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용감하고 의미있는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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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고위급 외교관이 한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부원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태영호 공사가 망명했습니다.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부원장님도 북한 외교관 출신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먼저 총평부터 해주시죠.

고영환: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태영호 공사가 최근 가족과 함께 한국에 망명했다고 지난 17일 한국 정부가 밝혔습니다. 태 공사는 주영 북한 대사관의 2인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태 공사는 1997년 북한 미사일 중동 판매 관련 정보를 갖고 미국으로 망명한 장승길 전 이집트 주재 대사 이후 최고위급 탈북 외교관입니다.

태 공사는 평양국제관계대학과 베이징외국어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에 들어가 서구라파국에서 일을 시작한 핵심적인 직업 외교관입니다. 그는 서구라파 전문가로 스웨덴과 덴마크, 영국 등지에서 근무했습니다. 태영호는 평양외국어학원을 다니다가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영어와 중국어를 익혔고,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한 뒤 외무성에 들어가 덴마크어 1호 양성 통역, 즉 김정일의 전담 덴마크어 통역 후보로 뽑혀 덴마크에 유학도 하여 덴마크어에도 능통한 북한 외교관의 모범이자 본보기였다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함께 망명한 태 공사의 아내 오혜선도 김일성의 이른바 빨치산 동지였던 오백룡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친척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태 공사의 자녀들도 영국 현지의 공립학교들에 다녔고 맏아들은 영국의 한 대학에서 평양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려면 장애인 주차 공간을 확충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구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태 공사는 올여름에 그 동안의 임기를 마치고 평양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기자회견에서 이들의 망명 동기와 관련해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을 언급했습니다.

저는 태 공사의 망명은 북한 최상층부가 북한 김정은 체제의 미래에 절망을 느끼고 있으며 북한에 더는 자신들과 자녀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김일성 주석의 딸 김경희 전 비서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남편이자 김일성의 맏사위이며 김정일의 매부인 장성택을 김정은이 잔인하게 고사총으로 총살하는 것을 보면서 고위 간부들이 김정은이 탄 배와 자신들이 탄 배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며 김정은을 더는 믿을만한 지도자가 아니라 언제든지 자신들도 총살하고 가족들을 수용소로 보낼 수 있는 잔악무도한 인물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이들이 북한 체제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고 현지를 탈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박성우: 태영호가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하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고영환: 태 공사는 영국 내에서 북한 체제를 선전하거나 영국과 구라파 신문과 방송에 나온 북한 영상을 바로잡는 업무를 담당해왔습니다. 영국 기자들 사이에선 평양 취재를 위해 연락하는 담당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외무성의 규칙에 의하면 대사관의 2인자는 김부자의 이른바 ‘위대성’을 선전하고 북한에 대한 부정적 보도나 '최고존엄' 모욕 등에 신속 대처하는 게 임무이고 태 공사가 바로 이런 임무들을 수행하였습니다.

사례를 하나 들자면,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2014년 4월 런던의 한 미용실을 찾아가 항의한 일이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요. 해당 미용실이 김정은 사진에 '머리가 엉망?'(BAD HAIR DAY?)이란 문구를 달아 할인 행사를 벌이자 비상이 걸렸던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 등 김씨 일가의 사진을 '모욕'하는 걸 좌시하면 중대 범죄로 처벌됩니다.

태 공사는 지난해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이 영국 대중음악가 에릭 클랩턴의 공연 관람차 런던에 왔을 때 그를 밀착 수행해 공연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태 공사가 김정은 서기실의 임무도 수행하였음을 의미하며 김정은과 김정철도 그를 신임하였다는 의미입니다.

태 공사와 알고 지낸 영국 BBC의 스티브 에번스 특파원은 16일 '내 친구 탈북자'란 글에서 태 공사가 말쑥하고 보수적인 전형적인 영국 중산계층으로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에서 중산층처럼 산 그가, 그리고 영국 대학과 고등학교들에서 마음대로 숨을 쉬며 자유롭게 공부하던 아들들이 평양에 들어가 통제와 감시가 심한 환경에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희망하는 삶도 살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도 그의 한국행을 택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희망도 없고 절망만이 존재하고 공포와 처형이 난무하는 북한, 숨을 자유롭게 쉴 수도 없고 항상 검열과 감시가 심한 북한보다는 아이들을 마음 놓고 공부시킬 수 있고 자신들의 뜻도 펼칠수 있는 자유로운 한국으로 온 것은 정말로 선임자인 제가 봐도 용감하고 의미가 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북한 외교관들에게 영국 주재 공관은 근무지로 괜찮은 곳인가요? 선호도로 치자면 몇번째로 꼽히는 임지인가요?

고영환: 한마디로 어느곳이 좋으냐는 건 외교관들의 성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돈을 만질 수 있는 요지인 파키스탄의 카라치 총영사관이나 중국의 대도시들, 그리고 아프리카의 법제도가 미비한 나라들도 좋은 면이 있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미국, 영국, 독일 같은 나라들도 괜찮은 근무지입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적의 심장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래서 북한 정권이 가장 신임하는 외교관들이 나가 일하는 긍지가 큰 대사관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적의 중심에서 과오가 없이 열심히 일을 잘 한다면 다른 돈이 잘 벌리는 대사관에 대사로 나가는 것이 훨씬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신임도로 말하면 미국이나 영국은 정치적 신임이 가장 큰 공관들 중 하나라고 당당하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박성우: 태영호가 어느 집안 자식이냐는 걸 놓고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지만, 그의 아내 오혜선은 이른바 ‘혁명 1세대’ 집안이라는 게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데요. 이게 의미하는 바는 뭐라고 보면 되겠습니까?

고영환: 태영호 공사의 아내 오혜선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백룡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집안 출신인 걸로 알려졌죠. 대북 소식통은 "북에서 가장 성분이 우수한 '혁명 1세대' 후손으로 우리로 치면 금수저"라고 말했습니다. 금수저는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말로 좋은 집안에서 입에 금 숟가락을 물고 태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오철산 형제는 각각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해군사령부 정치위원을 지냈습니다. 정말 북한 최고의 명망가 집안 출신들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오백룡은 최룡해 부위원장의 부친 최현과 쌍벽을 이루던 북한의 명실상부한 이른바 ‘백두혈통’인 셈입니다. 그런 집안까지 북한을 떠나 한국으로 온다는 것은 정말로 북한 김정은 체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박성우: 태영호 공사는 현재 한국에서 관련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앞으로 보다 많은 소식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이 시간에 자세히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