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분배’ 왜 못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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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 기자와 함께하는 ‘북한은 오늘’입니다. 북한의 현실과 생생한 소식, 문성휘 기자를 통해 들어보시겠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입니다.

- 북한이 ‘농업개혁’을 시행하면서 농민들과 한 ‘현물분배’ 약속을 지키지 않아 농민들의 생활난이 가증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이 전해왔습니다.

하루 450그램 쌀로 배고픔 달래

박성우 : 문 기자 안녕하세요?

문성휘 : 네, 안녕하세요?

박성우: 장성택 처형사건과 김정일 사망 2돌 추모행사가 겹쳤죠. 그래서 한동안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좀 외면당해 온 것 같습니다. 북한농민들이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문 기자가 얘기했었는데 이 문제 미처 다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시간을 낸 것 같은데요. 북한 농민들의 현재 상황, 왜 그렇게 어렵게 된 겁니까?

문성휘 : 네,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까지 북한 당국이 농민들에게 ‘현물분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물분배’ 대신 농장원들의 출근율에 따라 노동자들과 꼭 같은 배급을 준다는 건데요. 배급량도 현물분배량에 상관없이 어른들에 한해서 하루 450그램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북한처럼 여러 가지 반찬거리나 고기와 같은 것을 별로 먹지 못하는 주민들은 하루 450그램의 배급량을 가지고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박성우 : 네, 저도 이야기 들었습니다. 북한의 4인 가족이 필요한 한달 식량이 40kg이 넘는다면서요?

문성휘 : 네, 오직 밥에만 매달려 살아야 하니 어른 한명이 하루 평균 800그램 이상의 쌀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량이 많은 농민들에게 하루 450그램의 쌀을 준다니 그것만으로는 배고픔을 달랠 수가 없다는 거죠.

박성우 : 그렇군요. 그런데 올해 농사가 잘 됐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현물분배를 주지 못하는 사정이 있나보죠?

문성휘 : 거기에 대해 이해하자면 올해 북한의 ‘농업개혁’부터 좀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은 올해 1월 17일, 각 도별로 농업일꾼실무회의를 개최하고 ‘새농업관리체계’, 일명 ‘농업개혁’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고 합니다.

일단 북한은 지난해 일부 협동농장들을 시범단위로 정해 ‘농업개혁’을 추진했는데 그 성과에 상당히 고무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 1월에 있었던 실무회의에서는 비록 강요는 하지 않았지만 협동농장들마다 ‘농업개혁’을 받아들이도록 적극적으로 권장을 했다는 거죠.

그런데 잠깐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북한의 ‘농업개혁’과 관련해 간단히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게 유형별로 보면 상당히 복잡합니다. ‘농업개혁’이라고 해서 꼭 ‘분조도급제’와 ‘포전담당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요.

기존대로 협동농장을 운영하면서 가을에 ‘현물분배’만 북한 당국이 내 건 조건으로 운영해도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박성우 : 무슨 말인지 짐작은 되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 주시죠. ‘현물분배’만 북한 당국이 내 건 조건대로 운영한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문성휘 : 북한은 ‘농업개혁’의 골자는 농업생산량의 70%를 당국이 가져가고 나머지 30%를 농민들이 가진다는 7:3의 약속이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분조관리제’, ‘포전책임제’를 시행하지 않아도 가을 분배만 7:3으로 나누면 된다는 거죠.

그래서 실무 강습 후 북한의 대부분 협동농장들이 ‘농업개혁’을 받아들였음에도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박성우 : 그러니까 ‘농업개혁’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인 게 아니라 실정에 맞게 일부만 받아들인 협동농장들도 있다는 거군요?

문성휘 : 네, 제가 소식통들로부터 들은 바로는 대부분 협동농장들이 가을 분배에 초점을 맞춰 제 각각으로 ‘농업개혁’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러다나니 협동농장마다 관리실태가 달라 현지에서도 몹시 혼란스러워 했다는 겁니다.

이렇든, 저렇든 ‘농업개혁’의 기본은 ‘현물분배’입니다. ‘현물분배’는 가을철에 농민들에게 농사를 지은데 대한 보상으로 1년 치 식량을 한꺼번에 주는 제도입니다. 해마다 북한은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현물분배’를 요란하게 선전해 왔는데요.

그런데 올해는 낱알 털기가 일찍 끝났음에도 지금까지 북한 언론들은 ‘현물분배’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다는 것입니다.

박성우 : 그렇군요. 낱알 털기가 일찍 끝났다고 말씀하셨는데 북한의 조선중앙방송도 보도를 한 적이 있죠. 11월 21일에 유명선 내각 농업성 국장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 었는데요. “11월 18일 현재 전국적으로 낟알털기(탈곡)를 100% 끝내는 성과를 이룩했다, 과거 12월까지 진행하던 탈곡을 올해에는 한 달 이상 앞당겨 끝냈다” 이렇게 자랑했었잖아요.

그런데 낱알 털기가 끝나면 당연히 ‘현물분배’를 줘야 되는가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거군요?

문성휘 : 네, 원래는 그게 순서입니다. 낱알 털기가 끝나면 ‘현물분배’를 주어야죠. 또 북한이 추구하는 ‘농업개혁’의 기본이기도 하고요. 더욱이 올해는 농사도 잘 됐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차례질 현물분배 량도 적지 않을 것으로 타산됐습니다.

박성우 : 그렇게 다들 기대를 했었죠.

문성휘 : 그런데 아직까지 북한은 농장원들에게 현물분배를 주지 않고 있다는 거죠. 대신 농민들에게 매달 출근율을 따져가며 하루 450그램의 배급을 준다는 겁니다.

박성우 : 배급을 준다는 게 협동농민들을 모두 농업노동자로 전환했다, 이런 의미인가요?

문성휘 : 그런 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 자유아시아 방송과 연락이 닿은 북한의 한 농업간부는 “현물분배를 줄 절대적인 식량이 부족한데다 현물분배를 한꺼번에 주면 농민들이 일을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지금과 같은 겨울철에도 협동농장들에 일거리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비료가 없기 때문에 거름생산에 집중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현물분배’로 1년분 식량을 다 타면 다음해 농사가 시작되는 봄철까지 일하려 나오는 사람들이 없다는 겁니다.

문성휘 : 게다가 일거리가 없으면 하다못해 농장원들을 모아놓고 사상학습이라도 시켜야 하는데 ‘현물분배’를 타서 먹을 것이 있으면 누구도 통제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올해 농사가 잘 됐다고 하지만 ‘현물분배’의 절대적인 량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군량미를 거두고 간부들에게 줄 배급과 전시예비물자까지 챙기다 나니 농민들에게 줄 ‘현물분배’ 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란다는 거죠.

이런 문제로 하여 북한은 ‘농업개혁’을 받아들인 협동농장 농장원들에게 노동자들과 꼭 같은 식의 ‘배급제’를 실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소식통들이 전한 내용입니다.

박성우 : 그렇군요. 군량미를 챙기자니 농민들과의 ‘현물분배’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고, 농민들과 한 ‘현물분배’ 약속을 지키자니 또 군량미를 확보가 어렵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라는 건데요. 이와 관련해 농민들의 생각은 전해진 게 없는지요?

문성휘 : 네, ‘현물분배’를 받지 못하면서 농장원들의 사기는 완전히 꺾였다고 합니다. 배급이나 받자고 농사를 짓는다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출근율만 높으면 되니깐요.

‘현물분배’만 바라보고 뼈 빠지게 일했던 농민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특히 하루 450그램의 보잘 것 없는 배급만 받게 되었으니 농민들은 앞으로도 배고픔을 면할 수 없다는 허탈감에 빠져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말했습니다.

박성우 : 알겠습니다. 현물분배가 농업개혁의 기본이라고 하셨는데요. 이게 잘 안되고 있다는 거잖아요.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장성택 처형사건으로 묻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소식 감사하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문성휘 :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