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창이 닫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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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미국이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제시했습니다. 오늘도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부원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미국의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에 파격적인 제안을 했죠?

고영환: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각료 중 한 명인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지난 12일 워싱턴에서 "지금은 북한이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전제 조건 없이 북한과 첫 만남을 갖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미국 백악관은 이날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견해는 변하지 않았다"면서도 대화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지난 10월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과 대화할 뜻을 밝혔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이것은 "시간 낭비"라며 공개 면박을 줬던 것과 차이가 납니다.

틸러슨 장관은 "첫 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북한에 대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하면서 "대화를 하려면 일정 기간 북한의 도발 휴식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틸러슨 국무장관의 이날 발언은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압박을 가하여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나오도록 하여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지만, 최종적인 군사적 행동을 가하기 전에 북한 측과 만나 북한의 최종 입장을 들어보겠다는 것이 그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비핵화를 위한 최후통첩 바로 전의 메시지인 셈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계속하여 만들고 도발을 지속하는 경우 최종적으로는 군사적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들겠지만 그전에 해볼 수 있는 모든 외교적 조치들을 취해보겠다는 생각을 미 국무부가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 정부 전체의 입장, 미국 대통령의 입장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박성우: 그렇습니다. 하루 뒤인 13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관계자는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죠.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행동’을 해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말도 했는데요. 부원장님께서 지적하신대로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다만 틸러슨 장관의 발언이 워낙 이례적이기 때문에 지난 12일 발언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또 어떤 내용이 있었나요?

고영환: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우리는 전제 조건 없이 기꺼이 북한과 첫 만남을 갖겠다"는 말을 했다고 서두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틸러슨 장관은 같은 발언의 뒷부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위기 상황에 대한 군사 대응 방안을 요구했고, 미군은 이미 준비가 돼 있다"며 "만일 북한과의 대화에 실패하여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나설 차례가 되면, 그가 군사 행동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건이 없는 대화'라는 발언을 하면서 만일 이런 시도가 실패하면 군사적 행동이 있을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 것입니다.

이날 틸러슨 국무장관은 미국과 중국이 김정은 정권 붕괴 이후에 대해 논의 중이라는 사실도 공개했습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고위급 외교 전략 대화에서 북한 붕괴 후 핵무기 확보 방안을 논의했다"며 "유사시 미군이 휴전선을 넘어 북한에 가야만 하더라도 반드시 한국으로 복귀하겠다는 점을 중국에 약속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도 북한에서 대량의 난민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말도 했습니다.

지난 6월에 미국 워싱턴에서는 미중 고위급 전략회의가 열렸고, 이 회의에 미국 측에서는 틸러슨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 던퍼트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중국 측에서는 양제츠 외교 담당 국무위원, 팡펑후이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이 참석하였습니다.

북한에서 김정은 유고 등 급변사태가 터졌을 때 어떻게 북한 핵무기를 회수할 것이며 중국은 북한에서 비상사태가 터져 난민이 대량 중국으로 넘어 오는 경우 그들을 받아들일 난민촌 건설을 추진하는 문제 등이 미중 사이에 논의된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과 중국이 북한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북한이 핵무력을 고도화할수록 김정은 지도부의 위기 급수가 급속히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말로 북한이 도발을 지속하고 핵무기를 장난감처럼 휘두르는 경우 어느 날 김정은 정권이 증발할 수도 있고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 그리고 경제적 번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박성우: 북한 지도부도 머리가 복잡할 것 같습니다. 미국 측의 대화 제안에는 어떤 함의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고영환: 틸러슨 국무장관이 "우리는 언제든 북한이 원할 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 것은 외교적으로는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틸러슨 장관이 대화의 조건을 엄청나게 낮춘 것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화의 조건은 없애는 대신 북한이 대화에 나서지 않고 도발과 핵무력 고도화를 지속하는 경우 군사적 공격도 가능함은 재삼 강조하였습니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우선은 북한이 더 이상 도발을 하지 않고 대화에 나서서 비핵화 의지를 밝히면서 미국과의 성실한 대화를 진행하는 경우 외교적으로 북핵 문제를 풀 수도 있지만, 만일 대화가 이뤄지지 않거나 대화가 실패하는 경우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적 공격도 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틸러슨 장관도 “나의 외교에서 실패가 있을 경우에 대비한 군사 옵션이 여럿 개발돼 있다”면서 “내 차례가 끝나고 만약 매티스 국방장관의 차례가 온다면 그가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미 국무장관이 직접 나서 북한에 대화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완성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판단으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틸러슨 장관도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고 북한은 한 번 추가 실험을 할 때마다 프로그램의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앞선 방송들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은 ‘붉은 선’을 대략 3개월 정도로 보고 이 기간 내에 대화를 통하여 북핵 문제를 풀어 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만일 이것이 실패하는 경우 군사적인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미국의 이런 제의를 들은 북한 지도부의 생각도 복잡할 것으로 보입니다. 핵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질량적으로 계속 확대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니 이를 쉽게 포기하기도 그렇고 그러다가는 언제든지 미국으로부터 선제공격 혹은 예방공격을 받아 김정은 3대 후계체제도 끝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도 딜레마에 빠질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냐는 건데요. 부원장님은 어찌 보시는지요?

고영환: 북한 중앙통신은 지난 9일 김정은이 '11월 대사변'을 이루고 백두산을 찾았다"고 보도했습니다. 2013년 12월 김일성의 사위 장성택을 반당종파분자로 몰아 처형하기 직전에도 김정은이 백두산을 찾은 적이 있어서 김정은이 그 어떤 중대결심을 하기 위하여 이번에 백두산을 찾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정세를 보면 상황이 북한 지도부에게도 녹록지 않습니다. 최근 동해에서는 미 항공모함 전단 세 개가 모여 해군 훈련을 하였고, 지난 4일부터 8일까지는 230여대의 최첨단 공군기들을 동원하여 공군 훈련을 하였습니다. 내년 3월까지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 미국이 군사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보도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 최고 지도자가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대외·대남 정책을 어떻게 구사할지, 국제사회의 전방위 대북 제재·압박에서 벗어날 묘안이 없는지를 측근들과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평양에서는 핵과 미사일 개발 관련자가 참석한 가운데 '군수공업대회'가 열렸고, 여기에서 김정은은 '핵무력 질적·양적 강화'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는 누가 뭐래도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 체제가 있는 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고, 그래서 내년도 한반도 정세는 계속하여 긴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요즘 ‘기회의 창’이라는 표현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창이 닫히기 전에 북한이 핵문제를 논의할 대화에 참여하길 기대해 봅니다. 지금까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