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보복성전’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전쟁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전쟁사를 훑어보면 종교적인 이유로 전쟁이 일어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전쟁은 성스러운 전쟁, 즉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집니다. 당사자들은 세속적인 야욕이 아니라 신의 계시와 하늘의 뜻에 따른 것이라며 무기를 듭니다. 성전에서는 현실의 행동이 초월적인 종교이념으로 포장됩니다.
1562년부터 1598년까지 36년간 지속한 프랑스의 위그노전쟁은 성전으로 분류됩니다. 프랑스의 개신교 신자인 위그노교도들은 저자를 알 수 없는 소책자 ‘독재에 반한 주장’을 탐독하면서 이론적 무장을 했습니다. 이들은 아무리 왕이라도 신의 뜻을 어기고 백성을 탄압하면 더는 권자에 앉아있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성전은 위그노교도들이 자신들에 종교적 관용을 베풀지 않은 왕에 도전한 전쟁입니다.
중고등학교 역사 시험에 단골로 등장하는 ‘30년 전쟁’도 성전입니다. 1618년 보헤미아와 오스트리아의 신교도 귀족들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자리에 오르게 될 보헤미아 왕 페르디난드 2세가 가톨릭의 절대성을 강요한 데 반발해 봉기했습니다. 성전이 순수하게 종교적 이유만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가 핵심적인 명분을 제공한 점은 사실입니다.
잠잠할 날 없는 중동지역의 분쟁도 그 뿌리는 종교에 닿아 있습니다. 유대교도와 회교도 간의 싸움은 서로 다른 자신들만의 경전에서 명분을 찾습니다. 유대인들은 신이 내려준 ‘약속의 땅’을 지켜야 한다며 결사항전의 태세에 털끝만큼의 흐트러짐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반면, 회교도들은 유대인들이 중동지역에 존재하는 것이 신의 뜻에 어긋난다며 핏대를 올립니다. 이처럼 성전은 확고한 종교적 신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성전과 달리, 한쪽의 무력도발에 대한 다른 쪽의 보복행위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1982년 아르헨티나에서 가까운 대서양의 섬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한바탕 무력충돌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레오폴드 갈티에리 군사독재정권이 영국인들이 둥지를 튼 포클랜드를 침공했습니다. 당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즉각 보복공격을 감행해 포클랜드섬을 탈환했습니다.
2008년 러시아와 그루지야도 짧았지만, 보복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루지야는 자국 내 남오세티야에 사는 러시아계 분리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루지야는 이들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습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에 사는 러시아계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루지야에 대해 보복에 나섰습니다.
그루지야는 러시아와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으나 육해공군을 총동원한 러시아의 전방위 압박에 견딜 수 없었습니다. 결국, 프랑스의 중재로 분쟁 발발 후 약 10일 만에 사태가 종결됐습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분쟁은 보복이 꼬리를 물고 물며 전쟁으로 발전한 사례입니다.
‘이에는 이’로 맞서는 보복전쟁과 성스러운 종교전쟁인 성전이 ‘보복성전’이라는 기묘한 접합을 시도했습니다. 이 같은 기발한 발상은 북한에서 나왔습니다. 북한은 1월 15일 국방위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남조선 당국자의 본거지를 날려보내기 위한 거족적 보복성전이 개시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남한정부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재정비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이를 체제전복계획이라며 보복성전 운운한 것입니다.
이번 성명 발표는 국방위가 1998년 북한의 최고권력기관이 되고나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또 이번 성명은 북한이 지난해 10월 옥수수 1만 톤을 지원하겠다고 한 남한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금강산과 개성 관광을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한 직후에 나와 남한과 서방세계를 당혹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보복성전’ 발표 이틀 뒤인 17일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육해공군 합동훈련을 하면서 대대적인 무력시위를 벌였습니다. 3군이 동시에 화력연습을 하는 것을 언론에 공개하고 김 위원장이 직접 현장에 나타난 것도 이례적입니다. 북한이 문제 삼은 남한의 비상계획은 북한의 정정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때를 대비한 한반도 평화구상입니다. 남한이 북한에 무력행동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보복할 행동이나 대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굳이 보복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합니다.
아울러 성전이란 표현도 그렇습니다. 남북한이 무슨 종교적 갈등이나 분쟁으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한다는 말입니까. 주체사상을 종교적 교리처럼 굳게 믿는 북한이 이를 믿지 않는 남한을 이단으로 간주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이 성전을 말하는 것은 김일성, 김정일 사상을 신앙으로 격상시킨 체제모순에서 비롯된 자가당착의 단면일 뿐입니다.
북한은 단순히 보복전쟁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 북한은 그저 성전에 임하겠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느 하나도 한반도 현실에 바람직하지 않은 호전적 구호인데, 북한은 섬뜩한 두 가지 전쟁을 합친 ‘보복성전’을 입에 담고 있습니다. 북한의 맹방인 중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뒤엉킨 북핵문제를 대화로 풀고 평화의 싹을 키워가자고 간절히 바라는데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