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한반도] 평양에서 열리는 올림픽 보고 싶다

0:00 / 0:00

MC: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세차례의 도전 끝에 한국의 강원도 평창이 마침내 동계 올림픽 개최권을 따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감사합니다.

박성우: 2018년 동계 올림픽 개최권을 한국의 평창이 따냈는데요. 한국 사람들 참 좋아하고 있습니다. 실장님,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지난 7일 밤 12시18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제123차 총회에서 한국이 강력한 후보지인 도이췰란드의 뮌헨과, 알프스 산을 끼고 있는 아주 아름다운 도시인 프랑스의 안시를 따돌리고 2018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게 됐습니다. 평창은 한국의 강원도에 있는 군인데요. 인구 4만4천명이 사는 작은 도시입니다. 자크 로게 위원장이 평창을 발표했을 때, 정말 가슴이 찌릿찌릿했어요. 평창이라고 발표하는 순간, 저도 소리질렀고 아파트의 다른 주민들도 소리지르면서 좋아하더라고요. 모두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앉아 있었던 거지요. 한국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들 하셨을 거라고 봅니다. 한국은 1988년 하계 올림픽을 했지요.

이번에 동계 올림픽 개최권을 따냈지요. 세계축구선수권대회(FIFA 월드컵)도 했지요. 올해 9월에는 대구에서 세계육상대회를 합니다. 그리고 세계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 원(Formula One)이라는 아주 큰 대회도 합니다. 이렇게 다섯 개 대회를 다 한 나라는 한국 앞에 넷밖에 없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도이췰란드, 일본, 그 다음으로 한국입니다. 60년 전에 전쟁으로 모든 것이 다 파괴되고, 1인당 국민소득이 아프리카 나라보다 적었던 가난하고 헐벗고 못살던 대한민국이 이젠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섰고, 부자 나라들만 개최한다는 동계 올림픽을 하는 경제, 스포츠 강국이 된 거 아닙니까.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한국이 서울 올림픽 개최권을 따낼 때, 저는 (북한의) 올림픽 상무조에 있었기 때문에 그걸 봤는데요. 당시 북한 외교관으로 일할 때였는데, 바덴바덴에서 1988년 올림픽 개최지는 ‘세울’이라고 했을 때, 그때는 정말 서럽고 가슴 아팠어요. 그 이후, 김영남 현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외교부장을 할 때 저는 1987년 11월과 12월 올림픽 저지 대표단 성원으로 많은 나라를 다녔습니다. 동구라파와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지 마라’고 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제가 오래 살진 못했지만, 그래도 거의 50여년 이상을 살아보니, 정치와 이념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고요. 우리가 다 한 동포인데, 왜 그렇게 그런 걸 가지고 싸웠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평창!’ 하고 선포될 때, 정말 울컥하는 심정, 뭔가 가슴에 치미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민족이, 북한말로 ‘조선민족’이 얼마나 지혜롭고 끈기가 있는지, 정말 못하는 일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가슴으로 느꼈고요. 한마디만 더 말씀드릴게요. 저는 탈북자입니다. 탈북자의 한 사람으로서 통일이 좀 빨리 되고, 평양이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평창이나 평양이나 발음이 다 비슷하거든요. 다 한반도에 있는 도시들이고요. 정말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박성우: 맞습니다. 사실 이번 뉴스는 남북한이 함께 축하할 일이 아닌가 싶고요. 2018년엔 북한도 강원도 평창에 선수들을 보내서, 개막식 입장도 같이 하고, 메달도 따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에는 북한으로선 반가운 뉴스가 하나 있었지요. 유럽연합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지요?

고영환: 그렇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지난 4일 북한에 1천만 유로어치의 식량을 지원하기로 했는데요. 함경남북도, 양강도, 강원도 등 주로 북부 지역에 우선적으로 식량을 지원하며, 이 식량은 유치원, 탁아소, 병원, 이런 데 주로 지원될 것이라고 했고, 50여명의 한국말을 하는 감시 요원도 파견될 거라고 했습니다. 왜 감시 요원을 자꾸 언급하느냐면요. 이제까지 국제사회가 북한에 식량을 많이 지원하면, 그것이 대체로 불쌍하고 못먹는 사람들에게 가는 게 아니라, 보위부나 보안부, 당과 군대 같은 주민을 통제하는 곳으로 갔거든요. 이걸 막기 위해서 분배의 투명성을 국제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박성우: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과 연평도에 머물 수는 없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바뀐 것이다’라고 풀이하기도 하고요. ‘그건 아니다’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실장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고영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일 (제15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서 그런 요지의 말을 했는데요. 무엇보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진정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그런 말을 했거든요. 이 발언을 두고 대북정책의 기조가 바뀐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크게 바뀐 것이 아니고, ‘북한이 남북관계에서 진정성과 책임감을 보이기만 한다면 무엇을 못하겠느냐’는 의미가 더 크다고 봅니다. 한걸음 더 나가서,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대하도록 우리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성우: 북한의 폴란드 대사인 김평일이 지난 5월 평양에 들어갔는데, 여전히 평양에 있는 걸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외교관이 자신의 임지인 폴란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데요. 실장님, 이건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고영환: 김일성 주석의 둘째 아들이죠.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이복 동생인 김평일 주 폴스카(폴란드) 대사가 지난 5월 중순 평양에 들어갔는데, 2개월이 다 되도록 아직도 폴스카로 나오지 않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데요. 제가 평양외국어학원에 다닐 때 남산 고급중학교를 다니던 김평일은 저보다 한 학년 아래입니다. 몇 번 본 적이 있고요. 제가 외교부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김평일도 인민무력부에서 외교부로 옮겨 와서 웽그리아(헝가리) 대사관과 불가리아 대사관 등에서 근무했거든요. 그 때도 김평일은 곁가지로 분류돼 심한 감시와 견제를 받았어요. 그래서 김평일 옆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회의를 해도 옆에 앉으려 하지 않을 정도로 심한 견제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김평일이 김일성을 가장 많이 닮았거든요. 후계자 김정은이 할아버지를 닮게하기 위해서 일부러 살까지 찌웠고, 그래서 비슷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아마 김일성을 닮은 사람이 둘씩이나 되는 것이 후계자 김정은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았나, 그래서 평양에 그냥 두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평양에 있더라도 집 밖으로 나가서 활동하지는 못하거든요. 여기 한국에서 말하는 것처럼 ‘집에 갇혀있다’는 말은 약간 과장된 것 같지만, 어쨌든 평양에 들어가서 감시를 받고 있는 건 맞는 말 같습니다.

박성우: 김평일이 감시를 받고 있다는 건데요. 김정일의 곁가지인 김평일이 이런 대접을 받는다면, 김정은의 곁가지들도 지켜보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