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자신감 과한 듯”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 21주기인 8일 0시 인민군 간부들을 대동하고 김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사진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허리를 깊이 숙여 참배하는 모습을 담은 조선중앙TV 화면 캡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 21주기인 8일 0시 인민군 간부들을 대동하고 김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사진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허리를 깊이 숙여 참배하는 모습을 담은 조선중앙TV 화면 캡쳐.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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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일성 21주기 행사가 조용히 끝났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정주년이 아니어서 그런가요? 김일성 21주기 행사가 특기할 내용 없이 끝난 것 같습니다. 위원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북한은 지난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21주기를 맞아 3대 세습체제를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는 하였으나 행사 규모도 이전보다 작아지고 분위기도 고조되지 않고 김정은이 금수산 궁전에 가면서도 김일성 초상휘장도 달지 않아 김정은이 자신만의 정치, 즉 홀로서기를 하지 않는가 하는 분석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물론 올해가 김일성 주석 사망 정주년이 아니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확실히 북한 분위기가 예년과 같지가 않았습니다. 김일성에 대한 추모 보다는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만 더욱 강조하는 것이 이례적입니다. 노동신문은 지난 8일 추모 사설에서 "원수님(김정은)의 말씀과 당의 결정 지시를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간부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사상과 영도를 앞장에서 받들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노동신문 사설을 분석해 보면 최근 북한의 고위급 간부들이 김정은의 지시에 불복하는 등으로 숙청 또는 처형되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반영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해 보입니다.

전국적 범위에서 김일성 주석의 추모행사 규모도 작아지고 김일성 시신 참배도 이전에는 당과 국가 군대의 간부들을 다 데리고 했는데 이제는 군대 장령들만 데리고 가고 또 본인은 김일성 초상휘장도 달지 않고 있어 무언가 이상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제는 김일성의 영상을 빌리지 않고도 나라를 홀로 통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려는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도 그렇게 빨리 김일성의 영상을 버리지 않았는데 손자가 김일성의 영상을 지워버리고 있는 것은 ‘김일성 민족’이라고 한 북한의 이제까지의 선전과도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김정은이 과하게 자신감에 차있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박성우: 김정은 제1위원장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을 때 누가 같이 갔는지, 누구 이름이 먼저 호명됐는지, 이런 걸 눈여겨보게 되는데요. 위원님, 특이사항은 없었는지요?

고영환: 북한 중앙통신은 지난 8일 김정은이 김일성 주석 사망 21주기를 맞아 군 고위 간부들과 함께 금수산 궁전을 참배한 소식을 전하면서 수행 간부들의 이름을 호명했는데, 여기서 몇 가지 사항을 주목할만합니다. 참배에 참가한 간부들을 호명한 순서는 황병서 총정치국장, 박영식 대장, 리영길 총참모장, 김원홍 보위부장, 노광철 상장,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등의 순이었습니다. 북한 신문들이 주석단에 나온 고위 간부들을 권력 서열 순으로 호명하는 점에 비춰보면 이번 명단은 사실상 현영철 처형 이후 새로 정비된 군 지도부를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은 박영식 대장이 눈에 띕니다. 박영식을 호명하면서 그의 직책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황병서와 리영길 가운데 호명된 것을 보면 현영철 처형 이후 그가 인민무력부장으로 등용된 것이 확실합니다. 박영식 다음으로 가장 눈길을 끄는 인사는 부총참모장인 노광철 상장입니다. 그가 서홍찬 무력부 제1부부장보다 앞자리에 호명된 것으로 보아 그가 최근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국장에 임명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유추해 보면, 김정은은 지난 4월 말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전격 처형한 이후 무력부장, 작전국장 등 북한군 군사 지도부와 총정치국을 신속히 재정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집권한 후 북한군 지휘부가 너무 자주 그리고 빨리 교체되는 것은 그만큼 북한군 지도부가 불안정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박성우: 김일성 21주기와 관련해서 하나 더 여쭤보겠습니다. 국제인권단체 하나가 김일성 21주기를 맞이해서 김정은을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죠. 어떤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은 지난 8일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가 김정은 제1위원장을 국제법정에 세워 3대째 자행되고 있는 반인도적 범죄를 종식시키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김일성 21주기를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김일성 주석이 죗값을 치르지 않고 사망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반인도적 범죄를 자행하고 있는 김정은 제1위원장을 국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죄를 저지른 사람이 면죄부를 받지 않고 응당한 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김 주석 사망일을 맞아 국제사회가 기억해야 할 유산"이라며 "김씨 일가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전 시기 유엔 등 국제사회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우려를 표시하였지만 그 최종적인 책임이 북한 지도자라는 사실에 주의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탈북자들, 특히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구체적인 증언들이 나오고 이와 함께 이러한 인권 침해의 최고 책임자가 김정은이라는 사실들이 증명되면서 북한의 반발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북한의 태도가 다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으면서 북한 인권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박성우: 김정은 제1위원장과 관련된 다른 소식들도 좀 살펴보겠습니다. 김정은의 얼굴이 새겨진 초상휘장이 나온다는 보도가 있었죠. 이게 사실이라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하나요?

고영환: 한국의 대북 소식통은 지난 7일 "평양시 평천구역에 위치한 만수대창작사에서 노동당 창건일인 10월 10일을 기념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얼굴이 나란히 들어간 초상휘장을 제작하고 있다"며 "10월 10일 전에 우선 3천개를 만들어 노동당 간부들과 청년동맹 간부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북한에서 김씨 일가 3인의 얼굴이 나란히 새겨진 배지가 제작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대북 소식통은 "이번에 제작되는 배지는 전체 주민이 아닌 간부용"이라며 "북한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인상 배지를 고위층에 먼저 주는 것은 김정은의 신임과 특혜를 받는다는 인식을 주려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초상휘장은 신분을 나타내는 징표입니다. 당 깃발이 있는지, 그냥 원형인지 등에 따라 간부용과 일반 주민용으로 나뉩니다. 북한 주민들은 초상휘장을 좋은 것으로 달아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려는 욕구가 강합니다. 저도 북한 외교관으로 있을 때 당 깃발이 들어간 휘장을 달고 다녔습니다. 김정은까지 들어 간 초상휘장을 만든다는 것은 북한에서 김정은에 대한 개인 우상화가 본격화됐다는 신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박성우: 요즘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채소 농사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고영환: 김정은 제1위원장이 평양 채소과학연구소를 현지시찰하고 온실들이 너무 멋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중앙통신은 지난 7일 “김정은이 평양남새과학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고 하면서 “과학자들의 생활상의 문제를 원만히 풀어주어야 그들이 연구사업을 더 잘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평양 채소과학연구소 과학자들에게 살림용 주택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김정일도 남새농장에 관심이 많았고 김정은도 남새농사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남새가 고기보다 생산하기 쉽고 원가가 적게 들면서도 생산 성과가 금방 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북한 사람들이 주로 먹는 것이 남새뿐이라는 점도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왕성하게 자라는 채소를 보면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도 북한 외교부에서 ‘금요노동’으로 평양시 낙랑구역에 있는 채소 농장들에 나가 일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그때 아득하게 펼쳐진 채소밭을 보면서 ‘언제 이 일을 다 끝내나’ 하는 생각, 그리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들이 교차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박성우: 김정은이 채소과학연구소를 시찰하면서 크게 만족을 표했다는 건데요. 현지시찰은 김일성 때 자리잡은 통치 방식이죠. 김일성 21주기가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는데요. 김일성이 만들어둔 통치의 틀 안에서 김정은의 홀로서기 행보가 어디까지 지속될 것인지 앞으로도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