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다시 ‘인질 외교’ 시작

북한이 억류해온 미국인 케네스 배(46)와 매튜 토드 밀러(24),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56)이 평양을 방문 중인 미국 CNN방송과 인터뷰하도록 허용했다. 사진은 배 씨(오른쪽)가 CNN 기자와 대화하는 모습.
북한이 억류해온 미국인 케네스 배(46)와 매튜 토드 밀러(24),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56)이 평양을 방문 중인 미국 CNN방송과 인터뷰하도록 허용했다. 사진은 배 씨(오른쪽)가 CNN 기자와 대화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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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이 이른바 ‘인질 외교’를 재가동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지냈습니다.

박성우: 북측이 억류하고 있는 미국인 3명을 다시 외교적으로 이용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북한 당국이 미국의 CNN 기자가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미국인 3명을 인터뷰하도록 허용했고, 그 보도가 지난 1일 방송됐습니다. 현재 북한에는 케네스 배, 토드 밀러, 제프리 에드워드 등 3명의 미국인이 억류되어 있습니다. 케네스 배 씨는 인터뷰에서 “지난 1년 6개월 동안 특별 교화소와 병원을 오갔으며, 교화소에서는 하루 8시간, 일주일에 6일간의 중노동을 하고 있다”고 대답하였고 ‘인도주의적 대우는 받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한 미국 CNN의 윌 리플리 기자는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가 어디론가 이동한 뒤 억류된 미국인들을 만났다”고 밝혔습니다. 리플리 기자와 만난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그리고 서로 입을 맞춘 듯이 미국 정부가 자신들의 석방을 위하여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인터뷰가 있기 한 달 전에도 미국 AP통신의 영상 서비스인 APTN과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이들 세 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용도 거의 비슷했죠. 미국 정부가 나서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호소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외교 소식통들은 북한이 국제사회와 미국 내부의 여론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력한 미디어들을 골라서 교묘하고 지속적인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워싱턴 내부에서도 북한의 이러한 전략이 모종의 정치적 선물을 내놓도록 미국 정부를 압박하는 북한의 전형적인 ‘인질 외교’라는데 이견이 없는 상태입니다.

북한은 미국 정부에 인질 세 명을 구출하려면 이전에 지미 카터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억류되었던 미국인들을 데리고 가면서 미북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듯이 이번에도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서 제재 해제 등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외교적 난관들을 해결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는 셈입니다. 이게 어떤 결과를 갖고 올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습니다.

박성우: 북측의 의도를 풀이해 주셨는데요. 그렇다면 미국 정부의 입장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북측 당국은 북한을 방문 중에 있다가 성경책을 호텔에 두고 나왔다든가, 북한 비자(사증)를 훼손하였다든가 하는,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런 죄도 되지 않은 행위들을 하였다는 이유로 미국인들을 억류해 놓고 미북관계 개선 등을 위한 외교적 지렛대로 사용해 온 예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미국을 직접 회담에 끌어들이려는 북한의 노력에 미국은 원칙적인 입장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패트릭 벤트렐 공동 대변인은 한국의 연합뉴스에 보낸 논평에서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 있으나, 북한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다. 대화를 위한 대화에는 관심이 없으며,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원칙은 변함이 없고 동일하다. 북한은 스스로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과 기존 약속을 준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성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협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미국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좌관인 수전 라이스도 “우리는 협상이 진정성 있고, 신뢰할 수 있으며, 북한 핵프로그램 전체를 다루고, 구체적이고 비가역적인 조치들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북한과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상의 내용들이 미국의 공식적이며 명백한 대북한 정책 기조입니다.

박성우: 북한이 억류하고 있는 미국인 3명과의 CNN 인터뷰 기사가 보도된 게 지난 1일인데요. 같은 날 북측은 중국과의 접경 지역에서 단거리 발사체를 쐈습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하셨습니까?

고영환: 북한이 지난 1일 자강도 룡림에서 단거리 탄도 미사일 1발을 북한 내륙을 걸쳐 동해로 발사하였습니다. 북한이 중북 국경에서 불과 60여km 떨어진 곳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쪽에서는 미국 기자를 불러놓고 인질로 잡힌 미국인들과 인터뷰를 하게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탄도 미사일을 발사한 의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볍게 생각한다면 북측 당국은 북한 그 어느 곳에서도 한국과 미국을 타격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고 미국인 3명 석방 협상을 위한 미북 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자는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보다는 북한이 왜 굳이 중국과 가까운 곳에서 미사일을 발사하였을까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무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목적도 분명히 갖고 있겠지만, 북한에 비핵화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하는 수단으로 이번 미사일 발사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합니다.

박성우: 인질 3명을 인터뷰한 CNN 기자가 평양을 둘러보며 느낀 점을 기사화한 게 관심을 끌었는데요. 위원님은 그 기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시던가요?

고영환: 미국 CNN의 윌 리플리 기자는 평양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른바 ‘시간의 왜곡’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공상과학 소설에서 과거의 일이 현재에 뒤섞여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 ‘시간의 왜곡’이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다는 의미입니다.

리플리 기자는 북한이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면서 “북한은 선진 세계를 따라잡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훨씬 더 강하게 애쓰고 있다”고 지적했고요. 만성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평양을 가꾸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비꼬기도 하였습니다. 외국인들에게 북한이 많은 것을 숨기고 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나, 역시 기자들에게는 숨길 수 없는 것들이 많은가 봅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북한이 달라지고 있다고 하고 실제로 많은 것이 달라지고는 있지만, 제가 북한에 외교관으로 있을 때처럼 기본적인 통제와 통치 체제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구나, 강한 외국인 통제는 계속되고 있고 외부세계에 보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주려 하고 숨기고 싶은 것은 숨기려고 하는 방식이 언제나 없어지고 다른 나라들처럼 자유로운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들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박성우: 아마 북한 당국은 CNN 기자가 평양에서 보도한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봤을텐데요. 예전에도 북측은 서방 매체에 비친 북한의 모습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특히 지난 주에는 북한의 국방위원회가 영국의 어느 상업방송을 상대로 험한 말을 쏟아냈는데요. 위원님, 설명을 좀 해 주시죠. 어떤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을까요?

고영환: 북한은 리플리 기자가 쓴 기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이 자세히 봤을 것입니다. 화를 낼만한 기사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31일에 북한 국방위원회가 화를 낸 사건이 한가지 더 있었습니다.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영국은 지금 제작하고 있는 반동 영화들을 오물통에 쳐넣고 주범들을 엄벌에 처하라”며 영국을 협박했습니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영국의 상업방송 ‘채널 4’가 북한 핵과 관련한 첩보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는데, 드라마의 제목은 ‘오퍼짓 넘버(Opposite Number)’이고, 내용은 영국의 핵 과학자가 북한에 억류된 후 핵무기 개발에 강제로 참가한다는 것입니다. 외국의 상업 방송사가 드라마를 제작하는데까지 북한이 관여하려 하고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6월에는 미국 영화사인 ‘소니 픽처스’가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삼은 영화 ‘인터뷰’를 제작하였고, 북한은 이를 “노골적인 테러 행위”라고 비난하며 제작 중단을 요구한 적도 있었습니다.

김정일 시대인 2002년엔 ‘007’ 영화인 ‘어나더데이’가 나왔고, 이 영화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묘사했어도 북한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외국의 영화나 드라마가 북한을 자극하는 내용을 담아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는 뜻이죠.

그러나 김정은 제1비서가 취임하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외국에 나가 있는 북한 외교관들은 북한의 이른바 ‘최고 존엄’을 조금이라도 비난하는 영화, 드라마, 다큐 등을 접하게 되면 무조건 평양에 보고하는 체제가 수립된 것 같고, 보고를 받으면 해당 기관들은 최고로 험한 용어들을 동원하여 상대측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최고 지도자의 성향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최고 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가 외국의 드라마까지 쫓아다니면서 비판을 하여야 하니 참 할 일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북한 외교관들의 애환도 더불어 늘어난 것 같습니다.

박성우: 좋은 지적을 하신 것 같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만든 영화나 연속극을 비판하라고 국방위원회를 만들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