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 시간입니다. 오늘은 ‘군량미 헌납운동’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 혹독한 경제난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다른 나라들에 진 부채를 갚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제금융 체계를 감독하는 국제통화기금에서 수백억 달러를 빌리는 조건으로 엄청난 내핍을 감내했습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했고 하루아침에 소중한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린 직장인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서민들의 생활은 팍팍해졌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은 좌절하지 않고 나랏빚을 갚아 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아기 돌 반지, 결혼반지 등 자신이 소유하던 금을 나라에 기부했습니다. 온 나라에 불어닥친 경제난을 이겨내기 위한 일념에서 온 국민이 동참했습니다. 국민의 희생으로 한국 경제는 기사회생했고 국제통화기금에 진 빚도 모두 갚았습니다. 한국의 경제극복은 유사한 경제상황에 처한 다른 나라들에 모범 사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에서 곡물 모으기 운동이 한창입니다. 나랏빚을 갚기 위해서도 아니고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군대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주민에게 군량미를 십시일반 내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물론 겉으로는 강제성을 띠지 않습니다. 군량미 헌납 운동에 자발적으로 양심적으로 참여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실제로는 중앙당에서 각 공장, 기업소, 인민반들에 지시문이 내려갔고 조직별로 군량미 헌납량을 집계한다고 하니 실적이 저조할 때 닥칠 결과를 고려하면 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군량미 헌납운동으로 장마당에서는 벌써 쌀과 옥수수 가격이 오르고 있습니다. 먹고살기 어려운데 군대에 곡물을 갖다바쳐야 하고 장마당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뛰니, 이 추운 겨울에 주민의 어깨는 더 움츠러듭니다.
북한의 식량사정은 이제는 뉴스거리가 아닙니다. 열악한 상황이 이미 국제사회에 속속들이 알려졌고 시간이 지나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세도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김 위원장이 최근 함경북도 회령시의 음식점 거리를 방문해 종업원들을 격려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떠난 뒤 음식점들은 음식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업소마다 평균 하루에 10명분 정도만 공급할 따름입니다. 음식점의 식량 수급사정이 이럴진대 일반 주민의 사정은 어떻겠습니까?
먹고사는 게 막막하니 새해 벽두부터 생계형 범죄마저 잇달아 발생해 민심은 더더욱 흉흉해지고 있습니다. 양강도에선 도 인민위원회 앞 도로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함경북도에선 산림감독원 3명이 피살됐습니다. 도둑들이 밤에 남의 집을 터는 일도 잦습니다. 새해 특별경비기간인데도 범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정권은 믿을 건 군대밖에 없는지 군량미 헌납운동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식량이 부족하고 경제가 어려우면 장마당을 활성화하고 주민의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하는데 군대만 애지중지하고 있습니다.
집단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43만여 명의 돌격대에 군복을 입히고 매달 4일씩 훈련을 시켜 정규군 체제로 개편했다고 대북소식통들은 전했습니다. 또한, 수백만 명에 이르는 노농적위대를 노농적위군으로 전환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를 후계자 김정은의 권력장악 포석이라고 분석합니다.
주민이 경제활동에 전념하도록 해도 경제난, 식량난을 헤쳐나오기 어려울 텐데 주민을 군조직으로 편입해 군사훈련을 시키고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군량미까지 바치라고 합니다. 마른 수건을 비틀어 물을 짜내려는 모양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북한정권에 문호를 개방하고 경제를 발전시켜 더불어 잘 살아보자고 간곡히 권유하는데도 김 위원장은 병정놀이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