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아리랑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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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 시간입니다. 오늘은 '아리랑 동원'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공연은 재미있어야 구경하러 갈 맘이 생깁니다. 그리고 공연의 감동은 처음 보았을 때는 강하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해 보면 약해집니다. 공연은 관람료가 구경할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아야 호응을 얻습니다. 이처럼 공연은 재미, 신선도, 입장료 등 세 가지 요소가 잘 버무려져야 인기를 끌게 됩니다.

요즘 북한 전국의 사업장들에 '아리랑 공연을 관람할 희망자를 모집한다'는 안내문이 나붙었습니다. 그런데 이 안내문을 보는 노동자 대다수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공연이 처음 마련되고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면 공연장은 발디딜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룰 겁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북한에서 처음 무료공연을 한다면 그럴 겁니다.

재미있는 공연이 무료라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도 구경합니다. 물론 처음 볼 때보다 감동은 덜 하겠지만, 명작은 볼 때마다 새로운 감흥을 줍니다. 연극 '춘향전'과 같이 한국인의 정서에 와 닿는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로 재편돼 방송될 때 연극을 보고도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다시 보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작품이 재미 있으면 관람료를 내고라도 또다시 볼 수 있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관람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배우의 산실인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에 있는 극장가는 뮤지컬 '라이언 킹'을 몇 년째 계속 공연하는데도 매표소에는 줄이 끊이질 않습니다. 매번 약 50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서너 번을 보았다는 관람객들의 말이 이 공연의 인기를 실감하게 합니다.

공연이 재미 없으면서 반복 공연한다면 관심을 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관람객들에게 돈을 받는 대신 한 사람당 얼마씩 돈을 지급한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특별히 할 일이 없거나 용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공연 자체보다는 돈 버는 맛에 공연장을 메울 겁니다. 공연 제작사가 작품 홍보를 위해 일당을 지급하면서 관람객을 동원하는 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미없는 공연이 지칠 줄 모르고 해를 거듭해 열리면서 비싼 입장료까지 받는다면 누가 그 공연장에 가겠습니까? 연기자들만의 외로운 무대가 될 겁니다.

그런데 10만 명이 들어가는 평양 5.1경기장에서 연례행사로 하는 아리랑공연은 내용이 '그 나물에 그 밥'인데도 입추에 여지없이 공연장이 가득 찹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우상화에 초점을 맞춘 아리랑 공연은 2002년 처음 시작돼 올해 6번째입니다. 관람료는 좌석에 따라 다르지만, 평양을 방문하는 여행경비까지 합치면 일반 노동자의 한 달 노임보다 많습니다. 그러니 재탕, 삼탕으로 이어진 이 공연에 북한 주민이 구경하러 갈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북한은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을 채우려고 주민에게 관람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리랑 공연이 북한을 처음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겐 신기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아리랑 공연은 약 10만 명이 동원되는 공연이란 점에서 2005년 진기록을 적는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진기록의 이면에는 북한주민의 고통과 불만이 가득 깔려 있습니다.

북한은 아리랑 공연의 관람 희망자가 부족하면 각 사업소에 압력을 가해 할당된 수를 맞추도록 합니다. 사업소 책임자는 관람을 꺼리는 노동자들에게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엉터리 명분을 들이댑니다. 노동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빚을 내서라도 재미없는 공연을 보아야 합니다.

약 두 달간 매년 반복되는 재미 없는 공연에 비싼 돈을 내고 관람하도록 강제하는 대신 장마당에서 경제활동을 하도록 하면 빈사 상태에 처한 경제에 다소 나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겁니다.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는 데는 하루하루 생활이 힘든 주민을 공연장에 끌어다 놓을 게 아니라, 이들에게 배를 곯지 않는 방편을 제공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먹고 살만해야 지도자를 믿고 따르는 법입니다.

북한은 주민을 강제동원하는 것에 부족해, 북한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의 팔까지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북한관광 상품에 아리랑 공연관람을 끼워 넣어 보기 싫어도 보도록 했습니다. 아리랑 공연을 이미 본 중국인 관광객이라도 북한의 다른 곳을 구경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돈을 내고 아리랑 공연을 보아야 합니다.

아리랑 공연을 둘러싼 강제동원에 이제 중국의 공자가 한마디 쏘아붙일 듯합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백성을 잘 먹이는 일"이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