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사상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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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 시간입니다. 오늘은 '사상비판'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구 소련 공산당서기장 흐루쇼프는 1956년 제20차 전당대회에서 전임 통치자였던 스탈린의 철권지배로 소련이 피폐해졌음을 낱낱이 고발했습니다. 스탈린은 이미 전당대회 3년 전 사망했지만 30년 넘게 소련을 쥐락펴락하던 그의 위상은 흐루쇼프의 사상비판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소련과 함께 공산주의의 양대 축을 이룬 중국의 공산당을 이끈 모택동(마오쩌둥)은 1940년대 3년간 정풍운동을 벌였습니다. 모택통은 이 정풍운동을 통해 소련식 교조주의자들의 사상을 비판하고 격하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집권자가 권력을 정당화하고 공고히 하는 데 애용한 사상비판이 최근 북한에서도 부상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2010 월드컵 축구대회에 참가한 북한대표팀이 그 목표물이 됐습니다.

북한대표팀은 귀국한 지 며칠 안 돼 평양 인민문화궁전 대회의실에 집합했습니다. 중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체육상, 그리고 체육성 산하 종목별 선수, 김일성종합대학 체육학부 학생 등 4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6시간 동안 비판의 화살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대표팀의 김정훈 감독과 선수들 개개인의 문제점이 날카롭게 지적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어 선수들이 감독의 결함을 들춰냈다고 합니다. 대표팀이 어떤 벌을 받았는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표팀의 거취가 주목되는 이유는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던 북한대표팀이 귀국 후 자본주의에 물들어 혁명화가 필요하다는 구실로 수용소에 끌려가거나 지방으로 추방된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대표팀은 44년 만에 이번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조별 경기에서 3연패 해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세계 최강 브라질과의 1차전에서 두 골을 내주고 한 골을 넣어 전 세계 축구 애호가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또한, 북한팀이 정정당당하고 깨끗한 경기를 했다는 게 보는 이들의 공통된 관전평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투철한 정신력으로 무장해 최선을 다하고 돌아온 대표팀을 마치 나라에 해를 끼친 정치인을 격하하듯 사상비판 했다는 것입니다. 골동품 상점에서도 반기지 않을 주체사상의 벽에 둘러싸여 바깥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니 알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북한이 대표팀에 가시돋힌 사상비판을 가했다지만, 국제사회는 북한축구팀을 지속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국제축구연맹은 지난 10년간 축구관련 시설 개보수를 위해 북한에 약 155만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이 돈으로 축구대표팀 합숙소, 북한축구협회건물을 세웠고 김일성경기장 인조잔디 공사와 함께 평양과 소산 청소년 합숙건물도 말끔히 보수했습니다.

또 국제축구연맹은 이번 대회부터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가 속한 구단에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해 북한에 80만 달러 이상의 지원금을 건넸습니다. 북한엔 아주 큰 돈입니다. 북한축구팀과 4년간 후원계약을 체결한 이탈리아 스포츠용품 회사 LEGEA는 홍보 효과를 쏠쏠히 보고 있습니다. 북한대표팀에 대한 세계 축구 애호가들의 호응 덕입니다.

북한대표팀에 대한 사상비판은 밖에서 박수받고 집에 온 아들을 매질하는 격입니다.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하면 이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삼남 김정은의 공으로 돌리려던 계획이 틀어져 그랬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권력승계가 탈 없이 착착 진행되는 데 국가 대소사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하지만, 북한축구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데는 김 위원장의 간섭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북한대표팀 김정훈 감독은 브라질과 경기 후 미국의 운동전문 언론사인 ESPN과 회견에서 김 위원장으로부터 작전에 관한 조언을 손전화(핸드폰)로 직접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패장은 김 위원장이며 패인은 손전화로 하달된 김 위원장의 어설픈 작전입니다.

북한대표팀에 대한 사상비판은 끝났습니다. 이젠 김 위원장에 대한 사상비판 순서입니다. 언제 어디서 할지 일정이 잡혀 있지는 않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