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사망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카다피가 한국시간으로 20일 밤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고영환: 리비아의 국가원수이고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가 지난 20일 자신의 고향 시르테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리비아의 민주화 혁명을 지난 2월부터 이끌어온 국가과도위원회의 대변인은 “카다피가 시민군에 의해 살해됐음을 온 세상에 선포한다. 카다피가 최후를 맞은 지금은 1인 전제정치와 독재정치를 종식한 역사적인 순간이다”라고 말했고요. 20일 저녁 전 세계 텔레비전은 카다피가 총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사진들을 긴급뉴스로 보여줬습니다.
카다피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드릴게요. 그는 1969년 9월 육군 대위였던 시절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리비아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 ‘9월 혁명의 탁월한 지도자’라고 부르게 하면서, 42년간 리비아를 철권으로 통치합니다. 리비아에는 질 좋은 석유가 많거든요. 그 석유자원을 가지고 리비아 인민 위에 군림했지요. 자신은 항상 ‘소박한 지도자’라고 이야기하고, ‘나는 천막에서 산다’고 인민들에게 선전했지만, 이 사람이 지난 42년 동안 빼돌린 돈이 642억 달러라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빼돌린 거지요. 거리에서 금으로 만든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고, 미녀 호위병 40명을 데리고 다녀서 세상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는데요. 그가 죽던 마지막 순간에 들고 있었던 것도 황금으로 만든 권총이었어요.
그는 마지막 순간 시르테의 한 하수구에 숨어 있다가 시민군에게 발각됐는데요. ‘제발 쏘지마, 내가 카다피야’라고 소리 쳤다고 합니다. 교전 중 머리와 다리에 총탄을 맞아서 즉사했다는데요. 카다피는 리비아 시민과 시위에 나선 시민군을 ‘쥐새끼’라고 불렀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쥐새끼’라고 부른 시민혁명군에 의해서 사살된 거지요. 영도자라고 불리던 사람이 초라한 모습으로 피를 흘리면서 죽은 모습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보던 세계인들은 독재자의 말로가 정말 어떤 것인지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땅굴에 숨어 있다가 이라크 군인에게 생포된 후 재판을 받고 사형당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재자의 말로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카다피의 넷째 아들도 같은 날 사망했지요?
고영환: 그렇습니다. 카다피는 두 명의 부인에게서 7남1녀를 낳았는데요. 카다피가 후계자로 삼았던 넷째 아들 무타심이 같은 날인 20일 시민군과 카다피 친위군과의 마지막 교전에서 시민군에 의해 사살됐고요. 카다피의 맏아들 무함마드와 다섯째 아들 한니발은 수도 트리폴리가 시민군에게 함락되기 직전에 어머니와 함께 알제리로 도망쳤고,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은 행방불명됐고, 여섯째 아들과 일곱째 아들은 지난 8월에 사살됐습니다. 그러니까 독재자 한 명 때문에 온 가족이 풍비박산이 난 거지요.
박성우: 리비아의 시민혁명이 248일 만에 끝난 셈이지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영환: 리비아의 민주화 혁명이 올해 2월15일에 시작됐는데요. 시작은 아주 미미했어요. 동부 도시 벵가지에서 어떤 사람이 체포됐는데, 그 사람을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작은 시위가 시작됐는데요. 며칠 후 ‘카다피를 끌어내자’는 전 인민적 시위로 번졌어요. 42년 동안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카다피 밑에서 숨죽여 살던 사람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터진 거지요. 카다피는 보안군과 친위대를 동원해서 전투기, 전차, 대포를 앞세워 시위대 진압에 나섰는데요. 이게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시위는 더 확산됐고요. 시위 진압에 동원됐던 군인과 보안군은 눈앞에서 시민들이 죽어가니까 카다피에게 등을 돌리고 시민들 편에 섰고요. 해외에 있던 리비아 외교관들은 줄줄이 망명하고 장교들도 망명하면서 시민혁명이 계속 진행됐습니다. 그러다가 3월5일 국가과도위원회라는 임시정부가 세워졌고요. 친위 세력과 임시 정부 세력이 계속 맞서는 가운데, 3월19일 프랑스를 비롯한 나토군이 리비아 혁명군을 지원하는 폭격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8월21일 시민군이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를 점령하게 되지요. 이날 시민군은 각지에서 카다피의 초상화를 끌어내려 찢어버리고, 트리폴리에 있던 카다피의 금동상은 목이 잘리고, 사람들이 이걸 발로 차고 다니는 모습이 TV로 나왔지요. 그리고 결국은 20일, 시위가 시작된 지 248일 만에 리비아 시민혁명이 승리합니다. 현재 리비아 전국은 축제 분위기입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카다피를 ‘위대한 영도자’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이젠 자유를 찾았다고 이를 만끽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성우: 국제사회도 카다피의 사망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요?
고영환: 그렇습니다. 지금 축제 분위기인데요. 이탈리아 총리도 ‘전쟁은 끝났다’고 말했고요. 심지어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리비아 인민은 이제 자기 손으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헤르만 대통령도 ‘카다피의 사망은 폭정의 시대가 끝났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수십 년간 반제 반미를 외치며 살아온 사람이 결국은 자기 인민에 의해 무너진 건데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박성우: 이제 리비아의 미래는 어떻게 됩니까?
고영환: 아무래도 리비아는 자유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는 8개월 안에 직접적이고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 민주주의적인 방법으로 선거를 해서 의회를 구성하고, 여러 당이 정치를 하는 다당제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전망이 아주 밝습니다. 리비아는 석유가 많잖아요. 또 카다피가 세계 곳곳에 감춰둔 600억 달러가 리비아 재건에 쓰일 겁니다. 리비아 인민은 자유를 찾았으니, 앞으로 경제도 빠른 속도로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아직까지 지구상에 남아 있는 독재자는 누구입니까?
고영환: 북한의 김정일, 시리아의 알 아사드 대통령, 그리고 예멘의 살레 대통령, 이렇게 세 명이 남아 있는데요. 시리아 대통령은 지금 시위 때문에 코너에 몰려있는 상황이고요. 살레 대통령은 자리를 내놓겠다고 이미 약속한 상태이지요. 풍전등화입니다. 바람 앞 등잔불처럼 흔들리고 있고요. 오직 북한에서만 좀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기 집권도 모자라서 아들 김정은에게 3대째 권력을 넘겨주려고 하고 있는데요. 앞에서도 제가 잠깐 언급했지만, 히틀러도 그렇고, 유고슬라비아의 밀로셰비치 대통령,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대통령,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 이들 모두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거든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은 자유입니다. 그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국가는 언젠가는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 이걸 리비아 사태를 보면서 느끼게 됩니다.
박성우: 리비아에서 펼쳐질 새로운 국면은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자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