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정남 피살 사건으로 북한과 말레이시아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부원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외교관계가 엉망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부원장님은 어찌 보셨습니까?
고영환: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국제 비행장에서 백주대낮에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맏아들 김정남이 북측에 의해 독살되는, 첩보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중대 범죄 사건이 발생했죠. 지난 22일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김정남 독살 사건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했으며 심지어 쿠알라룸푸르 주재 북한대사관 2등서기관과 고려항공 말레이시아 지점 직원이 사건에 관련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북한 국적의 기술자 한 명은 암살 배후로 체포됐습니다. 외국에 기술자들을 내보내는 것도 김정은의 지시를 받는 북한 체제의 속성상 김정일의 맏아들 김정남을 살해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바로 김정은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동남아시아에서 그나마 가까운 사이로 간주되던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는 지난 19일 북한 국적자들을 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지목한 말레이시아 경찰 발표에 대해 "신뢰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 21일 평양 주재 말레이시아 대사 모하맛 니잔을 본국으로 소환했습니다.
말레이시아 언론들은 북한을 비판하는 기사를 폭포같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21일 '말레이시아 주권과 법을 존중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증거가 있다면 조사하는 게 원칙"이라며 "북한이 비논리적 주장으로 말레이시아의 공정한 수사권을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말레이시아 일간 '베리타 하리안'은 "북한에 외교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며 "외교 소통이 실패하면 비자 면제 프로그램 종료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말레이시아 국제전략연구소(ISIS)의 스티븐 웡 부소장은 "만약 북한 정부가 암살을 주도했고 북한 공작원이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면 양국 국민의 이동 문제뿐 아니라 북한과 맺은 외교 관계 전반이 재검토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북한에서 외교관을 지낸 제가 보더라도 말레이시아 정부 수반까지 나서서 북한의 강철 대사를 직접 비판하는 것을 보면 북한과 말레이시아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무엇이 발단이었는지 따져 보면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의 발언이 문제가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습니다. 동의하시는지요?
고영환: 지난 2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북한 대사관 앞에서 강철 대사는 김정남 암살에 대한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전날인 19일 수사 발표에서 남성 용의자 5명이 모두 북한 국적이라며 이 사건의 배후에 북한이 있음을 시사하는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을 전면 부인한 것입니다.
강 대사는 한국과 말레이시아 정부가 결탁해 이번 사건을 조작했다는 주장도 쏟아냈습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이라며 말레이시아와 한국을 노골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는 지난 17일 밤에도 김정남의 시신이 안치된 쿠알라룸푸르 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정부가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말레이시아를 자극했습니다.
강철 대사의 도를 넘어선 외교적 실례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격분했습니다. 외교부가 지난 20일 강철 대사를 불러 17일 기자회견 발언에 대해 따졌으며 평양 주재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습니다.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이날 성명에서 "강 대사의 발언은 말레이시아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나집 라작 총리까지 직접 나서서 "우리 경찰과 의사들을 믿고 있다. 그들이 북한에 죄를 덧씌울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철 대사가 물론 평양의 지시, 특히 김정은의 허락이 없이 이런 외교적 사고를 일으킬 수는 없다고 치더라도, 현지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대사가 외교적으로 부드럽게 돌려 표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나서는 것은 김정남 독살 사건이 대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엄청나고, 이를 조금이라도 잘못 처리할 경우 처형당할 수도 있다는 긴장감과 두려움 때문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박성우: 부원장님은 북한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셨기 때문에 아마 가장 정확한 해석을 해 주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 김정남 피살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관계는 좋은 편이었죠. 북한 사람이 비자 없이 들어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니까요. 양국이 이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북한과 말레이시아의 관계가 이렇게 밀접한 이유는 1970년대 ‘쁠럭 불가담’ 운동에서 손을 잡았고 1980년대 말레이시아 총리였던 마하티르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개별적인 친분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 여권으로 비자, 즉 입국사증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의 동남아시아 거점국가이고 공작거점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10월에는 미북 간의 비공식 접촉 장소로도 사용될 만큼 북한이 선호하는 국가입니다.
그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두 나라는 이제 김정은이 말레이시아 수도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비행장 한복판에서 김정일의 맏아들 김정남을 독살해 말레이시아의 국가 주권을 난폭하게 위반하면서 서로 마주 달리는 폭주 기관차처럼 종말을 향해 가는 양상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박성우: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에 자주 다뤘던 소재 중 하나가 바로 김정남이었습니다. 부원장님의 김정남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피살 사건을 계기로 남한 내 고위급 탈북자들에 대한 북측의 암살 시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데요. 부원장님 생활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고영환: 김정일의 첫째 부인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이 서방으로 탈출한 후 쓴 ‘등나무 집’이라는 제목의 책을 몇 번이고 읽어 보았는데, 김정일은 김정남이 태어나고 그가 크면서 ‘네가 내 뒤를 이을 대장’이라고 했을 정도로 김정남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세 번째 부인 고용희(고영희)와 결혼하고 그와의 사이에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이 태어나고 크면서 사랑이 그들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이고, 김정남은 후계 경쟁에서 멀어졌습니다. 이에 김정남은 무척이나 상심한 것으로 보이고, 김정은은 김정은대로 자신의 경쟁자인 김정남을 몇 번이고 죽이려고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김정남은 타향에서 동생에게 독살당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으로서, 같은 탈북자로서 깊은 비애를 느낍니다. 또한 김정은이 고모부는 물론 형까지 살해하는 잔인한 장면들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북측이 저도 살해하려고 시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 한국정부는 저에 대한 경찰 경호를 24시간 3교대로 4명씩 경호하는 체제로 강화했습니다. 북한 정권은 사람의 피를 먹으며 기생한다고 보면 될 것 같고요. 김정은이 이렇게 피를 좋아하다가는 자신도 언젠가는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박성우: 북측은 23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서 김정남 피살을 '공화국 공민의 쇼크사'로 지칭하면서 북한 배후설은 남한이 짠 '음모책동'이라고 주장했던데요.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점, 북한에 계시는 우리 청취자들도 모두 알고 계실 거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