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일성 주석의 103회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평양에서 열렸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이번 103주년 행사를 위원님께서는 어찌 보셨는지요? 그리고 위원님이 평양에 계실 때하고 비교를 해 보면,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도 말씀을 해 주시죠.
고영환: 북한은 올해 4월 15일 역시 이른바 ‘태양절’ 명절로 들썩였습니다.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00돌 때처럼 대규모 열병식과 군중시위 등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명절 분위기는 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날 새벽 0시에는 김정은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맞으며 군 간부들을 대동하고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습니다. 그를 수행한 간부들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리영길 군 총참모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등 고위장령들 뿐이었습니다. 사실 인민들이 보기에는 당, 국가, 군대의 간부들을 다 데리고 가야 보기가 낫겠는데, 왜 군대 간부들만 데리고 갔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로동신문은 4월 15일 6개면 전체를 생일 행사와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도배했고, 조선중앙TV는 오전 8시부터 특별방송을 하면서 태양절 특집물로 채웠습니다. 지난 12일 열린 만경대상 국제마라톤대회에는 30여개 국가에서 온 650명의 외국인이 참가했습니다. 작년보다 무려 3배가 넘는 외국인 숫자였습니다. 4월 15일 저녁 평양 대동강가에서는 불꽃놀이도 진행되고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등 다양한 예술행사와 요리축전이 연일 열려 명절 분위기를 조성하였습니다.
박 기자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물으셨는데, 제가 70-80년대 북한 외교관으로 평양에서 근무할 때는 김일성 주석이 살아 있어서 생일을 쇠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우선 사망한 사람의 생일을 쇤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망한 날을 기념하는 것은 외국에서도 있는 일이지만 죽은 사람의 생일을 이렇게 온 나라가 경축하고 국가가 큰 돈을 들여 외국인 선수들을 초청하고 예술인들도 데려오고 하면서 귀한 외화를 쓰는 것이 과연 정당하고 옳은 일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김정은이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 생일을 더 크게 쇠는 것은 북한 주민들 속에서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가 김정일의 이미지보다 더 좋기 때문에 통치하는데 더 이용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서 그리하는 것이겠지만, 죽은 사람들까지 통치에 이용하는 것은 어쩐지 서글퍼 보이기도 합니다.
박성우: 김정은 제1비서는 김일성 따라하기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왜 할아버지와 찍은 사진은 내놓지 않을까’라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고영환: 북한이 김일성과 김정은이 같이 있는 사진을 공개하면 똑 같은 모습을 연출하려 애쓰는 김정은의 권위를 크게 올려줄 수 있고 주민들 속에서 좋은 인상도 받을 수 있는데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김일성 생전에 김정은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하는 그간의 소식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생전에 세 명의 여인들, 즉 성혜림, 김영숙, 고영희 등에게서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 김설송 등 여러 명의 자식들을 두었습니다. 그 중 김일성의 허락을 받고 공식으로 결혼한 여성은 김영숙 뿐입니다. 김일성이 혼외 자식들은 인정하지 않고 정식 결혼한 며느리 김영숙과 손녀 김설송만을 만나고 예뻐해 주었다고 합니다.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도 2004년 유방암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하기 전에 김정일에게 시아버지 김일성을 만나게 해 달라고 여러번 부탁을 하였으나 김정일은 이런 부탁을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하죠. 결과적으로 고영희도 김정은도 김일성 생전에 시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지도, 기념사진을 찍지도 못한 것입니다.
물론 북한이 김일성과 김정은이 같이 있는 모습의 사진을 합성해 내보낼 수는 있지만 전문가들이 보면 합성사진은 금방 알아낼 수 있습니다. 김정은으로서는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박성우: 소위 ‘태양절’ 관련 소식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김기남의 주석단에 앉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올해 86세인 김기남 로동당 선전담당 비서가 최근 북한 중앙행사들의 주석단에서 모습을 감추면서 그의 위상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9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3차 회의에서 주석단이 아닌 방청석 세번째 줄에 리재일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정치국 위원인 그는 그전까지는 항상 주석단에서도 맨 앞줄을 차지했지만 이날은 부상급 간부들과 함께 방청석에 앉은 것입니다. 이는 매우 희한한 일입니다.
김기남 비서는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시작으로 로동신문 책임주필, 1990년대 선전담당 비서로 활약하면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의 정당성 확보와 우상화에 공헌한 3대째 권력의 실세입니다.
이런 경력을 가진 그가 주석단에 앉지 못하고 밑에 내려와 앉은 것은 업무 수행에서 과오를 범해 문책 차원의 강등 조치가 있었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김정은은 김기남을 부부장급으로 내려 보내 ‘내가 김기남 비서 정도도 단번에 부부장급으로 떨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충성심을 제고하려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군장령들의 왕별이 떨어졌다 올라갔다 하는 일이 빈번한 북한에서 김기남이 주석단에서 방청석으로 내려 온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나이 아흔이 가까운, 김일성과 같이 일해 온 노인이 이제 30대 초반의 지도자에게 휘둘리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박성우: 리설주는 다시 나타났죠. 어떤 이유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김정은 제1비서의 부인 리설주가 사라진 지 넉 달 만인 지난 14일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진행된 남자 축구 경기를 관람하려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리설주는 지난해 12월 김정일 위원장 3주기 때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이후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리설주가 출산했을 가능성을 주시해왔지만, 사진으로 볼 때 출산을 한 것 같지는 않다고 하였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은 리설주보다 김정은을 수행하는 횟수가 적었으나 지난해 말부터 올에 들어 12차례 김정은을 수행하면서 리설주보다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 여성 권력을 상징하는 올케와 시누이 간의 다툼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김정은의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박성우: 김정은 우상화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보도가 있었죠. 위원님께서는 이 소식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셨을 텐데요. 무슨 생각 하셨습니까?
고영환: 북측은 지난 4월1일부터 학교의 새 학기를 맞아 김정은 로동당 제1비서를 우상화하는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김정은 혁명활동 교재 참고서에 의하면 김정은이 “3살 때부터 총을 쐈고, 3초 내에 10발을 다 목표를 명중시키며, 3살 때부터 자동차 운전을 시작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또 “6살 때 사나운 말을 마음대로 길들여 타고 기마수보다 더 잘 달렸다” 등 인간이 할 수 없는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북한 소식통들은 북한 아이들까지 어떻게 3살짜리가 총을 쏠 수 있는지 물어볼 정도이고 선생님들이 대답을 못해 쩔쩔맨다고 말합니다.
우상화는 김일성 때부터 시작되었으나 세 살짜리가 총을 쏘고 자동차를 몰았다는 내용은 김일성, 김정일도 못해 본 거짓말입니다. 어느 부모가 세 살짜리 꼬마에게 살인 무기를 손에 쥐여주고 총을 쏘게 하며 자동차 운전을 시키겠습니까? 너무 허황된 이런 우상화는 북한이 김정은 유일지배권력을 다지기 위해 얼마나 조급해 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박성우: 김정은 제1비서가 3살 때부터 총을 쐈다고 선전하는 것보다는 김일성과 함께 찍은 사진을 한 장 공개하는 게 더 효과적일텐데요. 그런데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없다면,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 볼 때, 이보다 더 답답한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