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 모스크바 전승절 참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8일 오후 러시아 제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전승절) 행사 참석을 위해 평양을 출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8일 오후 러시아 제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전승절) 행사 참석을 위해 평양을 출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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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참석합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5월 9일은 러시아의 이른바 ‘대조국전쟁’ 승리 70주년이 되는 날이죠. 먼저, 우리 청취자들을 위해서 배경 설명을 간단하게 해 주시죠. 러시아 입장에선 왜 이 날이 중요한가요?

고영환: 오는 5월 9일은 구소련의 이른바 ‘위대한조국전쟁’, 즉 쏘독전쟁 승리 70년이 되는 날입니다. 히틀러 파시스트를 반대하는 이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800만 명 이상 전사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러시아 전선에 독일 전력의 80~90%를 투입했고, 300만 명 이상의 군대를 잃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구소련은 2000만 명이 넘는 군인과 민간인들이 사망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유럽전선은 사실상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과 러시아군은 레닌그라드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전투 등에서 대규모의 전투들을 치렀습니다. 예를 들어,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900일간 포위된 상태에서 싸웠고, 그러던 중 도시 인구 3분의 1인 100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그래도 레닌그라드는 항복하지 않았죠. 죽고 죽고 또 죽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은 러시아인들은 세계 최강 독일군을 누르고 마침내 전세를 역전시켰으며 동구라파 거의 전역과 독일을 함락시켰습니다. 히틀러는 지하실에서 자살하였고 독일은 항복하였습니다.

바로 이날을 기념하는 대규모 열병식과 행사가 9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5월 9일이 2차대전 이후 구소련이 미국과 함께 세계 초대강국으로 부활한 날이기에 중요한 것이죠. 구소련 붕괴 이후 소비에트 연맹이 갈라지고 러시아는 초대강국 반열에서 그저 그런 중견국 수준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를 재건하여 그 옛날의 영광을 되살리려 하는 것이고요.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이날을 크게 경축하려 하고 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행사에 세계 대다수 국가수반을 초청하였으나 우크라이나 문제, 크리미아 반도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으면서 서유럽 나라 대부분과 미국, 그리고 일본 등의 수반이 불참을 선언하였습니다. 중국과 구소련의 옛 가맹 공화국들 그리고 러시아와 친한 나라 등 20개국에서 대표단을 보냈습니다. 이 행사를 크게 경축하려던 푸틴 대통령이 체면을 구긴 것이죠.

박성우: 러시아가 김정은 제1비서를 이번 행사에 공식 초청했는데, 김 비서가 결국 안 가기로 했지요. 대신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현재 모스크바를 방문 중입니다. 위원님은 북한 외교관 출신이신데요. 외교 관례를 볼 때 김영남의 모스크바 방문은 적절하다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 행사 참석을 위해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고요. 원래는 김정은이 동 행사에 참가한다고 러시아 대통령궁이 말해왔고 실제로 북한 외교관들이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을 준비하기도 하였습니다. 김정은이 가기로 하였다가 허수아비 국가수반인 김영남이 러시아를 방문하게 되었으니 러시아가 화를 낼만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외교 관례를 볼 때 김영남이 모스크바 전승일에 가는 것은 크게 실례가 안 되지만, 그전에 김정은이 가기로 하였다가 취소한 것이 큰 외교적 결례가 되는 것입니다. 북한이 중국과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그토록 공을 들였는데 김정은이 가지 않기로 하면서 결국은 북러관계가 손상을 입게 되었고 특히는 푸틴 대통령의 김정은에 대한 개인적 신뢰가 많이 손상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박성우: 현재로선 추측만 가능한 상황입니다만, 위원님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정은 제1비서는 왜 모스크바를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십니까?

고영환: 김정은 제1비서의 러시아 전승절 기념행사 불참 통보를 두고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죠. 김정은이 모스크바에 가기로 하였다가 그만두기로 하고 러시아 측이 ‘내부 문제’ 때문에 김정은이 오지 않는다고 북한이 통보해왔다는 것을 공개하면서 북한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원산 지역을 방문한 김정은의 건강 상태도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고 북한에 특이 동향도 없어 보여 현재로서는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러시아 매체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는 “최근 평양에서 대량 숙청이 이뤄졌다는 보도를 감안하면 김정은은 가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면서 “크렘린으로서는 젊은 독재자의 변덕이 오히려 잘된 일이고 그가 없기에 살인과 무례로 가득 찬 그의 손을 공개적으로 잡아야 하는 불편을 견뎌야 했을 서방 지도자들이 안심할 것이 분명하다”고 꼬집었습니다.

북한에서 외교관을 지낸 제가 보기에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 포기는 몇 가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선은 의례사업과 신변 경호와 관련이 있습니다. 러시아 행사에 국가수반 및 정부 수반 20여명이 참가하고, 그 외에 수많은 군사대표단과 외국인, 관광객, 기자들이 오는데 김정은을 러시아가 특별하게 우대해서 신변호위를 할 리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는데 김정은을 그 안에 두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쩌겠느냐, 지도자 신변이 위험하다, 그런 말에 김정은이 포기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김정은을 다른 국가수반들과 달리 특별히 엄중하게 호위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겠죠.

둘째는 의례문제일 것입니다. 김정은은 세계 국가수반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립니다. 취임한지도 이제 갓 4년째죠. 젊고 어린 그를 시진핑 주석보다 더 예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크렘린 주석단에 각국 국가수반이 정렬해서 열병식을 보는데 김정은이 제일 가장자리에 서는 모습이 북한 텔레비전에 비춰지면 북한 사람들이 ‘위대한 영도자가 왜 저리 끝에 가서 서있는 걸까?’ 하고 의심하는 순간 김정은 우상화에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북측은 말하자면 특별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였는데 그것이 통하지 않은 것이죠.

셋째로 지도자가 러시아에 가서 전투기나 반항공 탐지기, 반항공 미사일 등 최신 무기들을 가져와야 하는데 러시아가 그런 것들을 줄 리가 없고, 그러니 이리저리 화가 난 김정은이 모스크바 방문을 취소해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심해질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박성우: 이제 남은 질문은 이거죠. ‘김정은이 중국엔 갈까’라는 점입니다. 중국 정부가 오는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전승절 행사에 김정은을 초청했는데요. 위원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고영환: 김정은이 모스크바에 가지 않으면서 올해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반일전승기념일 70돌 행사에는 참가하겠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2012년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뒤 아직까지 다른 국가를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에는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옵니다.

중국이 9월 행사에 세계 각국 정상들을 초청을 하였고 중국이 세계 2대강국으로 떠오른 지금, 그리고 중국이 미국 및 서방국가들과 큰 갈등을 겪고 있지 않는 조건에서, 미국과 서유럽 강대국 중 많은 국가수반이 이 행사에 참가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문제는 김정은인데, 현재까지 나타난 북한의 중국에 대한 태도를 보면 김정은이 9월에 베이징에 갈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중국에는 모스크바보다 더 많은 대표단, 관광객, 외국인들이 올 것이고, 말 그대로 북적북적하겠는데,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고 시진핑 지도부가 김정은을 특별경호나 특별대우해줄 것 같지도 않고, 그러면 김정은이 체면만 구기고 돌아 올 가능성이 많은데, 가려 하겠는지 의문스럽습니다.

문제는 김정은이 중국에 가지 않을 경우 북중관계는 더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이리저리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 같아서 올해가 좀 불안 불안합니다.

박성우: 김정은의 9월 베이징 방문도 성사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는 전망을 해 주셨는데요. 일단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고요. 종전 70주년이라는 기회가 매년 찾아오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북측 지도부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