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파리 목숨 인민무력부장'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120만 대군을 이끄는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하루아침에 20여 년 젊어졌습니다. 올해 75살인 김격식 부장이 물러나고 50대인 장정남이 군권을 쥐었습니다.
인민무력부장 전격 교체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우선, '세대교체'입니다. 2012년 4월 김정은이 정권을 잡으면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이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당시 김영춘은 76살이었습니다. 김영춘의 뒤를 이은 것은 김정각입니다. 그러나 김정각은 약 7개월 만인 2012년 10월, 71살에 인민무력부장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김정각의 바통을 이어받은 인물은 김격식입니다. 그도 역시 약 7개월 만인 2013년 5월, 75살에 50대의 소장파 장정남에게 인민무력부장 명패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김정일이 지명한 김영춘은 2009년 2월부터 2012년 4월까지 2년 넘게 인민무력부장을 했지만, 김정은 치하에서 인민무력부장이 된 김정각과 김격식은 각각 7개월짜리 단명이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장정남이 얼마나 오래갈지 알 수 없으나 북한의 인사는 최고지도자의 맘대로라서 예측불허입니다. 아무튼, 70대 부장들이 물러나고 50대 부장이 인민무력부를 이끌어가게 됐다는 점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확실한 세대교체입니다. '김정일 사람들'이 떠나고 '김정은 사람'이 본격적으로 똬리를 튼 겁니다.
하지만, 세대교체가 됐다고 하더라도 무늬만 세대교체로 그칠 수 있습니다. 나이는 젊어졌지만, 의식도 젊어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세대교체가 되려면 행동이 신선하고 국제 감각을 띠어야 하겠지요? 장정남은 2008년 한국인 여성 관광객이 피격됐을 당시 1군단장으로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니 장정남의 성향은 그의 군사 정책을 보고 판단할 일입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장정남을 내세운 김정은의 정책을 봐야겠지요.
둘째, 김정은이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인민무력부장을 전격적으로 교체했을 수 있습니다. 나이 어리고 정치 경험이 거의 없어 여기저기서 쑥덕거리는 세력들에게 자신이 권력을 단단하게 틀어쥐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김정일 운구 차량에서 김정은과 나란히 섰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경질하면서 군 내부에 불만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민군이 노골적인 항명을 하진 못하지만, 불만 세력을 다 잡지 못하면 정권 안정에 큰 위해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군이 차지하는 무게를 고려하면 그렇습니다. 게다가 최근 3차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도 쏘았지만, 국제사회로부터 이렇다 할 지원을 끌어내지 못하자 군의 기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깜짝 카드를 썼을 수도 있습니다. 인민군뿐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자신의 권력장악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이번 인사를 보고, 노동당과 인민군 간의 권력다툼에서 당의 전법이 주효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선군정치'가 김정은 집권 이후 장성택과 김경희를 중심으로 한 '선당정치'로 전환하는가 싶더니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퇴색 조짐을 보였습니다. 특히 개성공단 논란을 둘러싸고 군부 강경파의 입김이 거셌다는 후문입니다. 그러나 개성공단 폐쇄로 북한이 얻은 것은 없고 국제적으로 오명만 쓰고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보는 등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김정은이 군부에 철퇴를 가한 것이란 풀이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북한이 다소 유화적인 정책을 펼까요? 예단은 금물입니다. 설령 무게 중심이 군에서 당으로 옮겨졌다고 해도, 당이 온건 노선을 택할 지가 불투명합니다. 더욱이 한국이나 미국처럼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가 견제와 균형 속에서 운영되는 민주사회와 달리 북한에서는 최고 권력자에게 모든 게 집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의 한마디가 곧 법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입니다.
인민무력부장 교체가 지금까지 언급한 세 가지의 이유 중 어느 하나 때문인지, 아니면 두 개, 또는 세 개가 모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미쳐서인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투명하지 않은 사회이니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게 하나 있습니다. 이번 인사로 북한 내에서 김정은 정권이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점이 우려됩니다.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위협과 도발을 반복하는 위험한 정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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