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한반도] 북, 인권침해 언젠가는 단죄 받을 것

통영에서 열린 신숙자 모녀 구출 서명 운동 포스터.
통영에서 열린 신숙자 모녀 구출 서명 운동 포스터. (사진-방수열 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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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길남 씨의 가슴 아픈 사연이 한국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 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북에 있는 내 가족을 돌려 달라’면서 오길남 씨가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먼저, 오길남 씨가 어떤 인물인지부터 소개를 좀 해 주시죠.

고영환: 개인적으로 저도 잘 아는 사람이고요. 오길남 씨는 서울대학교 독일어과를 나와서 독일에서 유학한 사람입니다. 독일에서 박사 칭호까지 받았고요. 독일에 살던 중 윤이상이라는 음악가와 북한 통전부 사람들의 회유를 받고 북한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오길남 씨의 포부는 북한 경제를 바로 세우는 데 자신이 일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많이 말렸다고 해요. 어쨌든 가족과 함께 들어간 게 1985년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경제학 교수로 일하게 해 주겠다’던 약속은 버리고 ‘대남 방송을 하라’고 해서 <구국의 소리> 방송국에서 일하던 중 통전부가 ‘유럽 지역에서 일하는 어떤 한국인을 의거 입국시키라’는 안을 내놓습니다. 그래서 구라파로 오길남 씨가 다시 나오게 되는데요. 하지만 덴마크 공항에서 극적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국경 경찰에게 도와달라고 이야기했던 거지요. 그렇게 탈출해서 남한으로 온 사람이고요. 한국에 들어와서 저와도 알게 됐고요. 저도 그 사람의 가슴 아픈 사연을 알게 된 거지요. 하소연도 들어주고, 맥주도 한 잔씩 하고, 그러면서 잘 알게 됐지요.

박성우: 가족은 아직 북한에 있는 거지요?

고영환: 그렇습니다. 북한에 아직 있습니다. 두 딸도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습니다.

박성우: 요즘 들어서 오길남 씨의 사연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는데요. 아내인 신숙자 씨의 고향에서는 ‘통영의 딸을 구출하자’는 서명 운동이 한창이지요?

고영환: 그렇죠. 오길남 씨가 북한을 탈출한 후 북한 당국은 신숙자 씨와 두 딸을 15호 관리소, 그러니까 요덕 정치범 수용소로 보냅니다. 이 소식이 어떻게 알려졌느냐면, 신숙자 씨와 요덕 수용소에 함께 갇혀 있던 사람들이 요덕을 나온 다음 북한 체제를 혐오해서 북한을 탈출한 후 한국에 와서 언론에 말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된 겁니다. 물론 오길남 씨도 국제앰네스티, 그러니까 ‘국제사면기구’라는 유명한 인권단체를 통해서 가족의 구명을 위해서 노력했는데요. 북한 당국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에 신숙자 씨의 고향인 경상남도 통영에서 여러 시민들이 ‘우리 지역 사람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구출 운동에 나서게 됐고, 그래서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전시회도 통영에서 열리고 있고요. 전국적으로 3만7천여 명의 사람들이 ‘신숙자 씨를 돌려보내라’는 운동에 서명했습니다.

박성우: 오길남 씨의 사연이 요즘 들어서 이렇게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분석하십니까?

고영환: 오길남 씨가 처음 그 소식을 이야기했을 때, 일반 사람들은 ‘개인의 가족사’라고 인식해 버렸고요. 더 중요한 건,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정치범 수용소가 실제로 북한에 존재한다는 걸 과거에는 사람들이 잘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여럿 나오기 시작하고, 정치범 수용소가 어디 어디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위성사진을 포함한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거지요. 그리고 이번에 이렇게 관심이 커 진 것은 신숙자 씨의 고향이 통영이기 때문에, 통영 시민들이 ‘통영의 딸을 구해내자’는 캠페인, 그러니까 깜빠니아를 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여기에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박성우: 오길남 씨와 그 가족의 경우를 보면 인권침해가 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관련해서 하나 더 여쭤보겠습니다. 평양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건의 과반수가 정치범 혐의나 그로 인한 연좌제 적용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지요?

고영환: 네. 한국에 ‘북한 인권 기록 보관소’라는 게 있습니다. 탈북자와 중국인의 증언, 그리고 국제기구의 조사 등을 통해서 북한에서 인권 유린 행위가 어떻게, 누구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는 곳인데요. 2011년 8월 현재 ‘북한 인권 기록 보관소’에는 북한 당국에 의해서 자행된 인권 침해 행위 3만5,330건이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인권 침해와 관련된 인물은 2만여 명입니다. 언젠가는 통일이 이뤄질 것 아닙니까? 그때가 되면, 큰 죄가 없는데도 정치적으로 말 한마디 했다고 해서 체포하고, 예심을 하고, 일제 순사들보다 더 가혹하게 고문을 한, 그런 사람들을 재조명하게 되겠지요. 이 보관소에서 ‘2011년 북한인권 백서’를 발표했는데요. 북한의 여러 지역 중 정치범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 평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연좌제가 제일 많이 적용된 곳도 평양이라고 합니다. 연좌제는 한 사람이 잘못을 했는데 온 가족을 멸하는, 그러니까 북한 말로 하면 3대를 멸족하는 거지요. 이건 봉건시대에만 있었던 악법 중 악법이거든요. 연좌제가 평양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간부와 지식인이 이 지역에 많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반면에 인권침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함경북도로 나타났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탈북자가 가장 많이 나오니까, 탈북자에 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독일의 경우도 보면, 통일이 되고 난 후 사람을 죽이고 고문한 사람들은 역사의 단죄를 받았습니다.

박성우: 한국의 시민사회가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 침해 사례를 기록으로 남기고 인권 백서도 만들고 있는데요. 이런 노력이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저는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식이 자꾸 알려지면, 고문을 하고 체포하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자제를 좀 하겠지요.

박성우: 알겠습니다. 이런 소식도 있었네요. 요즘은 평양 시내에서 자동차들이 낮에도 미등을 켜고 다닌다는 이야긴데요. 그런데 이렇게 하도록 지시한 사람이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이라는 겁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영환: 김정은이 평양 시내의 차량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 스위스와 북유럽의 일부 나라에서 하는 것처럼 대낮에도 승용차의 미등, 그러니까 작은 등을 켜라고 지시해서, 차량들이 미등을 켜고 다닌다는 건데요.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유학했으니까 스위스가 하는 것처럼 하라는 의미인데요. 스위스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비가 많이 오고 안개가 짙게 끼는 날이 많아서 그 나라의 특성에 맞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맑은 날이 더 많거든요. 한국,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은 대낮에 미등을 켜지 않습니다. 미등을 맑은 날에 켜는 게 교통사고의 감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연료 소비가 좀 늘어나고, 배터리의 수명이 떨어지는, 그런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휘발유와 배터리 같은 물자가 귀한 북한에서 이런 걸 한다는 게 몹시 놀라울 뿐입니다. 이런 조치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지도 않습니다. 구라파에서 하는 걸 본받으려면, 경제를 개방하고 복지를 중시하는 기본적인 정책을 따라 배워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박성우: 구라파의 사례를 따라서 ‘자동차는 미등을 켜고 다녀야 한다’는 지시를 했다는 건데요. 이런 것 말고, ‘인권을 향상해야 한다’ 이런 지시를 내리는 게 훨씬 더 지도자다워 보인다는 점을 김정은이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