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분석해보는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국무위원회와 인민무력성'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중국 베이징대학의 한 교수는 얼마 전 연수 차 중국을 방문한 남한기자단을 대상으로 한반도 지정학에 관한 특강을 했습니다. '북중관계의 현황과 한반도'를 주제로 한 강의에서 이 교수는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 등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특히 이 교수는 "북한이 중국과 등을 돌리고 미국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는 쉽게 믿기지 않는 발언을 했습니다. 남한기자들은 이 발언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어 정법대의 한 교수가 북중관계는 더는 혈맹관계가 아니라 이미 10여년 전 선린우호 관계로 격하됐으며 북한의 미사일이 중국 대도시를 겨냥하고 있다고 '도발적' 주장을 하자 기자들이 수군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남한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이 교수의 권고도 기자들에겐 독특하게 와 닿았다고 합니다.
중국 명문대학의 두 교수의 강연 내용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도 높게 이행되고 있는 현실과 너무 다르다는 지적입니다. 대북제재로 북한이 미국과 남한에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 요즘, 북한이 미국과 손을 잡는다거나 남한이 북한에 손을 내미는 일은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있을 법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나 북한의 작금의 행태도 이례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예상치 못한 '깜짝 쇼'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최고인민회의에서 최고국가기관인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대체했습니다. 나랏일을 총괄한다는 의미로 중국의 국무원, 남한의 국무회의를 닮았습니다.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미국의 국무부와도 이름이 유사합니다.
국무위원장이 된 김정은이 외교 핵심인사인 리수용 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리영호 외무상을 국무위원회에 넣은 것은 대외관계에 무게와 관심을 두겠다는 점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북한이 위협과 도발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선회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표면적으로라도 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겁니다.
북한은 또 최고인민회의에서 '선군정치'의 상징인 인민무력부의 수장 박영식을 인민무력부장 대신 인민무력상으로 호칭해 충격파를 던졌습니다. 인민무력부가 인민무력성으로 변해 내각 산하로 들어가는지에 대한 확인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북한에서 '성'은 '부'보다 하위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보위부, 인민보안부와 함께 세 축을 이루며 북한의 안위를 담당해 온 인민무력부가 인민무력성으로 내려앉은 것은 120만 인민군대뿐 아니라 국제사회를 어리둥절케 합니다.
그 동기에 대해 전문가들도 설왕설래합니다. 군부 길들이기 차원에서의 조치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군부의 잠재적 반발의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김정은의 의중에서 비롯됐다는 겁니다. 하지만, 김정은이 집권 이후 인민무력부 부장을 6번이나 갈아치웠는데, 이제 와서 군부가 겁나 인민무력성으로 개명할 이유가 없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선군의 색깔을 빼면서 국제사회에 유화 손짓을 하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군복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대체한 것과 인민무력부를 인민무력성으로 개명한 것을 같은 맥락으로 보는 겁니다. 북한이 선군, 무력, 도발 등의 이미지를 서서히 벗고 '정상 국가'로 탈바꿈하려 한다는 신호를 국제사회에 보내는 것이란 '우호적인' 견해도 나옵니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현실화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지적입니다. 미국과 남한 정부는 당분간 유엔 대북제재와 독자 제재 이행을 완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과 관련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 상황변화는 기대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앞서 언급된 베이징대 교수의 주장처럼 북한이 미국과 손잡는 날이 오려면, 정법대 교수의 제안대로 남한이 먼저 손을 내밀려면, 그럴만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게 미국과 한국 정부 측 입장입니다. 북한이 국방위원회를 해체한 것처럼 핵을 포기하고, 인민무력부를 개명한 것처럼 미사일 개발을 경제개발로 대체하면 그 여건이 형성된다는 겁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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