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생생하게 기억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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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뜨거웠던 8월을 뒤로 하고 2015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올해 마지막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인데요. 오늘은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원님, 저는 지난 열 두 달 중에서 8월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정말 일이 많았었죠. 위원님은 어떠십니까?

고영환: 저도 똑 같은 생각입니다. 올해 12개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달이 지난 8월입니다. 남과 북에서 긴장이 가장 격화되었던 달이니까요. 사건 개요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죠.

지난 8월 4일 경기도 파주 인근의 비무장지대에서 폭발물이 터져 한국군 병사 2명이 크게 다친 사고가 생겼습니다. 한국군은 DMZ 폭발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사고 현장에서 수거한 폭발 잔해물이 북한군의 목함지뢰와 일치한 것으로 분석했다고 8월 10일 발표했습니다.

한국군은 북한군이 비무장지대에 의도적으로 목함지뢰를 매설한 행위에 대한 '혹독한 대가'의 차원에서 최전방 지역 2곳에서 8월 10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2004년 6월 남북 합의에 따라 중지된 후 11년 만에 재개된 것이었습니다.

확성기 방송이 시작된 지 열흘만인 지난 8월 20일 북한군이 비무장 지대 남측 지역을 향하여 76.2㎜ 직사포와 14.5㎜ 고사포 포탄을 발사하였고, 한국군은 155㎜ 자주포를 이용해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대응사격을 했습니다.

김정은은 같은 날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열고 군사분계선 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남측이 48시간 내로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타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섰습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북한이 도발하면 응징하겠다고 맞섰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세상에 유례가 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김양건 대남비서가 한국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남측에 회담을 제의한 것입니다. 48시간의 최후통첩을 한 북한이 최후통첩 기한이 끝나기도 전에 회담을 제기한 것입니다.

남과 북의 줄다리기 끝에 남측의 김관진 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대남비서 사이의 회담이 8월 22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고 무박(無泊) 4일간 무려 43시간 동안 밤샘 마라톤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8월 25일 남과 북은 역사적이라고 할 수 있는 8.25 남북 합의서를 채택하였습니다. 합의에 따라 북한은 지뢰 및 포격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고, 이에 남측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였습니다. 남과 북 전체를 긴장시켰던 지뢰도발이 극적으로 타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북한 외교관으로 있다가 한국에 온 이후 몇 번의 대형 대남도발을 보았지만, 이번 8월 사건은 정말 기억에 생생히 남을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남과 북 사이의 관계에서 도발의 주체를 북한이라고 밝히면서 한국에 유감을 표시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 재발 방지 약속을 이번 회담처럼 강하게 한 것도 처음이었던 것이어서 역사적 합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성우: 북한의 대외관계와 관련해서도 하나 짚어 보죠. 지난 한 해 동안 김정은 제1비서는 정상외교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않았죠. 위원님, 우리가 이 시간에도 많이 다뤘던 주제인데요. 왜 그랬을까요? 다시 한 번 정리해 주시죠.

고영환: 올해 김정은은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 날려보냈죠. 첫 번째는 북한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국가인 중국의 전승절 70주년 기념 열병식 참석 기회였습니다. 중국은 김정은을 이 행사에 초청하였는데 북한은 김정은 대신에 최룡해를 보냈습니다. 한국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 남북이 크게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 한번의 기회는 지난 5월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반파쇼대독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였죠. 러시아가 김정은을 초청하였는데 북측은 김영남을 모스크바로 보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정은에 대한 두 나라의 대우 문제 때문에 방문이 무산된 것으로 봅니다. 북한에게 있어 중국과 러시아는 중요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에 있어 북한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나이도 어리고 집권한지도 얼마 되지 않고 그러니 열병식 주석단 중심에 김정은을 세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천재적이고 위대한 수령이라고 칭송을 받지만 외국에 나가서, 그것도 가장 친하다는 나라들에 갔는데, 김정은이 주석단 중심에 서지 못하고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서있는 모습이 북한 텔레비전에 비치면 김정은의 이른바 위신이 떨어질 것은 분명했습니다. 김정은의 권위를 가장 중시하는 북한이 김정은에 대한 특별대우를 중국과 러시아가 해주지 않겠다고 하니 정상외교의 뜻을 접은 것으로 보입니다. 주석단 중심에 서는지 아니면 멀리 서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 중요한 두 계기를 날려버린 것이 아쉽게 생각됩니다.

박성우: 올 한 해를 정리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주제가 있죠. 바로 ‘숙청’입니다. 올해도 북한에서는 거물급 인사들이 사라졌죠?

고영환: 2015년에도 영락없이 북한에서는 숙청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북한 내 군 서열 2위였던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이 4월 30일 반역죄로 공개 처형된 사건이었습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현 무력부장이 2015년 4월 24~25일 열린 '군 훈련일꾼대회'에서 김 위원장의 연설 중 조는 모습을 보였고, 김 위원장의 지시에 대꾸하고 불이행했으며, 김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등 '유일영도 10대 원칙'을 어긴 것이 '불경'과 '불충'으로 지적돼 '반역죄'로 처형됐다고 국회에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장성택 처형 이후 2인자로 근무해 왔던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며 전 총정치국장이었던 최룡해 당 근로단체비서도 중앙 정치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숙청하고,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을 사라지게 하였으며, 특히 2013년 12월에는 자신의 고모부이자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 2인자였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했습니다. '김정은 시대' 4년 동안 처형된 북한 고위 간부는 무려 13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공포정치 일변도의 정권 운영 방식이 김정은 제1위원장 일인지배체제를 유지하는데 단기적으로는 유리하겠지만, 공포통치 행태가 장기화 될 경우 피로감 누적으로 권력 내부에서 동요가 일면서 최고지도자의 지도력을 의심하는 기류가 형성되어 불안정 요소가 강화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박성우: 마지막으로, 위원님께서 올 한 해 동안 기억에 남은 일, 또는 특기할 만한 행사가 있었다면 무엇인지 소개를 해 주시죠.

고영환: 올해 북한에서 일어난 가장 주목할 만한 행사는 당연히 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였고 특기할 일은 2016년 5월초에 당 7차대회를 열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북한은 2015년 10월 10일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김일성 광장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개최했습니다. 열병식 주석단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 바로 왼편에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자리를 잡아 눈길을 끌기도 하였습니다.

김정은은 이 행사에서 25분간 육성연설을 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97회나 사용했습니다. 김정은이 연설에서 인민을 그렇게 강조를 한 것은 김정은의 이른바 ‘애민사상’을 조명하려는 뜻이겠지만, 다른 편으로 보면 인민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북한의 민심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저는 김정은 집권 이후 5회에 걸쳐 진행된 열병식을 다 보았는데, 왜 김정은이 그렇게 큰 돈이 들어가는 열병식들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그런 돈으로 공장을 짓고 철도와 도로를 현대화하고 인민들의 의식주 생활을 높이는데 쓰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 보면 끝나는 열병식보다는 인민들이 굶주리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왜 모를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박성우: 올 한 해 정말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8월이 그랬는데요. 잔뜩 고조됐던 긴장을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다소 해소했죠. 그 결과가 8.25 합의인데요. 아무쪼록 내년에는 이 합의가 잘 이행돼서 남북관계에 큰 진전이 있길 기대해봅니다. 위원님, 지난 한 해 수고하셨고요. 2016년 1월 1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