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인천 아시안게임이 시작됐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인천 아시안게임이 19일 시작됐습니다. 북한도 참가하죠. 그래서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은 남북간 체육 교류의 성격도 갖고 있는데요. 그런데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분단 현실을 반영한 탓인지 남한과 북한의 체육 교류는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위원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그렇습니다. 1990년대에 물꼬를 튼 남북 간 체육 교류는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띠어 왔습니다. 남북관계가 좋으면 활성화되고 남북관계가 냉랭해지면 얼어붙죠.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를 계기로 구성된 남북 단일팀은 스포츠 분야에서 남북이 하나로 되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고, 1999년과 2003년 남측 현대아산 그룹의 주도하에 열린 농구 경기는 한국 국민들이 북한 체육에 한 걸음 다가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회 개회식과 폐막식 때 남북한이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 입장하면서 남북 체육교류가 활짝 꽃을 피우기도 했죠. 이후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등의 대회에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입장하는 관례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북 체육교류는 남북의 긴장 상태를 완화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경우 체육 교류는 중단되고, 이게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길을 걸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체육 교류와 민간 교류는 남북 간 긴장을 완화시키고 남북 주민 호상 간에 이해를 증진하는 매개체로 되는 것이 정상인데, 현재 남북관계는 그렇지 못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이 현재 꽉 막힌 남북관계의 긴장 상태를 풀고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풀리는데 기여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북측의 아시안게임 참가를 계기로 김정은 체제의 체육 분야 육성 방안이 주목받고 있는데요. 북한 당국이 스포츠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되겠습니까?
고영환: 김정은은 2012년부터 이른바 ‘체육강국’ 건설을 국가적 목표로 삼았습니다. 2012년 11월 김정은은 당시 당·정·군의 실세를 망라한 체육지도위원회를 신설하기도 했죠. 그리고 체육 발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북한이 그러면 왜 체육 발전에 그렇게 공을 들일까요?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체육 발전에는 큰 돈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그러나 국제 경기에서 큰 성과를 내면, 체제 특히 김정은의 지도력에 도움을 주고 큰 영향을 미칩니다. 큰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북한 선수들이 모두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원수님의 배려와 지도로 제가 금메달을 땄습니다’라는 거죠. 그리고 이 소리는 북한의 모든 매체를 통해 주민들에게 전달됩니다.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특히 선수들이 목메어 우는 모습을 보면서 주민들은 감동받게 되어 있습니다. 김정은 체제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죠. 선수들이 성과를 내면 낼수록 김정은의 지도력이 공고해지고 김정은의 영상이 사람들의 가슴에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체육에 그토록 공을 들이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체육에 큰 관심이 없었고, 대신 영화나 문화 예술에 관심이 컸습니다. 그러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은 부친과 달리 스포츠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체육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하였습니다. 취임 후 야외 빙상장과 롤러스케이트장, 농구장, 배구장, 체육관, 승마 구락부, 마식령 스키장 등 수많은 체육 시설을 건설하였거나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체제 선전이나 권력기반 강화에 큰 도움을 줍니다.
여기에 김정은의 개인 취향도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 시절 농구를 좋아했다고 하죠. 특히 미국 농구를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유학 시절 자신이 제일 좋아했던 데니스 로드먼 전 미국 프로농구 선수를 평양에 수차례 초청하기도 하였습니다. 체육 선수들의 성적이 고스란히 자신의 성과가 되고,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강국이 되는, 그런 이유 등으로 김정은이 체육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북한의 경우 뿐만 아니고요. 서구사회 독재국가의 경우에도 스포츠를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죠?
고영환: 체육이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대중성이 있으며,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독재자들이 세계 역사에는 많이 존재했습니다. 체제를 선전하고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스포츠 이상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 대표적인 독재자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 등입니다.
무솔리니는 1922년 정권을 잡은 후 파시스트 체제를 확립하는데 축구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죠. 그는 축국 경기를 할 때 선수들이 반드시 파시스트식 경례를 하도록 했고, 축구 경기에서 이탈리아가 이기면 마치 무솔리니 자신이나 파시스트 체제가 승리한 것처럼 선전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 역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나치 선전장으로 활용했습니다. 올림픽 경기장들에 나치 깃발을 걸었고, 선수들도 나치식 경례를 하도록 했습니다. 베를린 올림픽은 독재자 히틀러가 자신의 지도력과 체제를 선전하는데 가장 크게 악용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정치적 이유로 악용되어서는 안됩니다.
박성우: 이번엔 좀 가벼운 질문입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북한 선수단이 이번엔 종합 순위 10위 안에는 충분히 들어갈 거라는 평가가 많이 나오잖아요. 위원님께서는 이런 평가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고영환: 저도 10위 안에 꼭 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이번까지 아시안 게임에 다섯 번째로 참가합니다. 최근 사례를 좀 살펴보면, 북한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종합 8위를 차지하였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9위에 오르기도 했지요. 그러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010년 광주 아시안게임에서는 각각 16위, 12위로 순위가 밀려났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북한이 과연 다시 10위 안에 들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북한의 김정은이 그동안 경제 위기 속에서도 체육 발전을 위해 적지 않은 투자를 해 왔고 관심이 많은데다 남한은 기후와 풍토가 같고 이동거리도 짧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한국 국민의 응원도 받을 수 있는 좋고 유리한 환경들이 다 조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북한이 레슬링, 유도, 역도 등의 경량급과 중량급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북한 여자 축구도 그 실력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죠. 이런 종목들에서는 북한이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많고, 그래서 10위권 안에 충분히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저는 동포의 땅에서 진행되는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기를 정말로 바랍니다.
박성우: 또 하나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북측이 이번에는 장애인 아시안게임에도 선수단을 보낸다는 점인데요. 북한 사회가 장애인의 복지를 등한시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번 장애인 선수단 파견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위원님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고영환: 북측은 지난 2일 아시아 장애인올림픽위원회에 북한 장애인 선수단이 참가할 것이라고 정식으로 통보를 했습니다. 북한이 장애인 선수단을 국제 경기에 파견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에 장애인 선수단을 보낸다는 것은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 장애인은 평양에서 살수도 없었습니다. 우수한 민족인 ‘조선민족에 장애인은 없다’는 것이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제가 대학교를 다닐 때, 그리고 외교관 생활을 할 때, 평양에서 장애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김정은이 취임한 후 장애인들을 국제 경기에 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2012년 런던 장애인 올림픽 경기에 처음으로 대표단을 파견하였고, 지난 해 10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 장애인 청소년 경기에도 참여하여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장애인 대회에 장애인 선수단을 파견한다니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이런 작은 변화들이 큰 변화로 이어지길 희망합니다.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박성우: 그렇습니다. 북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위원님처럼 박수를 보내고 싶고요. 장애인 대회를 포함해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단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