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중동 독재자들과 김정일’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군대생활을 오래 하신 북한 청취자들께서는 익히 아는 사항입니다. 전투 훈련에서 돌진을 가로막는 철조망을 통과하는 방법은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절단하는 것이고, 둘째는 폭파하는 것이지요. 철조망을 절단하거나 폭파하는 것은 장애물을 깨끗하게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비단 현장에 있는 부대원들뿐 아니라 뒤이어 달려오는 부대원들의 길을 터주게 됩니다.
세 번째로는 철조망 위에 옷가지를 깔고 그 위를 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철조망이 높을 땐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네 번째는 철조망을 우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철조망이 길게 처져 우회로를 찾기 어려우면 작전 수행이 지체됩니다. 마지막으로 철조망 밑의 땅을 파고 두더지처럼 빠져나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도 역시 돌진을 매우 더디게 합니다. 이렇게 장애물을 극복하는 다섯 가지 방법 가운데 부대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책을 선택하는 것은 부대장의 몫입니다. 부대장의 결정이 작전의 성패를 가릅니다.
장애물 극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도 코앞에 닥친 사안입니다. 60여 년 간 지속돼 온 김씨 일가의 독재로 북한 권력층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과 불신의 철조망은 너무 높고 길며 땅속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옷가지로 덮어 넘거나, 우회하거나, 땅을 파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2천400만 명의 북한 주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김 위원장은 요즘 중동의 민주화 바람으로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설 겁니다. 중동 민주화 바람의 뿌리는 오랜 독재정권이 남긴 반인륜적인 현실에 닿아 있습니다. 이 점에서 북한은 중동국가들과 쌍둥이처럼 닮은꼴입니다. 성난 민심에 버티기나 미봉책으로 나선 중동의 독재자들은 차례대로 종말을 맞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북한 주민의 억눌린 분노를 자극할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북한당국은 간부들에게만 회람 되는 ‘참고신문’을 통해 중동 사태를 일부 알리고 쉬쉬했지만, 주민은 귀동냥으로 중동 민주화 시위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중동의 민주화 시위 소식이 전해질까 봐 얼마 전에 개통된 국경지역의 휴대전화 통신을 다시금 차단했다고 하는데요. 이것도 모자라 대학의 기숙사에 파견된 감시인력을 늘려 대학생들이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지 염탐하고 있습니다. 대학마다 한명씩 배치하던 것을 네 명씩으로 증원했다고 하니 무척 놀란 모양입니다.
소문이 빠른 장마당에 배치된 보안원과 경무관들도 주민의 동태를 살피느라 분주합니다. 이들은 주민의 반발을 우려해 상행위를 원천봉쇄하지는 않지만, 한시도 감시의 눈길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라는 옛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막아도 중동 민주화 시위 소식은 점점 더 북한 주민 사이에 퍼질 겁니다.
북한 당국이 최근 일선 군부대의 총탄을 회수해 대대 탄약창고에 넣어두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군인들의 반발을 우려한 사전조치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한편, 김 위원장은 폭동 진압용으로 평양에 있는 자신의 호위부대에 탱크 수십여대를 숨기고 있다고 합니다. 리비아의 무하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수도 트리폴리에 자신의 호위부대를 중무장해 포진시킨 것과 흡사합니다. 북한 주민이든 군대든 김정일 정권에 대항하는 어떠한 움직임도 초기에 강경하게 진압하겠다는 의도입니다.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삼은 김 위원장이 직면한 장애물은 장기독재 탓에 피폐해진 민생입니다. 이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가깝게는 강성대국 실현에 관건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북한 사회 전반에 오랜 세월 누적된 독재의 결과물은 슬쩍 덮거나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옹고집으로 독재를 지속하느냐, 개방과 개혁으로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느냐의 선택에 북한의 앞날이 달렸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