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오늘] 북, 추모행사 기간에도 사건사고 잇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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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 기자와 함께하는 '북한은 오늘'입니다. 북한의 현실과 생생한 소식, 문성휘 기자를 통해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입니다.

- 북한 당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년 추모행사 기간 동안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북한 장마당들에서 중국인민폐가 기본 유통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물가가 점차 안정을 찾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이 전해왔습니다.

1. 북, 추모행사 기간에도 사건사고 잇달아

박성우 :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문성휘 : 네, 안녕하세요?

박성우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1년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사건사고 적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사고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문성휘 : 네, 북한은 추모기간이 시작되기 전인 올해 12월 1일부터 특별경비기간을 선포했습니다. 국경은 물론이고 내부 주민들에 대한 통제도 훨씬 강화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에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이 많이 터져서 북한 당국이 상당히 당혹해 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언급을 했지만 양강도 혜산시 안간령에서 49경보병여단 자동차가 눈길에 전복돼 군인들과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비롯해 갑작스런 한파가 자동차 사고로 이어지면서 많은 인명피해가 난 것으로 알려졌고요.

함경북도 청진시에서는 9군단 소속의 소형부업선 2척이 고기잡이를 위해 바닷가에 나갔다가 실종되는 사건도 발생해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사고들은 모두 자연재해에 의한 사고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그동안 심상치 않은 사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양강도 혜산시에서 김정일 사망 1년 추모기간에 있었던 사건들만 살펴보아도 그동안 북한에서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겠는 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지난 2월 10일, 양강도 혜산시 춘동에서는 '춘동남새상점' 옆, 독립가옥에 살던 강씨 성의 주민이 아내와 어린 두 자식을 데리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들 가족과 함께 집안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는데요.

박성우 : 계획적이었군요?

문성휘 : 네, 또 이 기간에 양강도 혜산시 화전리에 있는 국경경비대 중대에서 경비대원 1명이 행방불명돼 소동이 일었다고 합니다. 국경경비대원들이 총동원돼 그와 인연이 있는 집들을 모두 찾아 헤매고, 지어 압록강에 있는 얼음구멍들까지 모두 뒤졌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현지 당국은 그도 역시 중국으로 도주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12월 13일, 혜산시 마산1동에서는 40대의 가정주부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소식을 전한 현지 소식통들은 최근 북한의 여러 지역들에서 생활난으로 인한 자살사건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갑작스런 추위로 인해 혜산시에 있는 '꽃제비'들이 여러명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는데요. 혜산역과 혜산장마당 안에서 사망한 '꽃제비'들은 12살부터 14살 사이로 보이는 어린 소녀들이었다고 합니다.

보통 '꽃제비'들의 경우 11월 초가 되면 열차를 이용해 모두 날씨가 따뜻한 길주 이남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런데 올해는 열차단속이 하도 심해서 꽃제비들이 열차에 오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결국 자리를 옮기지 못해 양강도의 추운 날씨에 얼어 죽고 말았다는데 혜산장마당을 비롯해 아직 혜산시에 남아있는 '꽃제비'들이 많아서 앞으로 이런 사고가 또 일어날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말했습니다.

박성우 : 아, 그렇겠군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년, '특별경비' 기간임에도 그렇게 사건사고가 많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북한 내부의 기강이 그만큼 해이됐다는 것 아니겠느냐? 이런 추정을 가능하게 한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인민폐의 고착화로 장마당 안정

박성우 : 자, 이번엔 다른 얘기 좀 해보죠. 북한 장마당들에서 중국인민폐가 사용된다, 이건 오래 된 이야기지 않아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중국인민폐에 대한 의존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 하셨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그렇습니까?

문성휘 : 한마디로 이젠 장마당에서 그 어떤 물건이든지 중국인민폐로 다 살수 있다는 겁니다.

예전 같으면 중국인민폐로 값을 매기기 애매한 물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예하면 1위안(元)이나 10챈(錢)과 같이 액면이 작은 중국화폐들이 드물었고 대개는 5위안 이상으로 액면가가 큰 중국화폐들이 장마당에서 오갔다고 하는데요. 그러다나니 연필이나 껌과 같이 값을 매기기 애매한 물건들은 거래가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북한 돈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액면가가 작은 물건들도 모두 중국인민폐로 거래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박성우 : 그러면 지금은 액면가가 작은 인민폐도 북한에 많이 유통되고 있다는 말이군요? 문성휘 : 네, 이젠 중국에서 쓰는 모든 액면가의 화폐들이 북한 장마당에 충분하게 유통 될 만큼 들어왔다고 합니다.

박성우 : 오, 그래서 중국인민폐에 대한 의존도가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런 말이 나오는 거군요.

문성휘 : 네, 그 대신 달러 같은 건 장마당 거래에 이용되지만 중국인민폐에 비하면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중국인민폐가 많이 들어올 수 있었던 요인은 예전에는 중국과 물물거래를 하던 밀수꾼들이 대개 중국인민폐로 물건 값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요. 또 북한의 환전꾼들이 환차익을 노려서 달러를 중국에 넘기고 대신 중국인민폐를 받아오는 현상이 늘면서 중국인민폐의 확산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박성우 : 그렇군요. 중국인민폐가 유통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말인데요. 북한장마당이 점차 안정을 찾고 있다, 이건 어떤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되는 겁니까?

문성휘 : 네, 올해 여름까지만 해도 장마당에 가서 "쌀 1kg이 얼마냐" 이렇게 물으면 북한 장사꾼들은 북한 돈으로 얼마, 중국 인민폐로 얼마다, 이렇게 두 가지 가격을 다 알려주었다는 겁니다. 또 사는 사람들도 북한 돈이나 중국 인민폐로 다 살 수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장마당에서 값을 물으면 "입쌀 1kg에 5원, 강냉이는 2원 20전" 이렇게 중국인민폐로 된 가격만 알려준다는 겁니다. 대신 "조선(북한) 돈으로 얼마냐?" 이렇게 물으면 "잘 모르겠다" 이러지 않으면 "우리(북한) 돈은 받지 않는다"고 대답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쌀만 아니고 장마당에서 일체 모든 물건이 중국인민폐로만 유통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북한 돈의 가치가 오르든 내리든 장마당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죠. 북한 돈의 가치가 내려도 쌀값은 중국인민폐로 5위안이고, 가치가 올라도 역시 쌀값은 5위안이라는 겁니다.

박성우 : 무슨 소린지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 북한 돈은 어디에 쓰는 겁니까?

문성휘 :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일정하게 북한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예하면 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든지,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버스를 탄다든지, 그럴 땐 북한 돈이 필요하다는 거죠. 장사꾼들도 역시 장세를 내야 하는데 장세는 북한 돈으로 바쳐야 하니까 북한 돈은 아직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는 겁니다.

박성우 : 그렇군요. 개인들 간의 유통은 전적으로 중국인민폐만 사용을 하고 당국과 개인 간의 거래, 또는 공장기업소들 간의 거래는 북한 화폐가 사용된다, 이렇게 봐야 되는 거군요.

문성휘 : 네, 그러니까 예전에는 장마당 경제와 국영경제가 따로 나눠져 있다고 해도 화폐는 북한화폐로 통일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장마당 경제는 중국인민폐로, 국영경제는 북한화폐로, 이렇게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거죠.

박성우 : 한마디로 이젠 북한 주민들속에서 북한화폐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 말로 들립니다. 중국인민폐가 고착되는 상황이 북한의 중국의존도를 더 키우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문 기자 오늘 얘기 잘 들었고요. 다음 시간 또 기대하겠습니다.

문성휘 :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