성택은 군경력이 없기 때문에 군부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없는 것 같다’는 겁니다. 이 정도 발언이면 북한의 일반 탈북자도 할 수 없는 고강도 비판입니다.
김정남은 2011년 8월 김정일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도 ‘2012년을 앞두고 3대 세습을 정착시키는 성과를 내기 위한 것’이라면서 ‘북한이 경제지원을 부탁하고 식량을 구걸할 수 있는 나라가 중국과 러시아 말고 어디 있겠나’라고 비판했습니다. “구걸”이라는 단어까지 썼다는 게 주목할만하고요. 현재 북한 통치자 김정은에 대해 김정남은 ‘그 어린애의 표정에는 북한처럼 복잡한 나라의 후계자가 된 사명감과 진중함, 그리고 앞으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표정 등을 전혀 읽을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지도자를 “어린애”라 부르고 진중함과 사명감이 전혀 없다고 비판한 것에 대해 북한 사람인 저도 동감합니다. 아버지 시신의 온도가 채 식지도 않았는데 여자 군관하고 팔짱을 끼고 웃고 있고, 공연을 관람하며, 탱크와 비행기를 타고 좋아하는 모습은 정말 어린애 같고 철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놀랍게 받아들였습니다. 김정일의 맏아들이 “북한이 붕괴 직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김정은 후계체제의 앞날이 결코 밝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박성우: 김정은이 요즘은 군대를 돌아다니면서 쌍안경과 소총을 선물한다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고영환: 지난 7일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의 인민군 579군부대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은이 장병에게 쌍안경과 자동보총을 선물로 주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정은이 이런 선물을 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과거 김정일은 군부대를 방문하면서 이런 선물을 자주 줬는데요. 2008년 8월 뇌질환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주다가, 다시 살아난 이후에는 이런 선물을 주는 관행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쌍안경과 자동보총 선물이 3년6개월만에 다시 나타난 것이지요.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흉내를 많이 내고 있거든요. 병사들과 같이 팔짱을 끼는 모습이나 걸음걸이, 웃는 모습을 보면 김일성의 흉내를 의도적으로 많이 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이는 김정일이 김일성보다 인민들 속에서 인기가 없으니 김일성의 흉내를 내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김일성에 대한 향수를 이끌어내 충성심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다분히 있었기 때문인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김정일의 흉내를 내기 시작한 건데요. 이는 기본적으로는 군인들 속에서 충성심을 끌어내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할아버지만 흉내를 내고 다니니까 당정군 간부들과 일부 인민들 속에서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의 통치행태를 따르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게 됐고, 그래서 김정일의 모습도 따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북한이 김정일을 찬양하는 내용의 120m짜리 글귀를 바위에 새겼다는 뉴스가 있었는데요. 실장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북한이 김정일 생일 70돌을 앞두고 평안남도 증산군 석다산에 있는 바위에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 장군’이라는 대형 글자를 새겼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글자 길이 120미터, 글자 높이 10미터, 너비 5.5미터, 깊이 1.4미터라고 하니, 그 규모가 정말 놀랍습니다. 이런 글자를 새기는 것은 김정일의 이른바 업적을 전하고 충성심을 유도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런데 그런 글자를 새기는데 얼마나 많은 인민들의 돈과 땀, 피와 눈물이 들어갔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한쪽으로는 사람들이 굶어 죽는데, 봉건시대 왕들도 하지 못했던 반인민적인 행위들을 21세기에 진행하고 있다니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박성우: 작년에 북한이 특권층을 위해서 중국으로부터 과일을 1만 톤이나 수입했다는 보도가 있었지요?
고영환: 북한은 지난해 단동 세관을 거쳐 대략 1만 톤의 파인애플, 사과, 귤, 화룡 등 고급 열대과일 1,700만달러어치를 수입해 갔다고 중국 소식통이 지난 6일 밝혔습니다. 특히 2월16일과 4월15일경에 이런 비싼 과일의 수입량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한쪽에서는 한겨울에 열대과일을 먹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동상에 걸리고 돼지 사료를 먹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평등사회라고 하니, 참 모순된 현실입니다.
박성우: 마지막 질문입니다. 북한의 고려항공이 “세계 최악의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는데요. 실장님은 북한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실 때 고려항공을 많이 타 보셨을 듯 합니다. 어떻길래 이런 평가가 나오는 건가요?
고영환: 세계 항공사의 봉사 실태를 평가하는 영국의 항공전문 자문회사인 ‘스카이트랙스’라는 회사가 고려항공을 세계최악의 항공사라고 평가했습니다. 스카이트랙스는 고려항공 비행기의 천장에서 물이 새고 기내에서 제공되는 음식이 맛도 없다면서, 한마디로 서비스 즉 봉사상태가 끔찍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저도 외교관으로 있을 때 고려민항을 많이 타봤는데, 항상 저는 겁이 났어요. 특히 낡은 비행기를 탈 땐 ‘이게 떨어지지 않을까’ 이런 걱정을 했던 거지요. 북한 외교관들은 미국의 보잉기를 ‘벤츠’라고 불렀고 북한의 뚜-154비행기를 ‘달구지’라고 불렀습니다. 워낙 덜컹덜컹하고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너무 나니까 그랬던 거지요. 음식 수준도 아프리카 비행기들 수준보다 낮았어요. 그래서 항상 부끄러웠고 창피했습니다. 북한이 자꾸 강성대국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말로만 그러지 말고 그 나라의 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여객기 수준부터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박성우: 그렇습니다. 강성대국이라는 게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지요.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