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정치범수용소’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2006년 북한 함경남도의 요덕 정치범수용소의 참상을 묘사해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뮤지컬 ‘요덕 스토리’가 최근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는 각계각층으로부터 ‘꼭 관람해야 할 작품’으로 꼽힌 이 뮤지컬이 2월9일 한국공연을 시작으로 세계순회 공연에 나서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번에 요덕스토리가 집중조명을 받는 것은 뮤지컬에 등장하는 배우의 세련된 연기가 아니라, 실제 요덕 수용소에서 참담한 생활을 한 탈북자들의 거칠지만 진솔한 증언입니다. 며칠 전 기자회견에서 이들이 밝힌 정치범 수용소 생활의 진상은 입에 담기 어렵고 머리에 남기기도 끔찍하다는 반응을 자아냈습니다.
한 탈북자는 “요덕수용소에서는 소똥에 박힌 강냉이도 먹는다”고 했습니다. 수용소에서 죽어나가는 사람 10명 중 8명이 영양실조라고 합니다. 8할이 생사의 갈림길에 처할 정도의 심각한 영양실조라면 수용소에는 먹을 게 거의 없다는 얘깁니다.
‘소똥 강냉이’도 음식으로 삼을 만큼 열악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참다못해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은 공개처형됩니다. 탈북자의 증언은 정치범수용소가 인권 사각지대의 본보기임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다른 탈북자는 억울한 간첩 누명을 쓰고 요덕에 끌려갔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장사하면서 남한사람과 접촉한 게 그 이유였습니다. 탈북자의 결백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결국 요덕수용소에서 3년간 지냈습니다. 그는 지금 한국에서 보람되게 살고 있지만 잠이 들면 당시의 암흑생활이 악몽으로 되살아난다며 치를 떨었습니다.
폭력, 굶주림, 처형의 공포가 드리운 요덕수용소는 정치범수용소 가운데 ‘혁명화 구역’으로 분류됩니다. 남한의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와 북한민주화운동본부는 서울에서 가진 공동회견에서 현재 요덕수용소에 254명이 갇혀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간첩행위, 반체제행위, 국가기밀누설’의 죄목으로 정치범이 된 사람이 60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리고 ‘당 권위훼손, 반정부음모죄’가 47명 ‘연좌제’ 29명 ‘말 반동, 체제 비난죄’ 25명 등으로 나뉩니다.
죄목은 거창하지만, 실제 정치범으로 몰린 사람 가운데는 “김일성 목에 혹이 있다”고 해서 끌려간 사례도 있습니다. 이처럼 정확한 말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또 남한방송을 본 사람도 가차없이 당합니다. 김정일의 사생활을 잘 아는 사람도 위험합니다. 게다가 부모가 정치범으로 낙인찍히면 자녀도 영락없이 그 족쇄를 물려받습니다. 구시대의 유물인 연좌제가 북한에 버젓이 적용되고 있는 겁니다.
그래도 요덕수용소는 힘들어도 버티면 살아나올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걸어나올 수 없는 정치범수용소가 있습니다. 이는 ‘완전통제구역’으로 불리는 종신수용소입니다. 남한이나 미국에서 극악무도한 반인륜 범죄를 저질러 종신형에 처한 경우와 같습니다.
평안남도 개천 14호 수용소, 함경북도 화성 16호 수용소, 평안남도 북창 18호 수용소, 함경북도 회령 22호 수용소, 함경북도 청진 25호 수용소 등은 ‘들어가는 문’은 있지만 ‘나오는 문’은 없는 정치범수용소입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는 많게는 5만여 명, 적게는 5천여 명이 희망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두 약 20만 명이 가족과 떨어져 창살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한의 정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수용소 수감자와 관리자 또 일반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탈북을 시도하다 적발됐거나 김정일의 사진을 걸어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절차도 없이 하루아침에 정치범이 돼버린 주민들도 있습니다.
물론 정치범이 북한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넬슨 만델라는 젊었을 때 줄곧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에 대항하다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었습니다. 26년 만에 출소한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남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 구사일생으로 풀려났습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에 당선된 김 전 대통령도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비정부 인권기구인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지금도 북한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 약 70명의 정치범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합니다. 애매하게 정치범의 굴레를 쓰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을 겁니다. 이들 가운데 20년이 넘게 교도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쿠바에는 30년 가까이 수감돼 있는 정치범도 있습니다.
정치범은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 도덕적 가치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반역죄, 내란죄가 정치범의 전형입니다. 그러나 많은 북한주민이 정치범의 범주에 들지 않는데도 정치범수용소에서 짐승 취급당하면서 연명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조사결과를 영문으로 번역해 유엔 등 국제기구에 배포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유도할 계획이지만, 과연 북한정권이 뜨끔해할 지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