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반미와 영어 붐'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언어는 어릴수록 쉽게 습득합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는 더 그렇습니다. 나이 들어 중국어나 러시아어를 배우려다 꽤 고생하신 청취자분들도 계실 겁니다. 혀가 굳고 머리가 온통 모국어로 가득 들어찼기 때문이지요. 영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남한처럼 소학교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칩니다. 종전에는 중학교부터 영어를 가르쳤는데, 2008년부터는 소학교(초등학교) 3,4학년들도 "A, B, C, D" 하며 영어를 배웁니다. 사실 북한정부는 1986년부터 소학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1990년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1992년에 중단했다가 영어의 중요성을 고려해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졸업 후 바로 사회에 진출할 대학생들의 영어교육은 더욱 강화됐습니다. 졸업장을 받으려면 영어를 외국어 과목으로 선택해 이수해야 합니다. 영어를 전공하지 않는 대학생들은 영어의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등 네 가지 분야를 하나로 통합해서 공부하지만,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이 네 분야를 세분화해서 철저하게 공부합니다.
2002년부터 북한의 영어교육을 돕는 평양 영국문화원은 의사소통 능력 향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도서관이나 연구실에서 영어책을 읽거나 영어논문을 쓰는 게 주목적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영어를 듣고 말하는 인재를 많이 양성한다는 정책을 반영한 것입니다. 학생들은 '살아 있는' 영어를 배우려 캐나다에 가 현지 가정에서 먹고 자며 영어를 익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학생들은 영어를 잘하면 출세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영어배우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BBC 방송이 지난해 김일성대학과 평양외국어대학을 방문해 영어학습 열기를 취재했는데, "외국에 나가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영국 최고작가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었다"고 말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영어에 관심이 지대하고 그 실용성을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일례로 외국어 수재들이 모여 있는 평양외국어학원에서 8개의 외국어를 가르치는데 이 중에 영어가 중국어와 러시아어를 밀어내고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어 열기는 영어강사 없인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기회만 되면 영어권 나라들에 원어민 강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2009년 2월 영국 상원의원들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최태복 최고인민회의장이 자신의 손녀가 영국 강사에게서 영어를 배운다며 영어 강사를 추가로 보내달라고 당부한 것도 영어 붐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영국은 북한의 요청에 따라 영어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2000년부터 김일성대학, 김형직사범대학, 평양외국어대학 등 3개 기관에서 이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는데, 올가을부터 김책공대, 김철주사범대, 평양외국어학원 등도 포함할 계획입니다. 영어 교육이 박차를 가하게 될 전망입니다. 이 밖에 캐나다 트리니티 웨스턴 대학은 2004년부터 평양에서 영어교사들을 훈련해왔습니다. 캐나다의 한인 민간단체인 대광투자기금은 지난 7월부터 현직 영어교사를 대상으로 원어민 강습을 하는 평양교원강습소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영어는 명실상부한 세계 공용어입니다.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국어를 사용하고 남미에서는 스페인어가 있고 아랍권에선 아랍어가 통용됩니다. 영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3억7천500만 명 정도입니다. 하지만, 외교, 무역, 통신, 과학 등 중요한 분야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나라의 공식 언어가 아니더라도 필요에 의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습니다. 개인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라는 국익을 증대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고 가르칩니다.
한국 강원도의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가 심사위원들에게 평창유치의 당위성을 영어로 호소한 것이 주효했던 사실은 영어의 중요성을 바로 보여줍니다. 북한 정부가 영어교육에 신경을 쓰는 것이 "문호를 닫은 채 국익만을 챙기겠다"는 계산이라 해도, 결국 언어는 국가 간 경계를 넘고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합니다. 적어도 영어배우기만큼은 북한도 세계화의 큰 물결에 올라탄 것입니다.
0:00 / 0:00