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일본지진에 무덤덤한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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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일본 지진에 무덤덤한 북한’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한 다음 날인 3월 12일. 미국의 뉴스 전문 텔레비전 방송인 CNN이 흥미로운 세계지도를 화면에 선보였습니다. 천연색텔레비전에 비친 이 세계지도에는 나라들이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나뉘어 칠해져 있었습니다. 일본 지진피해자들을 돕는 구호사업에 동참하는 나라들은 노랑으로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검정으로 표시됐습니다. CNN 방송이 일본 지진 피해자를 돕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한눈에 들어오게끔 이렇게 구분한 것이지요.

아시아, 미주대륙, 유럽 등은 대부분 노란색이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은 거의 검정이었습니다. 동북아시아도 노랑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한 곳이 검은색이었습니다.

중국, 러시아, 그리고 한국이 노란색으로 돼 있는데 이들 세 나라에 둘러싸인 한반도 북쪽의 북한은 시꺼멓게 돼 있었습니다. 중국, 러시아의 거대한 영토와 대조가 되니 북한의 검정이 더욱 확연해졌습니다. 마치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꽃단장한 옷에 먹물이 튄 모양새였습니다. 작은 한반도에서 북쪽 절반이 검은색으로 돼 있는 지도에 같은 민족으로서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북한은 일본 지진피해자 구조에 동참하지 않기로 했나 봅니다. 한국에선 지금 지진피해자 돕기에 정부와 언론, 그리고 온 국민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때론 갈등 양상을 보이긴 하지만 대재앙에 신음하는 이웃 나라 국민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100여 명으로 구성된 구조대를 일본에 보냈습니다. 한국의 한 신문사에서 시작한 모금행사에는 첫날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지진피해자를 돕겠다면서 성금을 냈습니다. 이날 이 신문사에서만 13억4천만 원(미화 약 120만 달러)이 걷혔습니다.

미국은 서태평양에서 활동하고 있는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함을 지진 피해가 큰 센다이 앞바다에 파견해 구호를 돕고 있습니다. 미국은 또 구조대 144명과 구조견 12마리를 현지에 급파했습니다. 독일도 구조대와 구조견을 보냈습니다.

평소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만이 아닙니다. 최근 일본과 영유권 분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도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중국은 동중국해의 댜오위 섬(일본명 센카쿠열도)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일촉즉발의 대치국면까지 가기도 했지만 이번에 마치 형제국처럼 일본을 돕고 있지요. 구조대가 이미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피해복구를 위해 3천만 위안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일본 북부도서들을 놓고 영유권 마찰을 빚고 있는 러시아도 해묵은 앙금은 일단 제쳐놓고 일본을 돕고 있습니다. 전력난을 겪는 일본에 액화천연가스의 공급을 확대하기로 했으며 다른 나라와 계약된 10만 톤 규모 유조선 2대를 일본으로 긴급 전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외교적으로 미지근한 관계에 있는 나라들이 일본 돕기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일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수많은 사람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서입니다. 인륜이 정치보다 우선시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까닭입니다.

아프리카 나라들은 먼 곳에 있기도 하지만 가난해 제 앞가림하기도 버거우니 일본의 지진 피해자들을 돕는 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지 모릅니다. 물론 북한도 실상 남의 나라를 도울 형편이 아니겠지요. 설령 돕고 싶더라도 자국민이 배를 곯아 쓰러지는 판국이니 나라밖 딱한 사정에 내놓을 게 마땅치 않을 겁니다.

두 동강 난 한반도의 남쪽은 역경에 처한 이웃 나라를 돕자고 나서고 있지만, 북쪽은 관영매체를 통해 일본지진에 대해 간략하게 보도하는 선에서 그쳤습니다. 북한도 남한처럼 구호사업에 즉각 행동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본 지진은 국제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남한과 수십 년째 문을 굳게 닫고 사는 북한의 차이를 다시 한번 드러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