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체제균열 불감증’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지붕이 부실한데도 수리를 제때 하지 않으면 비가 올 때 천장에서 방바닥으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그러다 어느 날 폭우가 쏟아지면 지붕의 작은 균열이 더 커져 방 안이 온통 ‘물바다’가 되고 식구들은 모두 집을 버리고 피난 가야 합니다.
지붕에 균열이 생기면 바로 그 집의 문제지만, 정권과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 나라 전체가 흔들립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바로 이러한 균열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이를 고의로 모르는 척하는지, 아니면 사태를 전혀 읽지 못하는지 위험수위는 자꾸 높아만 갑니다. 북한의 고질적인 식량난 하나만 놓고 보아도 북한당국의 ‘균열 불감증’은 또렷이 드러납니다.
북한 주민은 하루하루 연명하는 게 버겁습니다. 온종일 힘들여 일해도 고깃국에 이밥은 고사하고 하루 세끼 챙겨 먹기도 힘듭니다. 배급을 넉넉히 주거나 장마당에서 쌀을 값싸게 사 먹을 수 있게 해주면 좋으련만 현실은 어디 그렇습니까? 배급은 신통치 않고 장마당에서 사 먹기엔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설상가상, 북한 정권의 호전적인 행동으로 국제사회도 아낌없는 지원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북한주민의 딱한 사정을 생각해 통 큰 지원을 계획했다가도 평화를 깨는 북한 정권의 도발에 다시 주머니를 닫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참다못한 일부 북한주민은 돈이 되는 전력설비와 전기선을 무차별적으로 훔쳐 내다 팔고 있다고 합니다. 대북소식통들에 따르면 양강도 삼수군에서는 6만KW의 고압송전선 수백 미터가 잘렸다고 하는데요. 이 일로 혜산청년광산과 인근 공장기업소가 정전사태로 한동안 가동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혜산청년광산이 북한 최대의 구리생산 기지란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절도사건으로 피해가 막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 당국이 범인을 극형에 처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지만, 더는 물러설 데가 없는 주민에게 과연 얼마나 약발이 듣겠습니까?
식량난은 먹을 게 없는 가난한 서민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먹고살 만한 간부급에게도 식량난은 중요합니다. 이들에겐 돈을 벌 기회가 되기 때문이지요. 최근 북한당국이 주민에게 군량미를 강제징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자발적인 헌납이라고 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강제징수로 선회했습니다. 군인들에게 휴가를 줘 집에 가서 곡물을 가져오라는 촌극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박박 긁어모은 곡물 중 일부가 군관들에 의해 착복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군량미를 빼돌려 장마당에 팔고 있답니다. 이들 군관은 비리를 덮기 위해 보위부나 보위사령부에도 뇌물을 주고 있습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종의 보험을 드는 것이지요. 이처럼 힘깨나 쓰는 사람들의 짜고 치는 불법행위에 힘없는 주민은 울분을 삭일 뿐입니다.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상태에 있는 쌀은 많습니다. 북한정부가 국제사회의 진정한 일원이 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쌀이 북한주민의 주린 배를 채워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동도 하지 않고, 구태의연하게 고립정책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배고프다는 주민의 탄식은 김정일 위원장의 귀엔 들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며칠 전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동일한 털모자를 쓴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모습을 자랑하듯 내보냈습니다. 이 털모자는 최상급 수탈피를 이용해 외국의 장인이 특수제작한 최고급 제품입니다. 털모자를 쓴 채 환하게 미소 짓는 김부자는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만의 행복입니다.
한편, 북한처럼 부자세습을 시도하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집트 국민이 개혁을 부르짖으며 약 30년간 집권해 온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불십년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반드시 그 끝이 있다는 뜻입니다. 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권력도 예외일 순 없습니다. 이집트 사태는 김 위원장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