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에서 '강성대국'이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네, 잘 지냈습니다.
박성우: 북측은 올해를 ‘강성대국’에 진입하는 원년이라고 선포하려고 했었지요. 이 목표가 물거품이 된 탓일까요? 최근 들어서 북측이 ‘강성대국’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장님께서는 그 이유를 뭐라고 분석하십니까?
고영환: ‘강성대국’이라는 표현을 북한이 잘 사용하지 않아 궁금증이 생기고 있지요. 상반기에는 북한이 이따금 신문과 방송에서 이 용어를 썼는데, 지난 8월 30일 청년절 경축행사에 참가한 대표들이 김정은에게 보낸 맹세문에서 “강성대국 건설대전에서 선봉대가 되겠다”고 한 것이 마지막입니다. 김정은 제1비서가 올해 공식적으로 발표한 연설, 논문, 담화 등에서는 단 한 차례도 ‘강성대국’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이 창시한 이른바 ‘강성대국’ 건설이 결국 북한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지요. 그 대신 북한은 최근 ‘김정일 애국주의’나 ‘강성국가’ 등의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김정일 위원장이 ‘강성대국’을 2012년까지 건설한다고 할 때부터 북한 사람들, 특히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북한처럼 가난하고 식량 지원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나라가 ‘강성대국’을 건설할 수 있겠는가, 김정일이 그만큼 인민의 현실을, 나라의 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리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김정은은 부친 김정일이 내놓았던 ‘강성대국’이라는 국가 목표가 현실성이 없고 실현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국가 건설 목표를 바꾸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14년 동안 해온 일을 단번에 바꾸겠다고 하면 혼란이 일어나고 “무슨 후계자가 저래”라는 의문을 간부와 주민들이 가질 수 있으니 국가 목표와 구호를 조금씩 바꾸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박성우: 관련이 있어 보이는 소식입니다만, 북측이 최근 들어서 ‘생눈길 정신’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고영환: 예전에 김정은 제1비서가 “인민들이 허리띠를 더는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 “인민들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는 등 파격적인 발언들을 해서 놀랐습니다. 특히 ‘부귀영화’라는 말은 김일성 주석 때부터 부르주아적 개념이라고 해서 많은 반대를 했는데, 김정은이 이 표현을 공식연설에서 사용해 “북한이 변화를 하려나” 하고 희망을 걸어 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모란봉 시범악단 공연시 배우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자유롭게 무대위를 다니고 미국 만화 주인공인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가 나오면서 “정말 이전 김정일 시대의 북한과 다르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최근 들어 북한이 ‘생눈길 정신’, ‘생눈길 진군’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 더 나아가 김정은이 최근 노동신문 사설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자그마한 탈선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직접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생눈길’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걷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만큼 힘든 길을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김일성 주석 때는 ‘전인미답의 길’, 김정일 시대에는 ‘고난의 길’, ‘진펄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제 김정은은 ‘생눈길’을 쓰고 있는 것이죠.
김정은이 무엇인가 새로운 길을 걸어 보려고 시도를 하다가 ‘조부때부터 걸어온 길을 벗어나면 큰일 나겠다’ 그런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의 대내외 상황, 특히 경제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런 말이 있는데요. ‘생눈길’이라는 건 북한이 개혁 개방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걸어온 폐쇄와 고립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의 표현 같아 좀 불안하긴 합니다.
박성우: ‘생눈길 정신’이라는 표현은 그만큼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걸 뜻하는 듯 한데요. 그런데 북한 외교관들은 요즘 밖에만 나가면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북한을 ‘지식경제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건데요. 실장님도 예전엔 북한에서 외교관으로 일하셨습니다만, 요즘 북한 외교부가 왜 이런 말을 하고 다닌다고 보십니까?
고영환: 유엔 총회에 참가하고 있는 북측 대표가 “북한이 가까운 시일 내에 지식경제강국으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연설했습니다. 김정은 제1비서가 후계자로 내정되었을 때 북한이 김정은을 상징하는 단어로 CNC, 즉 컴퓨터 수치제어 장치를 내세웠지요. 김정은이 세계의 최첨단 기계들을 만드는데 관심이 많고 그런 기계들을 많이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선전을 한 겁니다. 지식경제 강국이라는 것은 어느 한 북한 외교관이 만들어 낸 단어가 아니고 김정은이 직접 만들어 낸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CNC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북한 외교관이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 것은 김정은을 세계 최첨단의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런 나라를 건설할 자신이 있는 지도자로 포장하기 위한 대외선전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식경제 강국이라는 것은 사상과 정신, 지식만 있어서는 만들 수 없지요. 지식경제 강국이라는 것은 최첨단 공업기술과 제조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1980년대 제가 외교관 생활을 할 때 북한 외무성은 우리들에게 지금까지도 완공되지 않은 105층 류경호텔을 ‘건설의 영재’ 김정일 장군이 만들었다고 선전하라고 해서 실제로 선전을 하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1980년대인데 지금도 건설이 안 끝났지요. 시간만 바뀌었다 뿐이지 북한의 대외선전 모습은 그때와 똑같아서 씁쓸합니다.
박성우: 지난 한 주 동안 눈에 띄는 뉴스가 하나 더 있었지요. 김정일의 손자, 김한솔 군이 보스니아에서 외국 방송과 회견을 가졌습니다. 북측 지도부가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올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고영환: 김한솔 군은 김정일 위원장의 친손자입니다. 그러니까 김정일과 그의 첫번째 부인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인 김정남이 낳은 아들이지요. 김한솔 군은 현재 18세이고, 보스니아 월드 칼리지 모스타르 분교에서 유학하고 있습니다.
김한솔 군이 유창한 영어로 핀란드 텔레비전 방송과 인터뷰를 했는데요. 김한솔 군은 마카오에 있을 때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 만나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였는데, 처음에는 어색하였지만 우리는 같은 말, 같은 문화를 가진 한민족이고 얼마나 똑같은 사람들인지 놀랐으며 가장 친하게 한국 학생들과 학교 생활을 하였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북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한에 갈 수 없고, 그곳의 친구들을 만날 수 없어 너무나도 슬프다면서, 그래서 더욱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김한솔 군은 자신이 1995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마카오에 살면서 여러 번 평양에 있는 친척집을 방문하였고, 특히 외가에서 자라 할아버지 김정일이 ‘독재자’인줄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독재자’란 말을 김정일의 손자가 직접 한 것이라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김한솔 군이 외국 텔레비전에 나와 이렇게 인터뷰를 한 것은 김정일의 손자로 워낙 자유분방하게 산 것도 이유이겠지만, 그것보다도 지금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김정남이 아들을 공개하여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박성우: 김한솔 군이 상당히 똑똑해 보이던데요. 김 군의 성향과 자질에 대해서 실장님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영환: 김한솔 군을 직접 인터뷰했던 핀란드의 엘리자베스 전 국방장관은 김한솔이 영리하고 똑똑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김한솔이 통일을 꿈꾸고 있으며 언젠가 평양에 돌아가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처지를 개선하고 싶다고 한 말에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저도 이 말에 감명을 받았어요. 김정일 위원장의 손자가 북한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가 들어가서 개선하고 싶다고 말 한 거잖아요. ‘저 집안에도 괜찮은 사람이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저는 김한솔 군이 외국에서 자라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적어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북한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매우 똑똑한 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성우: “언젠가는 북한에 돌아가서 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고 싶다”는 김한솔 군의 말을 북한 지도부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 집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