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자본주의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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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자본주의 따라하기’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500년 전 고대 인도 북부지역에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가 태어난 카필라 왕국이 있었습니다. 카필라 왕국은 외부의 다른 왕국들이 호시탐탐 자국을 침범하려 한다며 볼멘소리를 냈습니다.

하루는 당시 고명한 수도승이 명상 중에 이 왕국이 전쟁으로 무너져 내리는 환영을 보았습니다. 이 수도승은 도술을 부려 밥그릇에 왕국을 담아 지구 밖 천국에 옮겨놓았습니다. 이후 1주일 동안 모든 게 평화로웠습니다. 그래서 수도승이 왕국을 제자리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밥그릇 뚜껑을 열어보니 왕국은 온데간데없고 아수라장이 된 폐허만 남았습니다. 외부의 적 대신 자기들끼리 싸우다 붕괴한 것이었습니다. 내부의 문제로 왕국이 망한 것입니다.

이 전설에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나라의 흥망성쇠가 과연 어디에 달렸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 인간이 천하를 호령하려면 먼저 자신을 바로 닦아야 한다는 중국 공자의 가르침, 즉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이 있습니다. 전설에 나오는 인도 카필라 왕국의 폐망은 이 격언이 한 나라의 존립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나라가 바로 서야 튼튼하게 번창할 수 있음을 일러줍니다.

이 전설은 철옹성 안에서 버티기에 급급한 북한의 현실을 떠올립니다. 북한은 외부세계가 자국을 침범하려고 노린다며 핵개발, 무력도발 등 무리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작 북한의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점을 모르는 듯합니다. 북한정권은 지구촌 자유세계의 사상과 문화를 문둥병이나 흑사병처럼 징그럽고 무시무시한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특히 ‘자본주의’라는 말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북한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반응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이 감지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80년대 수중발레 무용을 보고 자본주의의 부자들이 자신들의 변태적인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든 퇴폐문화라고 혹평했었습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수중발레 무용공연을 본 뒤, 수영과 체조, 무용을 일체화한 종목이라고 극찬하면서 이를 적극 발전시킬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대단한 반전입니다. 또 북한은 자본주의의 생활문화의 단면인 애완견 사육을 놓고 개를 사람 취급하듯 한다며 꼬집었지만, 이젠 미화 100달러짜리 애완견이 거래되기도 합니다.

아울러, 자유세계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애용하는 청바지는 북한에서는 자본주의 상징으로 취급됩니다. 북한사회를 오염시킬지 모르므로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경원시하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스웨덴의 의류업체 ‘노코진스’가 북한에 진출해 북한노동자들이 만든 청바지를 유럽과 미국에 내다 팔고 있습니다. 북한은 주민들의 청바지 착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북한에서 청바지 생산을 허용한 것만 해도 주목할 일입니다.

이에 더해 북한은 최근 방문 외국인이나 주재원들의 편의를 위해 자본주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전자결제카드 체계를 도입했습니다. ‘나래’로 불리는 이 결제카드는 아직 신용카드 수준은 아니지만, 자국을 드나드는 외국인들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북한의 현실 인식에서 나왔습니다. 어쩔 수 없어 그런다고 해도, 북한이 자본주의의 생활방식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것은 긍정적인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미흡합니다. 자본주의를 따라 하려면 자본주의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배워야 합니다. 북한 경제대표단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한 대학연구소의 초청에 응해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북한 무역성, 농업성의 중간간부 등 12명으로 구성된 경제대표단은 3월27일부터 나흘간 뉴욕을 방문했습니다. 대표단은 자본주의의 심장부랄 수 있는 뉴욕에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자본주의 경제를 피부로 느꼈을 겁니다. 북한 대표단은 이번 방미 목적에 대해 “미국과 경제협조를 논의하고 그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북한 대표단이 자본주의 경제를 공부해 멈춰선 북한 경제를 되살리는 기폭제 역할을 할지 궁금해집니다. 초단기 방미일정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배우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북한경제가 잘못 가고 있다, 무언가 새로운 활력소가 절실하다, 자본주의처럼 개방 경제체제로 가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다면 방미의 수확이 작지 않습니다.

대표단이 보고 들은 것을 김 위원장에게 보고해 김 위원장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주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면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이밥에 고깃국 약속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아니, 아주 손쉬운 일입니다. 김 위원장이 북한의 문을 활짝 열기만 하면 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