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을 먹고 살 수는 없다”

지난 14일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테헤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환호하고 있다.
지난 14일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테헤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환호하고 있다. (AFP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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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이란의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 타결됐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이란이 ‘핵’ 대신 ‘빵’을 선택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란의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 타결됐죠. 위원님, 어떻게 평가하셨습니까?

고영환: 이란과 미국은 협상과 타협으로 ‘마의 장벽’이라고 불리던 이란의 핵무기 개발 금지와 국제사회의 이란에 대한 금융 제재 해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역사적 쾌거를 이루어 냈습니다. 지난 14일 이란 핵 협상 타결 직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차단했다. 이번 협상은 신뢰가 아닌 검증에 기반한 것”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란 핵무기 개발 금지는 실행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이란이 핵무기를 몰래 만든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고, 이란은 그와 반대로 자국의 핵 프로그램을 모두 공개하고도 아무런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시지 못했습니다. 미국에 절대로 굴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던 이란이 처음으로 미국과 국제사회 앞에서 ‘핵무장 금지’라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미국은 이란 핵 협상에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까지 끌어들이며 이란 핵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도 끌어올렸습니다.

이날 미국과 이란이 합의 서명한 최종 협상안에는 이란 군사시설에 대한 핵 사찰 실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의 조건부 해제, 재래식 무기 거래의 조건부 해제 등 핵심 쟁점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이란 미국 핵 협상의 백미는 이란의 군사시설에 대한 핵 사찰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4일 “필요하면 언제든, 어디에서든 국제사회의 사찰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란은 군사시설 사찰 문제에 대해 “주권 침해”라며 버텼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미 의회와 국제사회에서 동의를 받아내기 힘들다고 여기고 협상을 밀어붙였습니다. 결국 이란은 이번 협상에 참여한 6개국과 함께 구성하는 중재기구를 통해 사찰 여부를 조율하는 최종 타협안에 합의했습니다.

이란은 그 동안 공개를 거부해 온 고폭장치 실험 시설을 국제 사찰단에 공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핵 프로그램에 참여한 과학자들의 인터뷰도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이란이 비핵화 의무를 이행할 경우 내년 초부터 금융 및 경제 제재를 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란이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65일 안에 금융 제재를 다시 가하도록 했습니다.

북한의 이중적인 태도를 지켜 본 국제사회가 다시는 말에 속지 않고 검증을 통해 제재를 풀겠다는 것입니다. 대신 이란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경제적, 재정적 제재를 해제시키는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란은 핵무기보다는 빵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이란 핵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이란 전역에서는 환희의 만세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대단한 성과를 만들어 낸 미국과 이란 인민들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박성우: 최대 관심사는 ‘이란 핵 협상 타결이 북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라는 문제죠. 위원님은 어찌 보십니까?

고영환: 이란 핵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국제사회의 시선은 다시 북핵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과거에 '적과의 대화' 대상으로 거론한 나라는 이란·쿠바·북한 등 세 나라입니다. 이 가운데 쿠바와는 최근 국교 정상화를 했고, 이란과도 핵 협상을 최종 타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북한이 다음 목표가 될 것이고, 홀로 남아 초조해진 북한도 호응하고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도 "이번 이란 핵 협상 타결은 북한에도 상당한 압박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이 성과적으로 타결된 후 한국의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지난 14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이란 핵 협상 타결이 북핵 문제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핵무기를 갖고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그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나라가 사실상 북한만 남은 만큼 이란 핵 협상 타결은 북한에도 압박 효과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북핵 문제의 순조로운 해결을 낙관하기는 아직까지는 섣부르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북한과 이란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란과의 협상은 핵무기화로 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차원이지만 북한은 이미 3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 제재 해제에 대한 욕구'도 두 나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원유 수출이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란은 대외 의존도가 높아 국제사회의 제재에 많은 타격을 받았으나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체제인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버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북핵 문제는 이란 핵 문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자신의 통치이념으로 선포하였고 핵무기가 없으면 죽는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영원불변한 것은 없습니다. 북핵을 포기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은 지속될 것입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죽을 수는 있어도 핵을 먹고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박성우: 북핵 문제의 중요한 당사자 중 하나가 미국인데요. 이란 핵 협상 타결 이후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다고 보십니까?

고영환: 미국 국무부는 지난 14일 이란 핵 협상 타결이 북핵 협상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자유아시아방송의 질문에 이란과 북한의 상황은 같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카티나 애덤스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이란과의 핵 협상 진전은 미국과 오랫동안 이견을 보여 온 나라들도 미국이 기꺼이 포용하려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란과 북한의 상황을 직접 비교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애덤스 대변인은 물론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 열린 입장이지만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북한을 평가할 것이며 미국의 대북정책은 바뀐 것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대북한 전문가들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만큼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됐다는 이유로 북핵 협상이 재개될 것으로는 전망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한국학연구소의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부소장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진정으로 협상할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란과의 핵 협상이 타결됐고 북한만 남았다고 해서 북핵 협상을 시작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저는 미국 정부와 전문가들이 냉철하게 북한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위원님은 북한에 계실 때 외교관으로 근무하셨는데요. 요즘 북한 외교부 간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고영환: 북한 외교관들은 지혜롭습니다. 폐쇄된 사회에서도 다른 나라 외교관들과의 외교전에서 지지 않기 때문인데요. 그들도 눈이 있고 머리가 있고 국제사회를 보고 있는데 세계가 어찌 돌아가는지 모를 수가 없습니다. 저 자신도 북한 외교관으로 있을 때 똑같이 느꼈습니다.

지금 북한 외교관들은 대외 활동 중간에 인터넷 커피숍이나 인터넷 카페에 들려 한국과 세계의 소식들을 검색해 보고 대사관에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양에 있는 외교관들도 ‘참고통신’ 등을 통해 세계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란 핵 문제 해결과 미국-쿠바 관계 정상화 소식을 보면서 북한 외교관들은 ‘저 나라들은 참 좋겠다. 우리도 왜 그런 쉬운 길을 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이란과 쿠바 그리고 세계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김정은이 핵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인지하고 있고 이에 반대되는 발언들을 할 때 얼마나 가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박성우: 이란 정부가 ‘핵’ 대신 ‘빵’을 선택했는데요. 그 이유를 북한 지도부도 곰곰이 분석하고 있겠지요. 앞서 말씀하셨지만, 핵을 가지고 죽을 수는 있어도 핵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게 그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