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 시간입니다. 오늘은 ‘쇄국정책’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구촌을 하나로 엮는 세계화의 큰 흐름에 맞서 벌이는 ‘쇄국정책’이 점입가경입니다.
북한은 7월 6일 라디오 녹화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노동당 내부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민이 외국방문 후 귀국할 때 녹화기와 MP3 재생기의 반입을 금지하고 이미 보유하고 있는 녹화기에서도 조종기판을 교체하고 녹음기와 MP3는 라디오 기능을 제거하도록 했습니다.
“제국주의 사상문화가 침투할 수 있는 요소들을 흔적조차 없애버리겠다”는 게 노동당이 제시한 규제의 이유입니다. 이 지침에 따라 국가보위부, 인민보안부, 체신성 요원들이 전국에 파견돼 눈을 부라리고 있습니다.
이는 남한의 영화나 드라마, 음악을 많은 주민이 듣고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북한주민이 좋아하는 남한의 영화나 드라마는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보통사람들을 위한 작품입니다. 북한주민이 보아서는 안 되는 민감한 내용도 아닌데, 어린 청소년에게 성인물을 보지 못하게 하듯 합니다.
서로 벽을 허물고 배워야만 더 잘 살 수 있는 세계화 시대에, 북한은 남한의 작품을 흔적조차 남겨서는 안 될만한 대상으로 삼고 총구를 정조준했습니다. 남한의 자유롭고 역동적인 생활상이 북한주민사이에 파고들어 수십 년간 지속해 온 세뇌교육의 약발이 약해질까 우려했나 봅니다.
북한은 주민의 눈을 가리고 귀와 입도 막고 있습니다. 북한에 휴대전화 가입자가 12만 명을 넘었지만, 주민과 북한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통화는 원천봉쇄됐습니다. 통신망이 완전히 분리돼 같은 땅에 있으면서도 통화가 불가능합니다.
외국인이 북한주민과 통화하려면 북한인 안내원을 통해야만 합니다. 내부 소식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는 원시적인 정책 때문입니다. 북한정권은 북한에 있는 외국인과 주민의 소통을 활성화하는 게 사회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란 사실을 도외시한 채 집안단속에만 혈안이 돼 있습니다. 무슨 ‘구린 데’가 그리 많은지 무리한 정책을 거침없이 동원하고 있습니다.
외부세계와의 단절을 고집하는 북한의 ‘쇄국정책’은 전화기나 녹화기 등 전자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사람단속도 한몫합니다. 중국에 나가서 일하는 외화벌이 일꾼도 감시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비사회주의 요소를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일명 가라오케라고 불리는 노래방 술집 출입을 삼가도록 했습니다. 노래방에 남한 노래가 흘러넘친다는 사실을 안 북한당국의 궁색한 대응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남북한을 드나드는 중국 상인들에게도 삐딱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북한의 내부 사정을 남한에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북한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입니다.
중국 상인들은 북한에서 지정된 장소에만 머물러야 합니다. 이는 사업하는 사람들의 발을 묶는 조치입니다. 만일 상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행선지를 옮기기라고 하면 이들과 접촉한 주민을 색출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캐묻습니다. 이처럼 북한정권은 주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주민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약 140년 전인 1870년대 초 조선 시대 흥선 대원군이 외부세계의 침투를 염려해 삼천리 방방곡곡에 ‘척화비’를 세운 적이 있습니다. 비문에는 외부세력의 침입에 맞서 싸우지 않고 화평을 주장하는 자는 매국노라는 내용의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북한 정권도 유사한 단속 지침으로 주민을 옥죄고 있습니다. 이들 지침은 각국이 앞다퉈 교류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21세기에 등장한 시대착오적인 ‘북한식 척화비’를 떠올리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