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용에 불과한 북 대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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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 기자와 함께하는 '북한은 오늘'입니다. 북한의 현실과 생생한 소식, 문성휘 기자를 통해 들어보시겠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입니다.

-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무난히 치렀지만, 이는 단순히 "권력의 건재함을 시위하기 위한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주장했습니다.

과시용에 불과한 대의원 선거

박성우: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문성휘: 네, 안녕하세요?

박성우: 3월 9일,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실시했는데요. 먼저, 북측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내용이 좀 있을 듯합니다. 소개해 주실 내용이 있으신지요?

문성휘: 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앞두고 북한은 2월 중순부터 3월 15일까지를 '특별경비주간'으로 지정하고 주민감시와 통제를 한층 강화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눈여겨 볼 사건들이 일부 있었습니다.

박성우: 어떤 사건인데요?

문성휘: '특별경비주간'인 2월 23일에는 청진시 신암구역 당위원회 경리과 건물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 건물에 붙어 있던 총무부 산하 10호실도 모조리 불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총무부는 당 내부문건을 취급하는 부서이고 산하 10호실은 총무부의 문건을 보관하는 곳인데 그러니까 구역당 내부문건들이 모조리 불타버렸다는 거죠.

3월 1일 저녁에는 함경북도 회령시 오봉리 '투표소' 입구에 붙어있던 유권자 명단이 모두 훼손되어 회령시 간부들이 긴급히 현장으로 출동하는 사건도 있었고요. 선거를 불과 이틀 앞둔 3월 7일에는 회령시 인민보안부 청사에서 경비근무를 서던 보안원 세 명이 싸움이 붙어 자동보총(소총) 두발을 난사했다고 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자칫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어서 북한 당국도 사건을 무게 있게 다루고 있다는 게 현지 소식통들의 전한 소식이고요. 한마디로 '특별경비'까지 선포했지만 북한 정권의 체질이 워낙 많이 약해지다 보니 제대로 된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게 소식통들의 주장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이번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대체로 무난히 치러졌다는 게 소식통들의 일치한 이야기입니다.

박성우: 문 기자도 북한에 계실 땐 투표를 하셨을 텐데요. 투표 당일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문성휘: 솔직히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자나 선거의 투표율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선거일에는 누구나 선거장에 가서 의무적으로 찬성투표를 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이와 관련해 소식통들이 재미있는 내용을 전했습니다. 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죤'이 9일 저녁, 8시 보도시간을 통해 12시 현재 65.57%, 14시 현재 90.91%의 유권자들이 선거에 참가했다고 보도를 했는데요.

하지만 직접 선거에 참여하고 돌아 온 양강도의 한 소식통은 이날 선거가 "아침 6시부터 시작돼 오전 11시 경에 모두 끝났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소식통들 역시 "늦어도 11시 경에 선거가 모두 끝났다"고 얘기했습니다.

박성우: 오전 11시에 선거가 대부분 마무리 됐는데 북한 언론은 그보다 투표시간을 길게 잡아 보도를 했다는 게 아닙니까? 왜 그랬다는 거죠?

문성휘: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 선거는 무조건 참가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때문에 주민들은 마음 편히 하루 보내기 위해 새벽 일찍이 선거장에 몰린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이 투표시간을 늦잡아 보도한 것은 이날 하루 종일 원활하게 투표가 진행됐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마디로 '강제적인 선거'라는 외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투표 진행 시간을 길게 잡아 보도를 했을 것이라는 거죠.

박성우: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이번 선거는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처음 열린 것인 만큼 외부의 관심이 높았는데요. 최대 관심사는 '이번 선거를 통해 북한 권력층의 변동을 점칠 수 있을까'라는 점이었습니다. 어떤가요?

문성휘: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물론 간부들과 지식인들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하는데요. 제가 통화를 해 본 현지 소식통들은 이번 선거는 김정은 정권이 "권력의 건재함을 시위하기 위한 행사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간부들과 지식인들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시사하는 부분이 많다고 강조했는데요. 이번 선거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여동생 김여정이 공식적으로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여러 가지 추측에 불과했던 김여정의 권력등장설이 사실로 확인되었다는 거죠.

한국의 언론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동안 일부 언론에서 최룡해의 실각설이 제기되는 등 권력실세들의 행방을 놓고 혼선이 많이 빚어졌는데요. 이러한 권력 실세들의 행방은 대부분 북한 내부에서 한국과 연계된 소식통들이 전한 내용들에 토대해 전해졌습니다.

한국 언론들이 혼선을 빚었다는 건 그만큼 북한 내부가 혼란스럽다는 걸 뜻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북한 권력 실세들의 건재 여부가 명백히 드러났다는 점을 소식통들은 주목했습니다.

박성우: 북한 언론의 보도와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의 권력 실세들이 건재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인민군 정찰총국장 김영철을 비롯해 행방이 묘연한 인물들도 극소수로 있기도 합니다만, 장성택 처형 후 권력지형이 크게 변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요. 그럼 이제 장성택 숙청은 일단락됐다고 보면 되는 건가요?

문성휘: 북한 내부소식통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단순히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만 놓고 북한의 미래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거지요. 왜냐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는 한갓 형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과거에도 늘 그러했듯이 북한에서 간부들에 대한 숙청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고인민회의가 권력실세들의 운명을 결정한 사례는 거의 없고요. 이번에 대의원으로 뽑혔다고 해서, 이게 앞으로 간부들의 정치 운명을 담보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거지요. 때문에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단순히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만 놓고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큰 오류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그럼 앞으로도 북한의 권력 지형은 계속해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지켜봐야 한다는 뜻이군요?

문성휘: 섣부른 해석은 금물이지만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앞으로 가까운 몇 달 내에 숙청될 권력 실세들 몇몇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에서는 이들의 이름도 나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막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추가 취재를 거쳐서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자 하고요.

다만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장성택 숙청 이후 발생한 북한 권력 구도의 정지 작업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통해 깔끔하게 끝난 걸로 보이진 않는다는 겁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이미 정해져 있던 연례적 행사인 만큼 북한 정권도 '북한이라는 국가가 지극히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박성우: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최고인민회의를 한국에서는 '허수아비' 기관이라고 부르죠. 미국은 이걸 고무도장(rubber stamp)에 비유합니다. 아무런 실질적 권한 없이 그냥 시키는 건 다 승인해 버린다는 뜻인데요. 문 기자가 지금 이야기하는 내용도 이런 기관에 누가 뽑혔는지를 갖고 북한의 권력구도를 평가할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문성휘 기자, 오늘도 수고하셨고요. 다음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문성휘 :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