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전망대] 신종플루 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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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 밖에서 일어나지만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박봉현의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신종플루 확진'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최근 한국의 한 텔레비전 방송의 출연자들이 아프리카 자선 프로그램으로 잠비아에 갈 때 기내에서 마스크를 한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공항과 같이 인파가 몰리는 곳에서 입에 마스크를 한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신형독감으로도 불리는 신종플루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10대 뉴스 가운데 9위에 올랐습니다. 지구촌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점을 감안하면 당당히 1위 자리를 노릴 만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국내 신종플루 확산이 한풀 꺾였다는 판단에 따라 전염병 위기단계를 현재 '심각'에서 '경계'로 내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신종플루에 감염될 위험에 대한 경각심은 여전합니다. 국가 간 물리적 경계의 의미가 점점 약화할 정도로 인적 교류가 활성화하고 있어 신종플루를 원천봉쇄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동안 북한은 신종플루의 안전지대로 여겨졌습니다. 한국은 물론 이웃나라 중국에서도 신종플루로 주민들이 생명을 잃는 사례가 빈발하는데도 북한은 잠잠했습니다.

북한의 허술한 보고체계를 지적하고 당국의 고의적인 은폐를 의심하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다른 나라와 교류가 얼마나 없으면 감염자가 나오지 않느냐며 북한사회의 폐쇄성을 꼬집는 견해도 있었습니다.
실제 북한에 신종플루 감염자가 있는지 없는지 외부에선 가늠할 방도가 없습니다. 북한 당국이 속 시원하게 상황을 설명하지 않으면 도통 저간의 사정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좁아진 지구촌과 달리 멀게만 느껴지는 게 오늘의 북한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국영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이 9일 북한에 신종플루가 돌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통신은 세계적으로 인명 피해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일부 지역에서도 신종플루가 발생했다며 "신의주와 평양에서 확진된 환자는 9명"이라고 전해 북한이 더는 신종플루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확인했습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기관지인 조선신보도 "신형독감의 확산을 막기 위해 평양 시내의 모든 유치원, 초ㆍ중등학교, 대학교가 통상적인 시기인 12월 말보다 훨씬 빠른 이달 7일부터 조기 방학에 들어갔다"고 해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습니다.

한국이나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인명을 앗아가는 전염병이 북한에 돈다는 사실은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희생자가 가능한 한 적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공식발표를 뒤집어보면 북한사회가 정부의 의도와 관계없이 아주 완만하게라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에는 생계형 무역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밀거래도 성행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당연히 접촉빈도도 많아집니다. 중국에 신종플루 감염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으니 중국사람들과 만난 북한 사람들을 통해 신종플루가 북한 땅에 들어올 가능성은 농후합니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 중국과의 교류가 불가피하고 신종플루와 함께 중국의 시장경제도 북한에 전해지게 마련입니다. 신종플루 감염 사실은 북한 정부가 수십 년 간 그토록 공고히 둘러쌓은 외부와의 차단벽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북한주민들의 생활을 염려하는 세계보건기구와 식량농업기구 등 국제기구는 북한의 신종플루 감염 실태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황을 자세히 알아야 적절한 지원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기구의 지원활동이 활발해지면 북한사회의 닫힌 문도 조금씩 열리게 됩니다.

한국 정부도 북한의 신종플루 예방과 치료를 위해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이후 북핵, 서해교전 등으로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신종플루 사태로 다시금 녹지않을까 기대됩니다.

2004년 7월 탈북자들이 대거 한국에 들어오면서 남북 대화가 수개월간 중단되다가 2005년 4월 북한에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방역진단 장비와 소독용 방제 차량 등을 지원해 대화 복원에 기여한 사례가 이번에도 반복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