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망대] 대북송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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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 시간입니다. 오늘은 '대북송금'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한 실향민은 수년 전 북한에 있는 종손녀에게 미화 1천 달러를 보내주었습니다. 대학에 꼭 가고 싶은데 형편이 어려워 끌탕을 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고는 친척들의 도움을 모아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한인 목사를 통해 북한의 종손녀에게 전달했습니다. 직접 만나 용돈도 자주 주고 격려해주면 좋으련만, 그렇게는 하지 못하지만 종손녀에게 학비를 보태줄 수 있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약 60년 전 한국전쟁 때 북한의 가족과 헤어진 실향민의 마음이 이럴진대, 최근 고향을 떠난 탈북자들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에 갖는 애틋한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탈북자들이 안고 사는 이산의 아픔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을 겁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한국이나 미국, 중국 등지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느라 녹록하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도 한 푼 두 푼 모아 북한의 가족에게 보냅니다.

한 탈북자는 처음 난민 인정을 받고 미국에 왔을 때 먹고사는 게 힘들어 북한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으나, 안정된 일자리를 구한 뒤 중국의 조선족 중개인을 통해 북녘의 가족에게 1천달러를 보냈습니다. 이 돈은 보통 중국 중개인의 손을 거쳐 북한 내 화교를 연결 고리로 해 가족에게 전달됩니다. 중개인 수수료가 송금액의 20%나 되지만 앞으로도 계속 돈을 보낼 생각입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이 송금 덕에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한다는 소식에 신나 불철주야 일하고 있습니다. 1천 달러를 보내면 수수료를 제해도 웬만한 가정은 일 년 동안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북한당국이 지난해 11월 화폐개혁을 전격 단행하면서 외화와 북한 돈의 비율이 정확히 나오지 않아 탈북자들의 대북송금이 한동안 주춤했지만 새 돈을 기준으로 장마당 물가가 어느 정도 정해진 뒤로는 다시금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대북송금은 한국 내 탈북자들이 보내는 '한라산 줄기,' 중국 내 탈북자들이 보내는 '두만강 자금,' 그리고 재일교포들이 보내는 '후지산 줄기'로 나뉩니다. 이 중 탈북자 2만 명을 기반으로 하는 '한라산 줄기'는 든든한 자금줄입니다.

북한 당국이 탈북자들을 비난하면서도 이들을 통해 북한으로 외화가 들어오는 현상에는 조용히 미소 짓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체제유지와 주민통제라는 한 측면과 외화 확보라는 다른 측면 사이에서 외화유입 단속의 고삐를 늦추었다가 조였다 하면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위해 돈을 보내지만 중개인의 농간에 가족에게 돈이 당도하지 않는 사례도 심심치 않습니다. 중개인이 아예 돈을 전달하지 않거나, 돈을 전달한 뒤 제삼자와 짜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에 강도 짓을 하기도 합니다. 또 탈북자들의 송금 경로를 파악한 보위부 요원이 길목에서 돈을 모조리 빼앗기도 합니다.

이처럼 대북송금에는 땀과 눈물, 그리고 피가 뒤범벅돼 있습니다. 분단 조국의 슬픈 현실입니다. 탈북자가 늘고 대북송금 규모가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평화연구소(USIP)가 탈북자들의 대북송금 실태와 북한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종합적인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평화연구소는 9월 초부터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1차 면접을 했으며, 지금 그 내용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내년 봄께 나올 1차 조사 결과에는 대북송금이 장마당을 활성화한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입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을 탈출한 주민이 서독에 정착하면서 동독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주었습니다. 분단 후부터 1990년 통일 전까지 약 40년간 300만 명의 동독 이탈주민이 서독에 살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동독에 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송금은 서독사회의 우월성을 은연중에 드러내 동독주민의 인식의 틀을 서서히 깼습니다.

대북송금이 북한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일조한다면 이국땅에서 고생을 참으며 북한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탈북자들에게 큰 위안과 보람이 될 것입니다. 탈북자들은 북한당국이 말하는 '조국의 배신자'가 아니라 '조국의 변화를 이끌어낼 선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