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한반도] “통일교 대북사업 변함없이 추진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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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 총재가 3일 별세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지냈습니다.

박성우: 먼저, 문선명 총재가 북한에서도 많이 알려진 인물인지 궁금한데요?

고영환: 그렇습니다. 많이 알려진 인물입니다.

박성우: 1991년 12월 김일성 주석과 문 총재가 면담했는데요. 당시 배경이 궁금합니다. 김 주석이 통일교 창시자와 만난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문선명 총재가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는데요. 문 총재의 고향은 평북 정주입니다. 문 총재는 1991년 12월 6일 김 주석을 만났고, 이후 여러가지 대북 사업, 그러니까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많은 힘을 넣었지요. 문 총재는 김 주석과 금강산 관광, 원산 개발, 나선 지구 투자 등 여러가지 사업에 합의했습니다. 당시 김 주석은 문 총재에게 부시 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하지요. 문 총재는 그 후 실제로 북한에 많은 지원을 하였습니다. 금강산 국제그룹을 만들었고 1998년 금강산 유람선 사업도 추진했습니다. 특히 북한에 평화자동차 공장을 지어줬고 승용차를 현재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원래 문 총재는 열렬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종교를 박해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문 총재를 김 주석이 만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배경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북한은 구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로 극심한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나라 경제가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는 때여서 반공주의자건 누구건 가릴 형편이 아니었던 거지요. 그래서 정주가 고향인 문 총재를 평양으로 불러 들였고 김 주석이 만나 극진하게 환대를 하였던 거라고 봅니다. 문 총재가 이북 사람이란 것을, 그러니까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김 주석과 문 총재가 성격이 비슷한 점도 작용을 하였다고 봅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좌측 끝에 있었던 김 주석과 우측 끝에 있었던 문 총재가 서로 통한 것이지요.

제가 한국으로 온 다음에 외교부와 무역부에 있던 여러 후배들이 한국으로 왔는데, 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 총재가 김 주석에게 외화를 어마어마하게 주었다, 그래서 김 주석이 좋아했다, 그리고 둘이서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가 등에 대해서, 그러니까 대화의 주제가 건강 관리 및 먹는 것, 돈, 그리고 투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박성우: 북측이 조문단을 보낼 걸로 예상했는데, 통일교 측의 설명을 들어보면 현재로선 보내지 않을 것같다는 거잖아요. 그 이유는 뭐라고 보시나요?

고영환: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는 조문을 보내왔지요. 그러나 현재까지의 동향을 보면, 북한 측이 조문단을 보내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문 총재 사망 당일인 지난 3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북한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은 통일부에 북한이 대표단을 보내오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고 합니다. 북한이 조문단을 보내지 않는 것은 아마도 현재의 남북관계가 긴장되어 있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대표단이 올 가능성은 조금은 열려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문 총재가 지난 20년 동안 북한과 여러가지 경제협력을 해왔고, 평화자동차 회사가 만든 승용차들이 북한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고, 김정일 총비서가 죽었을 때 문 총재가 아들을 직접 평양에 조문단으로 보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성우: 통일교 측이 북한에서 하고 있는 사업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이 사업은 앞으로 어찌 될 걸로 전망하시나요?

고영환: 통일교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공산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종교단체입니다. 그래서 반공주의자인 문선명 총재도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비판하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 주민들을 돕는 것은 통일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 대북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현재 통일교가 북한에서 여러가지 사업을 하고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경제협력 사업은 남포에 통일교 산하 기업인 통일그룹이 지은 평화자동차 공장입니다. 통일교 측은 이 공장 건설에 2,700만 달러를 투자하였습니다. 이 공장은 자동차 조립 공장입니다. 부품은 밖에서 생산하고 북한에서는 조립만 하는 거지요. 회사지분의 70퍼센트는 통일교가, 30퍼센트는 조선민흥총회사가 가지고 있습니다.

문 총재의 염원이 그랬으니 앞으로도 통일교 측은 대북 사업에 대한 투자나 경제협력 사업을 줄이거나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 총재가 소망했듯이 평화자동차 공장 등 통일교 측이 진행하는 대북 사업이 통일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박성우: 이번엔 북한 바깥 소식을 좀 전해드리겠습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이란을 방문했는데,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배경을 좀 설명해 주시죠.

고영환: 북한의 김영남 최고상임위원장이 비동맹운동회의(쁠럭불가담 수뇌자 회의)에 참가하기위해 이란을 공식 방문하여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김정일처럼 육해공군 명예의병대도 사열하였고, 종교 지도자 하메네이, 대통령 마무드, 1부통령 라히미, 국회의장 알리 등 고위급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김영남 위원장은 제가 외교관을 할 때 외무상으로 있던 사람이고 그래서 아주 잘 아는데, 무척 기뻐하는 모습이 사진들에 실렸습니다. 실제로도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김영남 위원장을 환영하는 국가 연회도 크게 열렸고, 과학기술협정 등 여러 협정이 체결되었는데, 조인식에는 주요 장관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완전히 국가 수반급 예우를 받은 셈이어서 이례적입니다.

이란 측은 이런 대접을 하는 이유를 밝혔는데요. “조선과 같이 견결하게 반제반미 입장으로 싸워야 제국주의를 타승할 수 있다”고 이란 대통령이 회담에서 발언했습니다. 이란의 이러한 환대는 북한과 이란이 같은 입장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 모두 국제사회로부터 핵과 미사일을 만드는 것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는데다 이란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 분야에서 서로 협조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이란과 북한처럼 미국과 자본주의 나라들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시리아, 리비아, 이집트(애급) 등 북한과 관계가 좋은 이슬람 국가들이 많았는데, 애급과 리비아의 지도자들은 이미 사망하였거나 감옥에 가 있고, 시리아의 알 아사드 대통령은 내전으로 어디 숨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세계에서 이란과 북한만이 남은 셈이고, 그래서 이란과 북한은 매우 친해진 거지요. 똑 같은 친구끼리 모인 셈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북한과 이란처럼 고립된 나라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박성우: 런던에서 장애인 올림픽이 9일까지 열리지요. 북한도 사상 처음으로 선수단을 보냈는데요. 수영 종목에 참가한 북한 선수가 관중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은 일이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실장님, 이렇게 뜨거운 반응이 나온 이유를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고영환: 지난 4일 런던에서 열린 장애인 올림픽 수영 남자경기에 참가한 북한의 선수 임주성이 50미터 예선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 왔습니다. 쉬운 말로 꼴등을 한 거지요. 그런데 경기를 보던 많은 영국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환호성도 컸습니다. 그 이유는 경기에서는 꼴찌를 하였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레이스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순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경기든 일이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런 인간 정신에 찬사를 보내는 거지요.

북한은 이번에 사상 처음으로 장애인 올림픽에 참가하였습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장애인이 평양시에서 살지도 못하게 했지요. ‘우수한 민족에겐 장애인이 없다’는 논리였고, 그래서 수백만 장애인들이 지방으로 쫓겨가 억울하게 설움을 당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북한이 세계 대회에 장애인 선수단을 보내니 나는 감동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계속되어 주민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박성우: 그렇습니다. 북한에 계시는 모든 분들이 행복해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주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