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
: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도망자 신세가 됐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카다피에게 거액의 현상금이 걸렸습니다. 우리 청취자들도 관심이 많으실 텐데요.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지난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서쪽 도시 자이아가 반정부 시민군에 의해 최종적으로 점령됐고요. 시민군은 지난주 토요일 밤에 트리폴리를 점령하기 위한 ‘인어 작전’을 폈는데, 작전 개시 이후 크게 힘들이지 않고 21일 오후 입성했어요. 굉장히 많은 반격이 있을 걸로 예상했는데, 오히려 트리폴리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 대열이 기다리고 있었고요. 트리폴리 외곽을 방위하던 친위 부대인 32 특수여단이 있는데, 이건 카다피의 아들 카미스가 지휘하던 군대인데, 이들도 시민군의 공격에 맞서서 잠깐 방어하다가 역시 모두 투항해 버렸고요.
시내로 들어온 시민군은 카다피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녹색광장을 점령했습니다. 녹색광장은 평양으로 말하면 김일성 광장 같은 겁니다. 녹색광장과 카다피의 궁전 알-아지지아는 500여 미터 떨어져 있는데요. 평양 인민대학습당 뒤 당중앙위원회 집무실과 비슷한 거리에 있다고 보시면 되는, 그런 심장부 같은 곳입니다. 시민군이 들어가서 녹색광장에 있던 카다피 동상의 목을 잘라서 땅바닥에 끌고 다녔고, 발길로 찼고, 카다피의 대형 초상화에 아카보총(AK소총)을 난사해서 초상화가 찢겨져 나갔고, 또 땅바닥에 떨어진 카다피 초상화를 발로 밟고, 침을 뱉고, 이것도 모자라서 자동차로 초상화 위를 달려서 바퀴로 뭉개버렸는데요. 카다피가 도망친 날, 리비아의 한 시민이 인터뷰한 게 언론에 나왔어요. 이 사람은 의사였는데요. 눈물을 흘리면서 ‘오늘은 자유를 되찾은 날이다. 나는 내 자식들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당당하게 누리면서 살게 되는 것이 너무 기쁘다. 자유 리비아 만세’라고 말했어요.
저도 카다피가 있을 때 리비아에 가봤는데요. 그때는 ‘정말 카다피를 흠모한다’면서 카다피만 보면 눈물을 흘리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이젠 곳곳에 카다피를 쫓는 사람만 가득합니다. 알-아지지아에 대한 최후 공격은 23일에 했는데요. 핵 공격에도 견디게 건설했다는 카다피의 요새가 공격 후 5시간만에 무너졌고요. 시민군이 샅샅이 지하요새를 뒤졌는데, 카다피는 없었어요. ‘최후까지 남아서 트리폴리를 사수하겠다’고 항상 말하던 카다피가 도망친 거지요.
여기서 잠깐 리비아 사태를 종합해서 말씀 드리는 게 필요한 것 같은 데요. 튀니지에서 자스민 민주화 혁명이 시작됐고, 2월16일 리비아 제2의 수도 벵가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처음으로 벌어집니다. 그것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카다피가 시위대를 공격했고, 시위대가 무장하기 시작합니다. 3월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해서 리비아 전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4월19일 나토군, 즉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대가 ‘오디세이’라는 이름의 리비아 공습 작전을 개시했고, 4월30일엔 카다피의 관저가 폭탄을 맞아서 파괴됩니다. 그리고 지난 6월 반정부 세력이 ‘리비아 과도국가 위원회’ NTC를 만듭니다. 과도국가위원회는 ‘카다피 독재자를 인정하지 말고 과도 정부를 인정해달라’고 호소했고요. 그 직후 세계 30여개 나라가 NTC를 승인합니다. 과도국가 위원회는 현재 트리폴리를 완전히 장악했고요. 카다피는 도망쳐서 고향 마을로 간 걸로 알려졌는데요. 카다피의 목에는 200만 디아르, 즉 160여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있는 상황입니다.
박성우: 북한에 계시는 우리 청취자들에게도 카다피는 낯익은 인물이라면서요?
고영환: 그렇죠. 카다피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고, 북한하고도 많이 친했죠.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인물입니다. 카다피는 1942년 리비아의 시르테에서 출생했는데, 현재 거기에 숨어 있는 걸로 많은 사람들이 추정하고 있습니다. 거기 지하벙커가 많다고 해요. 카다피는 육군 대위였고, 1969년 자칭 ‘녹색혁명’이라고 부르는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은 후 42년동안 무소불위의 1인독재를 해 왔는데요. 개인 숭배가 굉장히 강했어요. 저도 리비아에 가봤는데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혁명의 지도자, 인민의 지도자, 위대한 지도자, 카다피를 끝없이 흠모하고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북한하고 비슷한 측면이 많다’ 이런 생각을 가졌어요. 1988년 미국의 팬암 항공기를 폭파해서 270명의 사상자가 난 사건을 저지른 인물도 카다피였고요. 자신의 경호원들은 모두 특수 훈련을 받은 미녀들입니다. 북한에도 그 미녀 경호원들이 왔었어요. 아주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렸던 인물인데, 이젠 역사의 장이 기울고 있습니다.
박성우: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가 시민군의 손에 들어가면서, 카다피 일가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는지가 밝혀지고 있지요?
고영환: 그렇습니다. 카다피는 앞에서는 항상 ‘나는 인민을 위한 지도자다, 나는 아프리카의 지도자다, 나는 세계의 지도자다’라면서 떠들고 다녔는데, 뒤에서는 무려 1천억 달러라는 거액의 외화를 부정축재 해서 외국에 숨겨놨어요. 과도국가 위원회 NTC는 ‘카다피가 외국으로 빼돌린 1천억 달러면 리비아를 현대적으로 재건할 수 있다’고 말한 상태입니다. 카다피의 저택은 지하 동굴이 연결돼 있는데, 이게 수 천 킬로미터라고 합니다. 전략 지점들이 다 연결돼 있고요. 다른 도시들과 비행장으로 다 연결돼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어느 나라가 연상되지요. 카다피 뿐 아니라 카다피의 아들과 딸들의 집을 가 보고 시민들이 깜짝 놀랐다고 해요. 수천만 달러짜리 호화 요트가 있는가 하면, 100만 달러짜리 람보르기니 자동차도 있고, 축구장이 있고, 수영장이 있고, 심지어는 순금으로 된 소파까지 발견하고 입을 딱 벌렸다고 합니다. 이런 사진들을 보면서 리비아 국민들이 굉장히 많이 분노했어요. 이 모든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북한에서도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박성우: 리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중동의 다른 국가에도 영향을 미치겠지요?
고영환: 그렇지요. 지난 1월 튀니지에서 자스민 혁명이 승리한 후 무바라크, 살레 같은 대통령들이 차례로 무너졌고, 지금 수리아(시리아)에서 바사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1인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가 굉장히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거든요. 아사드 대통령이 시위대를 향해 심지어는 대포, 함포, 비행기, 전차를 다 동원해서 공격하고 있다는데, 수리아 인민들은 굴복하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히틀러나 무쏠리니 같은 아주 유명한 독재자들, 그리고 로므니아(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대통령, 동독의 호네커 수상,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 등이 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죠. 독재자 중에는 제대로 눈을 감은 사람이 거의 없어요. 북한 지도자도 독재를 이제 그만 두고 주민들의 의식주를 위하는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해서 다른 독재자들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성우: 저 멀리 리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만, 북한의 지도부도 이곳 소식이 초미의 관심사일 듯 합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