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해적 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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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해적 인질’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세 살배기 아이를 포함해 5명의 프랑스 사람들이 탄 작은 배가 2009년 4월 4일 아프리카 케냐로 향하던 중 소말리아 북동부의 바다에서 해적에 납치됐습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해적과 벌인 인질석방 협상이 결렬되자 자국민을 구하려고 군사작전을 지시했습니다.

프랑스 군함 3척, 해병대 20여 명이 인질극 현장으로 출동했습니다. 프랑스 해군은 해적 2명을 사살하고 3명을 체포했습니다. 해적에 잡혀 있던 프랑스인 1명은 구출작전 중에 숨졌으나 그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친구는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자국민의 안위를 위협한 해적에 강력하게 대응한 결과입니다.

이 인질들은 나랏일이 아니라 여행을 즐기던 사람들입니다. 왜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마다하고 해적들이 우글대는 ‘위험지대’에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놀러갔느냐고 비난할 법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이유를 불문하고 위험에 처한 자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무에 충실했습니다.

여행이 아니라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배를 탔다가 해적에 끌려간 인질에게는 어떠한 비판도 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는 두말할 필요 없이 즉각 인질구출에 나서야 합니다. 미국의 대형 화물선 ‘머스크 앨라배마호’가 2009년 4월 7일 해적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선장 리처드 필립스 씨는 해적에게 인질을 자처하며 다른 승무원들을 풀어주도록 했습니다.

억류 5일째 되는 날 미국 해군은 혼자 인질이 된 선장 필립스 씨의 구출작전에 돌입했습니다. 결국, 미국 해군은 해적 3명을 사살하고 1명을 체포했습니다. 이날 군사작전은 빌 고트니 해군 5함대 사령관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집행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사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인질로 잡힌 자국민의 고통을 잊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 존립의 근거이며 아름다운 일입니다. 자국민이 아니라 남의 나라 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지난해 5월 남한의 청해부대 소속 문무대왕함이 해적 출몰이 잦은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을 항해하는 남한 선박들을 호송하던 중 인근 해역을 지나던 북한 선박 ‘다박솔호’로부터 다급한 구조 요청을 받았습니다. 청해부대는 5분 만에 헬기를 출동시켜 해적을 쫓아버렸습니다. 북한 선원들은 남한의 청해부대원들에게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북한 선원들이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16일 북한 국기를 달고 소말리아 인근 바다를 항해하다 해적에 납치된 상선 ‘테레사 8호’에는 북한 선원 28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금껏 100일이 넘도록 인질로 잡혀 있습니다. 지난 2월 3일 납치된 선박 ‘림 호’의 북한 선원 10명도 감감무소식입니다. 영국에 있는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의 북한대표부는 북한 선원의 안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소말리아 인근 해역은 해적의 안방과도 같아 몸값을 노린 납치사건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리고 해적과 하는 협상은 통상 지지부진합니다. 한국은 2006년과 2007년 ‘동원호’와 ‘마부노 1,2호’가 납치돼 각각 117일과 174일 만에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인질 구출이 그만큼 힘든 일임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남한을 포함한 각국 정부는 자국민이 해적에 잡혀가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구출 노력을 폅니다. 대화로 해결할 수 있으면 끊임없이 협상을 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인질을 구하려 합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인질 문제를 쉬쉬하는 듯합니다. 가시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국제사회에 이렇다 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습니다. 인질로 잡히면 알아서 자력으로 빠져나오라는 게 북한식 위기대처법인가 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질과 그 가족들은 하루를 일 년처럼 길게 느낄 텐데 말입니다.

북한 선원들은 뱃놀이 가다 변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또 단순히 가족의 생계만을 책임진 사람들도 아닙니다. 이들은 북한에 귀한 달러를 벌어들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선원들을 마치 소 닭 보듯 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하늘’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인질로 잡혀 있는 선원들을 구하기 위해 한마디 한다면 해적이 휘두르는 총칼의 위협에 목숨이 경각에 달린 선원과 그 가족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겁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입은 돌처럼 단단하게 닫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