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현실과 생생한 소식을 전해드리는 RFA, 자유아시아방송의 '북한은 오늘'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문성휘입니다.
1998년에 제작돼 '청룡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축제에서 우수상들을 휩쓸었던 한국영화 한편이 있습니다. 배우 박신양이 공상두라는 깡패 남주인공 역을 맡고 전도연이 채주희라는 여주인공 의사역을 맡은 '약속'이라는 영화였습니다.
2천년대 초 북한에서 젊음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당시 처음으로 도입된 알판(DVD)을 통해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영화 몇 편이 떠 오를 것입니다. 보위부의 눈을 피해 가며 창문을 담요로 막고 친구들끼리 밤을 새워가며 보던 영화들이죠.
첫 손가락에 꼽으라면 중국 연변예술단에서 찍은 6부작 드라마 '사랑의 품'이 단연 1위였고 그 다음은 한국드라마 '장군의 아들', '남자의 향기'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단편영화를 떠올린다면 당연히 미국영화 '타이타닉'과 한국영화 '약속'이었죠.
"네 마음속의 나를 지우지마"… 한국영화 '약속'에서 나오는 여주인공 채주희의 절절한 부름을 그 시대를 살아 온 남한은 물론 북한의 많은 젊은이들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문득 지나 온 시절을 되새기니 감회가 새로워지죠?
세상이 무섭다 하게 날뛰던 깡패 두목 공상두와 차분한 의사 채주희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약속', 어느날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져버린 공상두, 그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채주희와의 결혼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합니다.
이별의 긴 시간을 지나 잠시 외출을 나갔던 사람처럼 조용히 돌아 온 남자, 두 사람은 작은 성당에서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이 결혼식을 올립니다. 하지만 이렇게 '약속'을 지킨 남자는 자신의 살인죄를 경찰에 자수하기 위해 홀연히 떠나버립니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로 차고 넘치는 게 이 세상이지만 당시 한국영화를 처음 접하는 북한 젊은이들에겐 너무도 슬픈 사랑의 이야기였죠. 떠나면서 그 남자가 남긴 말 한마디가 그 시절 우리의 젊은 가슴에 애틋한 여운으로 남았죠.
"이거 하나만 알아둬, 도움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누구도 도와주지 못해"… 지금도 주인공이 남긴 이 대사를 생각하면 북한에 있는 형제들과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대사를 뒤집어 김정은 정권에 한마디 날리고 싶습니다. "이거 하나만 알아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
오늘은 북한 인민들이 'ㄹ'자 받침이 들어간 걱정거리들로 하여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후 'ㄹ'자 받침이 들어간 문제거리들이 더 늘었다고 북한 현지의 소식통들이 밝혔는데요.
애초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존해 있을 때부터 'ㄹ'자 받침이 들어 간 '3대문제'라는 게 존재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물, 불, 쌀'입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가장 기초적인 세 가지가 해결되지 못해 생활난이 악화된다는 건데요.
하지만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후 'ㄹ'자 받침이 들어 간 문제 두 가지가 더 추가되어 이제는 '5대문제'가 됐다고 소식통들은 말했습니다. 추가된 두 가지는 '물, 불, 쌀'과 함께 '돌과 널'이라고 소식통들은 설명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온갖 건설을 벌려 놓고 매 가정세대들에 건설용 자재로 '자갈과 모래'를 시도 때도 없이 받아낸다는 것이 'ㄹ'자 받침이 들어 간 '돌' 문제입니다. 평양의 대동강변에는 자갈과 모래만 전문으로 채취해 파는 장사꾼들까지 등장했다는데요.
평양만 아니라 북한의 크고 작은 도시들에서 자갈과 모래를 채취해 파는 장사꾼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언급했습니다. 보통 직경이 10센치 이하인 자갈 1입방의 가격은 중국 인민폐로 5위안, 직경 5센치 이하는 7위안이라고 합니다.
모래는 굵고 흙성분이 얼마나 섞였는가에 따라 1입방 당 10위안까지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사법기관들과 결탁된 '돈주'들의 불법적인 건설업이 기승을 부리며 이젠 자갈이나 모래 값까지 마냥 뛰어오르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 함경북도의 경우 지난해 노동당 창건 70돌 기념건축 건설을 한다며 매 가정세대 당 보통 한 달에 1입방 정도의 건설용 자갈과 모래를 거두어 들였다고 최근 자유아시아방송과 연계가 닿은 현지의 한 소식통이 언급했습니다.
도시에는 자갈이나 모래를 채취할 곳이 없어 "이젠 '돌'마저 귀한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됐다"고 소식통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ㄹ'자 받침이 들어간 또 다른 문제는 '널'이라고 하는데 '널'은 '판자'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산림이 황폐화 되어 목재를 구하기 어려운 북한에서 '널'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소식통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중국에서 북한으로 유입되는 건설자재들속에 '판자'가 늘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PROMO) 여러분께서는 지금 RFA,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전해드리는 '북한은 오늘'을 듣고 계십니다.
북한에서 건설용 자재로 쓰일만한 '널'은 너비 20센치, 길이 4미터를 기준으로 한 장에 15위안이라고 양강도의 한 소식통은 전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노동당 창건 70돌과 '11월 위생월간'이라는 구실로 거리와 마을의 울타리 보수 공사를 주민들에게 강요했습니다.
양강도 위연지구 강안동 주민들은 가정세대별로 판자를 구하기가 어려워 인민반에 중국인민폐 40위안씩 바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인민반들에서 값이 제일 저렴한 중국산 잎깔나무 '판자'를 사들여 마을 울타리 보수를 했다고 하고요.
다가오는 5월 노동당 7차대회를 앞두고 있는데다 특히 3월과 4월은 북한에서 '봄철 위생월간'입니다. 벌써부터 봄철을 준비하며 울타리 보수를 걱정하는 주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는 게 양강도의 소식통의 이야기입니다.
김정일 시대부터 북한의 인민들은 "'ㄹ'자 받침이 들어간 건 말썽이 아닌 것이 없다" 이런 우스갯말로 당국을 비난해왔습니다. 수도 물이 안 나와서 '물' 걱정, 가뭄이 들어 '물' 걱정, '물'은 항산 북한 주민들의 걱정거리라는 것인데요.
전기가 안와 '불' 걱정, 땔감이 없어 '불' 걱정, 자동차를 움직일 연료조차 없어 '불' 걱정하는 게 북한 주민들의 삶이라고 합니다. '쌀'이 없어 '고난의 행군'을 겪은 북한의 인민들은 '쌀'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소박한 꿈이라고 하고요.
건설자재가 없으면 애초 건설을 시작하지 말아야 하는 게 당연한데 가뜩이나 동원에 지치고 사회적 부담에 짓눌린 주민들에게 강제로 건설용 자갈과 모래까지 거두면서 이젠 '돌' 걱정까지 하는 세상이 됐다고 소식통들은 푸념했습니다.
산에 나무도 없는데 '널판지'를 자꾸 바치라고 해 '널' 걱정까지 해야 하는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가혹한 '거두기' 정책을 비난하며 "'ㄹ'자 받침이 들어 간 '5대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인민생활 향상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전언입니다.
'북한은 오늘' 여기서 마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많은 청취를 기대하며 지금까지 RFA, 자유아시아방송 문성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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