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100% 나오는 이상한 선거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9일 김일성정치대학에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를 하는 모습.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9일 김일성정치대학에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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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결과가 나왔는데요. 위원님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영환: 북한이 지난 9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하고 그 결과를 11일 발표했습니다. 역시 이채로운 것은 99.97프로가 투표에 참여하고 100프로가 찬성했다는 것인데, 이런 투표율과 찬성률은 북한 빼고는 세상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북측이 참여율을 99.97 이런 식으로 표시하는 것은 북한 외교부가 김정일에게 외국의 반응을 보고하면서 “최소 한 명은 선거에서 빠질 것이고, 99.99프로가 나오는게 정상인데, 당신네 나라는 왜 100프로이냐, 이것은 거짓이다”라는 지적이 나왔다고 하니 고친 것인거든요.

이번 선거의 특징은 김일성이 사망한 후 치러진 10기 선거에서 교체율이 65퍼센트에 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교체율이 53퍼센트에 달한다는 점입니다. 김정은이 김정일 시대의, 그러니까 아버지 시대의 간부들을 대거 교체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에 김정은의 실세로 새롭게 떠오른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장정남 무력부장, 이영길 총참모장, 변인선 작전국장, 조연준 조직지도부 1부부장, 서휘 선전선동부 1부부장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대의원이 되면서 명실상부한 김정은의 측근으로 부상한 것이죠.

이외에 현철해 무력부 전 1부부장, 박재경 전 선전부국장, 김명국 전 작전국장 등 김정일 시대를 풍미하였던 김정일 측근들은 대거 사라졌습니다. 특히 이상한 것은 장성택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아 대의원이 된 것인데요. 이는 장성택파 사람들이 지도부에 너무 많기 때문에 시차를 두고 차례차례 숙청함으로써 김정은 체제에 주는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박성우: 김경희와 김영남이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요. 사실일 경우,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고영환: 동명이인은 이름은 같지만 다른 사람이라는 뜻인데요. 이번 대의원 선거에서 김경희라는 사람이 285호 태평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는데, 12기 선거에서는 평양의 3호 선거구에서 대의원으로 뽑혔습니다. 김경희가 평안북도까지 내려 갈 이유가 없는데 이번엔 내려 간 것이 이상하죠. 12 기 때는 김경희라는 사람이 2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285호 선거구에서 선출된 김경희가 다른 사람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들이 나오는 것이죠. 저도 개인적으로는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가 대의원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나이가 많아 대의원 선거에서 탈락하였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김영남이 대의원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허수아비 국가수반인 김영남이 대의원이 되었든 안 되었든 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문제는 김경희입니다. 김경희 비서가 대의원이 안 되었다면 이는 커다란 정치적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장성택 처형으로 김경희가 김정은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의미로도 되고, 백두혈통이 중간에서 끊어졌다는 의미로 되기도 때문입니다.

항간에서는 김경희와 장성택 사이가 안 좋았다는 소문이 있지만, 김정일 사후 둘 사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말이 있고요. 김정은이 장성택과 그의 가족, 친인척들을 모두 죽이거나 수용소로 보낼지는 김경희도 몰랐다는 소식들이 많았습니다. 만일 김경희가 대의원이 되지 않았다면, 이는 인간적으로는 김경희가 조카의 잔인함에 등을 돌렸고 두 사람 사이는 원수지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정치적으로는 김일성의 딸과 손주 사이가 틀어짐으로써 김일성의 백두혈통은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한 사람들이 이 진실을 알게 되면 그 영향이 엄청날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김여정이 대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만, 이번 선거를 계기로 공식 등장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앞으로 김여정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걸로 보십니까?

고영환: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지난 9일 선거 당일에 공식 등장했습니다. 북한 텔레비전과 중앙통신 등은 김여정이 오빠 김정은과 김일성정치대학에 마련된 선거 투표장에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문에서는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 바로 뒤에 김여정의 이름이 나왔고, 그녀를 당중앙위 책임일꾼이라고 불렀습니다. 북한에서 흔히 당 책임일꾼이라고 하면 당 중앙위 부부장 이상을 의미합니다. 즉 김여정이 조직부나 선전부 부부장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죠.

그녀는 대의원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면 대의원은 그렇게 권한이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여정의 공식 등장은 김정일이 동생 김경희와 같이 북한을 통치한 것처럼 김정은도 김여정과 같이 북한을 통치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김여정은 김정은의 신격화, 이미지 조작, 김정은의 1호 행사 등을 주관하는 막후 실세로 될 것입니다. 31세의 지도자와 27세의 여동생이 통치하는 북한. 경험도, 경륜도 없는데 막강한 권한만을 가지고 온 나라를 공포로 다스리는 지도자와 여동생이 있는 나라. 그리고 그 밑에서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는 간부들과 북한 주민들. 참으로 북한이 어디로 갈지 모두 우려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대의원 선거도 끝났으니, 이제 당 지도부 개편이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있습니다. 위원님도 동의하시는지요?

고영환: 북한이 이번 대의원 선거를 통해 무려 53퍼센트에 달하는 대의원들을 교체하였습니다. 2012년 4월에 열린 당대표자회의에서 임명된 당 정치국 위원들 중 약 2년이 지난 지금 없어진 사람들이 많지요. 이영호 총참모장,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우동측 보위부 1부부장 등은 처형되거나 숙청되었고, 현철해, 리명수, 문경덕, 리병삼, 현영철, 김명국, 정명도 등 고위급 간부들이 사라졌습니다. 정치국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그래서 정치국을 다시 꾸려야 하기 때문에 당 지도부가 새롭게 꾸려져야 할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위에 지적한 이름들만 보아도 참으로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많은 간부들이 사라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 지도부만 교체해야 할 형편이 아니고 국방위원회도 새로 꾸려야 할 것입니다. 국방위원회에서 김정은 다음으로 큰 역할을 하였던 장성택과 이영호 등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박성우: 위원님께서는 북한에서도 투표를 해 보셨고, 한국에 오셔서도 투표를 해 보셨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나요? 북한에 계신 청취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저는 이번 13기 대의원 선거 과정을 북한 텔레비전을 통해 주의깊게 관찰하였습니다. 제가 북한 외교관으로 일하며 평양에 살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사실 선거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백 프로 참가, 백 프로 찬성이니 말입니다. 북한이 이런 허위선거를 하는 이유는 위정자들, 특히 지도자들이 자신들은 정권을 가로챈 것이 아니라 직접 인민들이 뽑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여러 번 선거를 하였습니다. 대통령도 이번까지 다섯 번을 뽑았습니다. 내가 찬성 투표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지 마음 졸이며 선거결과를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빠짐없이 참여하였으나, 국회의원 선거나, 시장 선거 같은 것은 바쁜 일이 있을 땐 잘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선거는 아침에 좀 일찍 가서 빨리 끝내고, 그 날은 쉬는 날이니까 가족들과 서울 교외로 차를 타고 나가 고기를 구워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실 선거는 다 참여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이기는 한데, 한국에서는 선거에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하여 누가 뭐라고 하질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 자유가 너무 좋습니다.

박성우: 내가 찍어준 후보가 당선되는지 여부를 지켜보며 밤잠을 설치는 모습, 이런 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선거의 참모습인데요. 북한의 선거는 99% 투표에 100% 찬성이 나옵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