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송환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가 사망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부원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미국에서 격한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찌 보셨는지요?
고영환: 북한에서 체포 억류됐다가 혼수상태에 빠진 상태로 미국 고향으로 송환된 22세의 젊은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가 지난 19일 사망했습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미국은 백악관부터 의회와 언론,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까지 온통 '북한 응징론'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부터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을 "잔혹한 정권"이라고 규정하고 "미국 정부가 법과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정권으로부터 무고한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결심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웜비어 사건을 계기로 대북 제재 수위를 더 높이겠다는 의미로 풀이됐습니다.
미 의회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격앙돼 있습니다. "김정은에게 살해당한 것"이란 반응까지 나왔습니다. 상원 군사위원장인 존 매케인 공화당 의원은 성명에서 "미국 시민인 웜비어는 김정은 정권에 살해당한 것"이라며 "미국은 적대 정권이 우리 시민을 살해하는 일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미 언론에선 대북 선제공격론도 나왔습니다. 미 폭스뉴스에 출연한 정치 분석가 에릭 볼링은 웜비어 사망을 언급하며 "북한 미사일이 LA를 향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며 사실상 대북 선제공격을 거론했습니다.
미국의 반응은 군사행동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미국은 웜비어 사망 몇 시간 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전략 폭격기 B-1B 랜서 두 대를 한반도 상공에 전개해 강원도 영월에서 폭격 훈련을 했습니다.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인데요. 미국 국민의 분노를 북한에 강하게 보여주기 위해 뜨기만 하면 그 아래 대상물은 말 그대로 초토화된다는 ‘죽음의 백조’ B-1B 전략폭격기까지 보낸 것입니다. 북한은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습니다.
박성우: 의문이 많은 사건이죠. 특히 웜비어 씨가 훔치려 했다는 정치 선전물이 도대체 무엇이었냐, 그리고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한 게 도대체 왜 15년 형에 해당하는 중범죄가 되느냐는 걸 북한 바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웜비어 씨가 혼수상태에 빠진 이유가 무엇이냐는 점도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죠. 북한에 계시는 우리 청취자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자세히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지난 13일 북한에 억류된 지 17개월 만에 송환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심각한 뇌 손상에 따른 식물인간 상태로 돌아왔다고 미국 의료진이 밝혔죠. 이는 웜비어가 지난해 3월 식중독에 걸린 후 수면제를 먹고 의식불명이 됐다는 북한의 주장을 반박한 것입니다. 미국 신시내티 주립병원의 대니얼 캔터 교수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웜비어는 광범위한 뇌 조직 손상을 입은 상태로, 식중독에 걸렸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캔터 교수는 뇌 손상 원인에 대해선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공개한 화면에는 웜비어가 호텔 벽에서 ‘제국주의 타도’ 등을 써놓은 구호판을 떼어 내려는 모습이 나옵니다. 북한 공민들이 벽에서 선전물을 떼어내도 기껏 받을 수 있는 형은 최대 3년 미만입니다. 그런데 북한 사람도 아닌 미국인이 벽에서 선전구호를 하나 떼 낸다고 그를 체포하고 15년 징역형을 선고한 것은 북한에서 산 저도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예전에 제가 북한 외교부에서 근무할 때 신임장 봉정을 김일성에게 하려고 왔던 아프리카 A 나라의 대사 한 명이 보통강 호텔에서 김일성의 얼굴이 담긴 평양타임스 신문을 구두에 넣어 구두형태를 유지하다가 청소원에게 발각되어 문제가 되었지만, 그 대사가 사과를 하고 북측은 대사 신임장을 받아준 적이 있었습니다. 죄가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는 아프리카 대사는 보내주고 아무것도 모르는 미국 청년이 반미 구호판을 떼여 놓았다고 15년형을 먹인다니 그 잔인함에 치가 떨립니다.
확실한 것은 웜비어 청년이 북한 선전물을 훼손하려 들었고, 북측은 그를 간첩 죄목으로 현지에서 체포해 미국 당국과 이 청년의 연관성을 찾아내려고 잠을 재우지 않고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어 그가 의식을 잃고 상당기간 혼수상태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미국 대학생 웜비어의 사망으로 북한은 독제체제의 속모양을 그대로 내보이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저는 북한이 이 많은 죄를 어찌 씻으려는 지 답답합니다.
박성우: 하나 더 여쭤보죠. 웜비어 씨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걸 북측이 1년 넘게 숨긴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북한 당국이 외국인, 특히 방북 중인 미국인이나 일본인들을 억류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향후 있을 북미, 북일 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마련하고 각각의 양자회담에서 북한이 얻고자 하는 것을 받아내기 위한 ‘인질 외교’를 하려는 것입니다. 인질을 가지고 있으면 생명을 중시하는 미국 등 서방나라들이 북한의 요구에 허리를 굽히고 들어 올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우리는 이런 사례를 수없이 목격해 왔죠.
또 다른 목적은 외화벌이입니다. 특히 일본 사람들에 하는 경우가 많고, 미국에도 돈을 종종 요구하는데요. 북한을 여행하는 서방국가 사람들, 특히 미국이나 일본 사람들을 사소한 이유로 억류하는 경우, 가족이나 친척들은 심장이 마릅니다.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사람에 따라 30만 달러, 50만 달러를 받아내고, 이런 작전이 성공을 하면 양자회담에 참석하였던 자들, 억류 구실을 만들어 투감시켰던 자들은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습니다.
웜비어를 억류하여 15년형이라는 중형을 매겼던 이유는 북미회담이 오래 걸릴 경우 그의 몸값을 높여 미측 고위관리들이 평양을 찾아와 굴복하게 하면서 저들의 외교적 목적을 이루고자 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 고문을 정도 이상 강하게 하였고, 이것이 결국은 화를 좌초하여 미국 청년을 사망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미국 전체를 분노의 도가니에 몰아넣었습니다. 정말 비인도주의적이며 비인간적인 인질외교라고 하겠습니다.
박성우: 남측 문재인 대통령은 웜비어 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서 북측을 질책하면서도 기존 대북 입장은 유지했습니다. 부원장님은 어떻게 해석하셨습니까?
고영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 사망과 관련해 "북한이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개탄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문 대통령이 웜비어 가족에게 보낸 조전에서 웜비어 군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심심한 조의와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고 말했습니다. 박 대변인은 또 웜비어 씨가 사망하기 전인 지난 19일 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무엇보다 북한이 웜비어의 상태가 나빠진 즉시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최선의 치료를 받게 했어야 할 인도적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미국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도 오토 웜비어의 사망과 관련해 "웜비어 학생이 사망에 이르게 된 아주 중대한 책임이 북한 당국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 국제 사회가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금년 중에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통하여 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박성우: 미국의 여론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아무리 한미 공조를 통해 대북정책의 흐름을 바꿔보려고 해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앞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주시할 필요가 있을 듯하고요. 미국 내 여론의 움직임에 변화가 있으면 이 시간에 다시 점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