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 기자와 함께하는 '북한은 오늘'입니다. 북한의 현실과 생생한 소식, 문성휘 기자를 통해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입니다.
-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가 김정은의 오른팔로 자리를 굳히면서 최룡해의 부친 최현의 과거사가 새삼스레 북한주민들속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 최룡해 부친의 과거 어떻기에?
박성우 :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문성휘 : 네, 안녕하세요?
박성우 : 북한에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그리고 그의 일가가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문 기자가 최근에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문성휘 : 네, 북한 주민들속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정확히 말해 최룡해의 부친인 최현입니다. 최룡해가 김정은의 그림자로 불릴 만큼 출세하면서 과거 '청년동맹사건'으로 더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던 최룡해가 어떻게 오늘날만큼 출세할 수 있었냐? 이런 의문이 북한 주민들속에서 증폭되고 있다는 건데요.
그러다나니 자연스레 북한 주민들속에서 최룡해의 아버지인 최현도 자연히 관심사에 오르게 되었다는 겁니다.
박성우 : 그렇군요. 최현이 북한에서도 상당히 유명했던 인물이라고 들었습니다. 과거 김일성 주석과 함께 중국 동북항일연군에서 싸웠다, 이런 말도 있었고요. 또 해방 후부터 사망할 때까지 김일성 주석의 가장 가까운 동지였다, 이렇게 알려져 있는데 북한주민들은 최현에 대해 무엇이 제일 관심사라는 거죠?
문성휘 : 한마디로 최룡해의 아버지 최현의 특이한 과거입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에게 끝까지 충성한 최룡해의 아버지 최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까지 찍어서 주민들에게 많이 선전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최현은 김일성 주석의 영원한 충신이고 동지라는 내용입니다.
박성우 : 네, 그렇더라고요. 최현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이 긍정적이라고 저도 알고 있는데요.
문성휘 : 그렇습니다. 그런데 최근 북한 내부에서는 최현과 관련해 숨겨진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박성우 : 숨겨진 이야기이다. 그러면 우리가 잘 모르는 최현의 다른 과거도 있다는 얘기인가요?
문성휘 : 네, 지금까지 북한 당국이 주장하는 것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과거가 있다는 겁니다.
박성우 : 그게 대체 어떤 겁니까?
문성휘 : 북한 대학생들과 지식인들 속에서 이런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북한에서 '마안산 사건'으로 불리는 김일성의 '반민생단 투쟁'과 관련된 이야기들입니다. '마안산 사건'이라는 것은 항일무장 투쟁을 하던 김일성이 중국 길림성 무송현에 있는 마안산에서 '민생단' 혐의를 받고 처형될 조선인들을 구원했다는 사건인데요.
김일성 주석이 쓴 '세기와 더불어'라는 책을 봐도 그래, 또 지금껏 북한은 1936년 12월, 김일성이 마안산에서 '민생단' 혐의를 받고 당장 처형될 위기에 놓인 조선공산주의자들 200여명을 석방시키고 '민생단 문서보따리'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민생단 문서보따리'에 불을 지른 후 그곳으로 최현이 부대를 이끌고 와 김일성의 부대와 합류했다고 선전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최근 일부 북한지식인들은 이러한 '마안산 사건'에 대해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혁명역사 교재들을 보면요. 1936년 3월 김일성이 중국공산당 간부들과 미혼진이라는 곳에서 회의를 열고 '민생단 투쟁'을 종식시켰다고 하는데 실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중국공산당 내에서 '민생단 투쟁'은 미혼진회의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결국 김일성이 1936년 12월에 '민생단'으로 몰려 마안산에 있는 '민생단' 혐의자들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거죠.
그곳에는 김일성과 함께 200~300명의 유격구 주민들이 '민생단' 혐의를 쓰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데요. 바로 이렇게 '민생단 감옥'에 갇힌 김일성을 구원한 것이 최현이라는 겁니다.
박성우 : 좀 복잡한데요. 정리를 하면 김일성이 '민생단' 혐의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마안산으로 간 것이 아니라 '민생단'으로 몰려서 마안산에 있는 감옥에 구금되었고 김일성을 구해낸 게 최현이다, 이렇게 되는 거군요?
문성휘 : 네, 맞습니다. 당시까지 최현은 자신이 직접 무은 30~40명 정도의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있었는데 중국공산주의자들이 마안산에서 숱한 조선인들을 가두고 총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거죠. 이런 소식을 들은 최현이 중국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조선인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부대를 이끌고 마안산을 불의에 공격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옥에 갇혔던 김일성도 구원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마안산에서 '민생단' 혐의자들을 구원하고 '민생단 문서보따리'에 불을 지른 것은 김일성이 아닌 최현이다, 이런 내용입니다.
박성우 : 지금 이런 내용의 이야기들이 북한의 지식인들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고 있다는 건데요. 그러면 지금까지 북한이 주장해 온 김일성 주석의 항일투쟁 역사가 이 부분에서는 좀 뒤 바뀌었다는 것 아닌가요?
문성휘 : 네, 많은 내용이 과장되거나 부풀려졌다는 거죠.
박성우 : 네, 그런데 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도대체 누구에 의해서 처음 전파되기 시작했는지 이건데요?
문성휘 : 네, 그러한 이야기의 진원지는 바로 최현 자신이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현이라고 하면 김일성의 방에 권총까지 차고 들어갈 만큼 다혈질의 성격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죽을 때까지 공식석상을 제외하고는 김일성에게 절대로 존칭어를 쓰지 않은 북한의 유일한 인물이 최현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최현의 가장 큰 결함이 측근들에게 자기자랑을 끝없이 늘여 놓는 거였다고 합니다. 그 자기자랑 속에 바로 마안산에서 '민생단' 혐의를 받고 갇혀있는 김일성을 구원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고 하는데요.
최현이 살아있을 당시까지만 해도 그가 측근들에게 한 말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에 걸려 문제가 될 수 있는 얘기이기 때문에 측근들도 일체 함구하고 있었다는 건데요. 그렇게 역사 속에 묻혀있던 사실들이 최근연간 최룡해의 급부상으로 다시 수면위에 뜨게 되었다는 거죠.
박성우 :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최룡해의 아버지 최현이 사망한 게 1982년 4월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젠 사망한지 30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오늘날에 와서 다시 최현에 대한 이야기가 주민들속에서 나오고 있다는 거죠?
문성휘 : 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뿐 아니고 최현과 관련해 북한 지식인들과 주민들속에서 참으로 여러 가지 주장들이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최현이 김일성의 가장 가까운 동지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김일성이 가장 꺼려한 인물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최현이 하도 다혈질인 성격이니까 김일성이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한 근거로 북한 지식들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김일성의 생전에 최현과 함께 찍은 사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박성우 : 그렇군요. 북한의 기록영화에서도 최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면서요?
문성휘 : 네 그렇죠. 그러한 게 다 김일성이 최현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최현을 멀리 했기 때문에 김일성을 수행하는 일꾼들 가운데는 그가 있을 리 없다. 이런 얘기죠. 단순히 그런 내용들뿐이 아니고 '1956년 종파사건'과 1967년 당시 민족보위상, 지금의 인민무력부장이죠. 민족보위상 '김창봉 사건'을 비롯해 북한 주민들속에서 최현에 대한 평가가 참으로 많은데 이런 건 나중에 더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박성우 : 네, 알겠습니다. 김일성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면서도 제일 껄끄러운 인물이 최현이었다는 건데요. 그 아들이 지금 김정은의 오른팔로 자리를 굳히고 있습니다. 역사가 되풀이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문 기자 오늘 얘기 잘 들었고요. 다음 시간 또 기대하겠습니다.
문성휘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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