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한성렬 전 주유엔 북한 차석대사가 외무성 미국국장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북한의 한성렬 전 차석대사가 다시 미국 업무를 맡는다는 소식이 최근에 보도됐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2013년 6월에 장일훈 현 뉴욕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평양으로 귀국하여 북한 외무성 조국통일국에서 일하고 있던 한성렬이 최근에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성렬 국장은 2002∼2006년과 2009∼2013년 두 차례에 걸쳐 주유엔 차석대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북핵 폐기를 위한 북미 2.29 합의 당시 뉴욕에서 큰 역할을 한 북한의 고위 외교관입니다.
뉴욕 주재 유엔 북한대표부는 주로 미국 정부와 국회, 언론과의 사업, 뉴욕에 있는 유엔 등 국제기구들의 사업, 그리고 뉴욕에 있는 한국인 교포들과의 사업 등을 맡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역시 미국 정부와의 관계 유지 및 개선입니다. 이 임무를 대사가 아닌 차석대사가 전담해 미국과의 직간접 접촉을 수행하고 있는 거죠.
미국 현지에서는 장일훈 차석대사가, 북한 외무성 중앙에서는 한성렬 미국국장이 큰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한성렬 국장이 과거에 뉴욕 현지에서 미국과 외교를 한 경험, 미국 관리들과 대화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향후에 북미간 대화를 위한 대외적 여건이 조성되면 나름대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교란 역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라서 능력있는 외교관들이 현지와 중앙에서 보조를 맞추면 성과가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박성우: 외교관의 역할이 중요하죠. 특히 요즘같이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땐 북한 외교부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드는데요. 북한 외교관 출신이신 위원님께서 보시기에 지금 북한 외교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고영환: 북한 체제의 구조상 북한에서 개별 외교관이 권한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외무성이 특권이 있는 기관이라고 하여도 수령체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북한에서 외교관으로 십여 년 이상을 근무하였지만 북한은 1인체제이다 보니 외무성, 해외 주재 대사관, 외교관들이 할 수 있는 일과 권한이 많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한국 외교관들이 하는 일을 보고, 또 외국에서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권한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주재국과 외교 업무를 할 때나 외국에 나가서 국제회의에 참가할 때 본국에서 큰 틀에서 주어진 임무를 알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러나 모든 것을 지도자에게 물어보고 그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 북한의 정책 결정 구조상 개인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외무성이 아무리 일을 잘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그들이 제기하는 정책들이 지도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행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외교관으로 북한 외무성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일을 해 보았지만 외국인들에게 하는 발언 하나하나를 중앙에서, 특히 지도자에게서 승인받아서 해야 하니 답답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비행기표 하나를 끊어도 지도자에게 승인받아야 하는 것이 북한 체제이니 일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가 없습니다. 북한 외교가 많이 막혀 있는데요. 해야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박성우: 북한 외교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그런데 외교가 국가의 운명을 바꾸는 경우도 있잖아요?
고영환: 세계 정치사의 흐름을 보면, 상대국과 어떻게 외교를 하느냐, 특히 한반도에서처럼 주변에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들만 있는 나라에서 외교를 잘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민족의 운명과 관련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외교관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다른 나라와 정치, 경제, 문화적 관계를 맺는 일을 한다고 하지만, 국제사회의 의견을 자기네한테 유리하도록 이끄는 일을 하기에 소리 없는 전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한반도 역사 속에도 뛰어난 외교를 펼쳐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거나 국가에 큰 이익을 준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중 탁월한 외교관이 있죠. 북한에서도 널리 알려진 ‘서희’라고 하는 고려의 외교관입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을 때, 중국은 당나라가 멸망하여 분열과 혼란을 거듭하고, 중국 북방에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세력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요나라는 송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고려를 먼저 복종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소손녕과 80만 대군을 고려로 보냈습니다. 소손녕은 압록강을 건너 봉산군에 진을 치고 고려 조정에 “고려의 왕과 신하가 우리 앞에 와서 항복하지 않으면 80만 대군으로 고려를 쓸어버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서희가 홀로 적진으로 가 당당함과 품위를 잃지 않은채 소손녕과 맞섰고 그와 외교 담판을 했습니다. 서희는 소손녕을 설득하여 요나라의 80만 대군을 물러나게 했을뿐 아니라 압록강 유역의 여진족까지 몰아내고 강동 6주에 성을 쌓아 고려 영토로 삼았습니다. 싸우지 않고 침략군을 돌려보내고 영토까지 넓혀 나라의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든 위대한 영웅이 바로 서희라고 말할 수 있죠.
박성우: 외교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고려 시대의 외교관 서희를 예로 들어서 설명해 주셨는데요. 북한도 외교를 좀 더 중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교와 관련해서 질문을 좀 더 드리겠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보더라도 외교관들이 많은 일을 하지요. 위원님께서 보시기에 역대 주한 미국 대사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누구였는지도 물어보고 싶습니다.
고영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에 부임하였던 미국 대사는 현재의 마크 리퍼트 대사까지 총 23명입니다. 초대 주한 미 대사는 북한 주민들도 잘 아는 존 무초입니다. 무초 대사는 한국전쟁을 보았고, 제6대 마셜 그린 대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을 지켜봤고, 제12대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는 박 대통령이 저격당한 1979년 10.26 사태와 전두환 대통령의 1980년 12.12 군사쿠데타를 목격했습니다.
제21대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첫 여성 대사이자 대표적 지한파로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했던 인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도 갖고 있죠. 제22대 성김 대사는 첫 한국계로 서울 태생이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서울에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 외교관이 된 경우입니다. 지난 10월 이임 후 미국으로 돌아간 김 대사는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대북정책 특별대표 겸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를 맡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캐슬린 스티븐스, 한국 이름 심은경 대사를 좋아합니다. 한국말을 자유자재로 하고,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던 외교관의 모범 같은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리퍼트 현 주한 미국 대사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영환: 마크 리퍼트 현 주한 미국대사는 마흔한 살의 최연소 대사죠. 그는 아내에게 한국의 비빔밥과 두부찌개의 별미를 선사하는 가장이며, 서울의 야구장에서 ‘치맥’, 그러니까 닭튀김과 맥주도 즐기는 동네 아저씨 같은 대사입니다. 리퍼트 대사는 김장 문화제에 참가해 고무장갑을 끼고 김치를 담그기도 합니다. 그는 대사관저에서 광화문 미 대사관까지 주로 걸어서 출근을 하는 서민 같은 느낌의 대사이기도 합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리퍼트 대사는 한국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오바마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인 리퍼트 대사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인 한미동맹을 더 강화하고 한미 사이의 수많은 현안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는 대사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박성우: 밤에 퇴근하다 보면 리퍼트 대사가 광화문 근방 거리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보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도 나누던데요. 이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외교가 국가간의 관계를 증진하는 초석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