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15일 김일성 광장에서 개최된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대중 연설을 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잘 지냈습니다.
박성우: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연설을 했습니다. 실장님도 지켜보셨을 텐데요. 해석할 게 많지요.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김정은이 지난 4월15일 평양에서 진행된 열병식에서 첫 공개연설을 했습니다. 저도 그날 북한 텔레비전을 사무실에서 보았는데, 김정은의 모습을 보니 할아버지 김일성을 닮으려 하는 노력이 많이 눈에 띄었다. 머리칼 모습, 닫긴 깃 양복(쯔메리), 말투, 손짓 등이 김일성의 모습과 많이 유사했습니다. 김정은의 목소리를 분석한 음성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김일성의 목소리를 흉내 내기 위해 고도의 연습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젊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고 나이 든 사람의 목소리를 일부러 냈다는 것이죠.
김정은의 옆에 선 최룡해나 리영호 등 북한군 고위 장령들이 입은 흰 군복도 눈에 띄던 데요. 정전 후 김일성이 입었던 게 흰색 군복이었거든요. 아마 이도 북한 사람들에게 김일성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려는 전략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열병 종대가 지나갈 때 흰색 망토를 걸친 기마대 종대도 지나갔는데, 이 역시 항일 빨치산 시절 김일성의 영상을 떠올리게 하여 김정은이 김일성의 손자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주민들에게 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이 인민들 속에서 인기가 정말 없다는 걸 뜻합니다. 그래서 김정일의 흉내를 내기보다는 인기가 있었던 김일성을 따라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미리 훈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이 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니 인민들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몸을 계속 움직였는데요. 아직 너무 젊어서 그런지 어색해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생중계로 하다보니 ‘김정은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는 기회를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한 듯합니다.
박성우: 연설 내용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영환: 김정은의 연설을 들으면서 저는 북한이 ‘강성대국을 과연 선포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 생일 100주년 때 강성대국을 선포하겠다고 늘 강조해 왔거든요. 그런데 인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김정은은 차마 ‘강성대국이 되었다’고 선포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어느 순간부터 강성대국이라는 표현 대신에 강성부흥,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 강성국가 등의 표현을 쓰기 시작했지요. 이는 북한이 강성대국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북한 지도층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은 북한이 인공위성 제작국이라는 소리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 아시듯 이는 13일 날 발사한 장거리 로켓이 발사 2분여만에 공중에서 폭발한 것을 온 세계가 다 보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의 연설에는 북한의 미래를 어떻게 건설하겠다는 목표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도 주목할만 했습니다. 김정은은 핵과 군사력 발전, 사상 발전, 단결 등만 강조했어요. 인민생활에 대해서는 딱 한 문장만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이 연설을 들으면서 김정은이 통치 행태는 김일성 주석의 모습을 닮아 그대로 하고 정책에서는 김정일의 선군사상을 그대로 계승하려 한다는 것을 느낌을 받았습니다. 13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전격적으로 북한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발표하였고, 북한을 감싸고돌던 중국도 북한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적극 지지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습니다. 북한 지도부의 앞날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는 않은 듯합니다.
박성우: 열병식 때 주석단의 모습도 주목할만했습니다. 권력구도의 변화가 감지된 게 있었는지요?
고영환: 주석단의 모습도 주목할만했지요. 김정은의 바로 옆에는 항상 이영호 총참모장이 서 있었는데, 이번엔 바로 옆에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섰고, 그 옆에 이영호 총참모장, 김정각 인민무력부장 등이 섰습니다. 이전 시기 청년동맹 1비서를 하다가 외화를 마음대로 쓰고 부화방탕한 행위를 하였다가 혁명화까지 겪은 최룡해가 다시 살아나 2010년 인민군 대장, 당 중앙위 비서로 고속 승진을 했지요. 그러다가 2년도 안되어 차수로, 총정치국장으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되었는데요. 이제는 최룡해가 군부 제1위의 위상을 가졌다는 걸 이번 주석단 모습에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영호도 이젠 최룡해의 뒷전으로 물러난 게 분명해 보입니다. 김정일의 선군사상으로 북한 군부는 이제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지고 북한에서 최대의 권력을 가진 집단이 되었습니다. 장성택도 최룡해, 이영호, 김정각의 뒤로 물러나 서 있을 정도니까요. 한편, 김정은의 오른쪽으로는 북한의 얼굴마담인 김영남, 최영림 등이 섰고 김경희도 서 있었습니다. 김경희는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당 비서로 승진했지요. 이걸 보면 김경희가 남편 장성택과 함께 조카 김정은을 떠받드는 모양새입니다. 현재 북한의 모습을 보면 젊은 김정은, 그의 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군 장령들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듯합니다. 나라는 경제 전문가,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이끌어 가야 잘 사는데 군대가 이렇게 강한 영향력과 특권을 행사하며 나라의 재산을 축내고 있으니 힘없이 굶주리는 북한 인민만 더 불쌍해 보입니다.
박성우: 지난주에는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도 열렸는데요. 이제 3대세습이 마무리됐다고 봐도 되는 건가요?
고영환: 김정은이 당 1비서 국방위 1위원장 등이 되었으니 외견상으로는 3대세습이 완료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의 북한의 모습을 보면 김정은은 북한의 미래를 전망하거나 목표를 제시하는 등의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간부들끼리 모여가지고 왕별을 달고 정치국 위원이 되고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되는 등 승진하고 훈장 받고 선물 받고 그런 것만 하였습니다. 북한은 이번 4월 행사에 미사일 발사에만 8억5천만 달러, 행사준비와 진행에 10여억 달러 등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측입니다. 북한 인민들이 몇년간 굶지 않고 먹고 쓸 수 있는 돈이 며칠 동안 다 들어간 셈입니다.
이번 행사를 보면서 제가 북한 외교관으로 있던 1989년에 평양에서 진행된 제13차 세계청년학생 축전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수많은 외화를 축전에 쏟아 부은 이후부터 북한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이건 인민생활이 더 힘들어진다는 뜻이지요. 먹고살 것이 없으면 인민들은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체제가 위태로워지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겉으로는 3대세습이 완료된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이 개혁 개방 등 획기적인 경제정책을 취하지 않고 선군정치만 지속한다면 3대세습은 완성된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박성우: 북측이 평양에서 15일 불꽃놀이를 사상 최대 규모로 펼쳤지요?
고영환: 북한이 15일 저녁에 한 시간 동안 축포를 쏘았습니다. 2010년 4월 김일성 생일 98주년 때 축포놀이에 쓴 돈이 600만 달러였고 이번에는 1천만 달러어치의 축포를 하늘에 쏘았다고 합니다. 한국이나 프랑스같이 잘 사는 나라도 축포를 이렇게 한 시간씩 쏘는 걸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통상 한 10분 내지 15분 정도 쏘지요. 축포는 쏘는 순간 보는 눈은 즐겁지만 돌아서면 끝이고 배고픔은 쉽게 달랠 수 없습니다. 국가연회를 하고 열병식을 하고 봄 축전을 하고 미사일을 쏘고 당대표자회를 하고 최고인민회의를 하고, 이렇게 쓴 돈이 2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합니다. 북한의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걱정을 하는데 위에서는 이렇게 축포놀이만 하고 있으니 마음이 아픕니다.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곳에 돈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싶고요. 김일성도 허례허식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손주가 그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박성우: 불꽃놀이도 그렇고, 장거리 미사일도 그렇고, 하늘에 돈을 뿌리는 데에는 북한 지도부의 재주가 비상한 듯합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